기자에게 상(賞)이란? 칭찬과 인정… 기자 생활의 활력소

 

누구나 그렇듯이 기자들도 상(賞)을 받으면 좋아합니다. 아니 어찌 보면 다른 어떤 분야의 종사자보다 상의 의미가 더 크게 다가올지 모릅니다. 업무 특성상 칭찬받을 일보다는 원망이 나 비난을 받는 일이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칭찬과 동시에 인정(認定)을 받는 것도 상이 아니 면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기자 세계에서 인정이란 윗사람이나 외부인보다는 같은 기자 동료 들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더욱 짜릿하고 기쁜 것 같습니다.

방송기자연합회와 한국방송학회가 공동으로 시상해 온 ‘이달의 방송기자상’이 2008년 10 월 첫 시상을 한 이후 지난 6월까지 152차례가 열렸고, ‘올해의 방송기자상’으로 시작했던 ‘한 국방송기자대상’도 12차례 진행됐습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동종업계의 기자 선후배, 동료들이 인정하고 주는 상이라 그 어느 상보다 더욱 의미가 크고, 소중할 겁니다.

이처럼 방송기자상이 햇수로 14년째 이어지면서 어느 정도 우리 사회에서 상의 권위를 인 정받고 있고, 우리 방송기자들에게는 고된 취재와 제작 환경 속에서 활력소와 같은 역할을 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방송기자상은 많은 한계와 과제도 갖고 있습니다.

다소 모호한 수상 부문들, 형평성의 문제, 그리고 타 언론상과의 차별성 등이 해결해야 할 숙제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더구나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맞춰 미래지향적인 저널리즘의 가치를 담아낼 수 있어야 하며, 방송기자나 관련 학계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까지 신뢰하고 인정하는 상으로 키워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에 따라 방송기자연합회는 방송학회와 함께 최근 방송기자상 개편을 위한 논의를 진행 중 에 있습니다. 수상 부문을 좀더 집중화해 효율성을 높이고, 심사위원의 전문성도 보강해 나갈 방침입니다. 또한 연 1회 개최되는 한국방송기자대상은 더 많은 부문을 추가함으로써 전문적이 고 다양한 분야에서 묵묵히 좋은 보도를 이어오고 있는 방송기자들의 노고를 응원하고자 합니 다. 새로운 방송기자상 개편 내용은 올 하반기 확정지은 후, 내년부터 적용할 계획입니다.

아울러 오는 8월부터는 ‘팩트체크상’이 새롭게 신설됩니다. 팩트체크상은 이달의 방송기자 상의 한 부문이 아니라, 방송기자연합회와 한국기자협회, 재단법인 팩트체크넷이 공동으로 시 상하는 새로운 상입니다. 더 많은 방송기자들이 허위, 거짓정보에 맞서 검증과 팩트체크에 나 서주기를 간곡히 바라는 마음에서 올 하반기동안 시범적으로 시행코자 합니다. 최근에는 팩트 체크의 중요성에 대한 얘기가 다소 사그라진 느낌이지만, 시민들의 정보리터러시에 가장 책임 이 큰 집단이 우리 언론임은 변하지 않습니다. 아무쪼록 좋은 팩트체크 기사를 통해 시민들의 정보리터러시에 큰 도움을 주기를 바라며, 팩트체크상에도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성재호 방송기자연합회장

KBS 지역 순환 근무, 마음의 고향 창원

 

KBS 박장빈 기자

 

만만한릴레이_KBS 박장빈 기자_사진2

 

2020년 2월 1일 ~ 2021년 2월 1일. 창원에서 생활한 기간이다.

해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KBS는 지역권과 전국권 인원을 따로 뽑는다. 전국권은 기본 적으론 서울에서 근무하는 인원들이지만 한차례 정도 지역에 가서 근무하게 된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입장에서 연고 없는 곳에 간다는 건 가벼운 마음만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 이 모르고 있는 사실 중 하나가 지역 순환 근무를 하면, 지낼 곳을 당사자가 알아서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집 계약부터 비용 역시 순환 근무자들의 몫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 순 환근무는다녀올만하다는것이내생각이다.이번만만한릴레이에서는1년간순환근무생 활을 하면서 느꼈던 마음을 적어보려 한다.

어느 곳이든 그렇지만 낯선 곳에서의 첫 느낌은 유독 기억에 남는다. 휴가를 쓰고 출근 일보다 며칠 먼저 내려가 이사를 했다. 집에 필요한 것을 사기 위해 마트를 가는 길이었는데 낯선 곳이기도 하고 아직 겨울인지라 거리는 더욱 황량하게 느껴졌다. 나 빼고 서로 다 아는 듯한 곳에 투명인간처럼 둘레둘레 구경하는 내 모습은 마치 해외에 나간 느낌이었다. 모든 것은 생소했지만 그 곳에서의 1년이 기다려졌다. 내려간 지 처음 몇 달은 거 의 매주 올라왔다. 편도 4시간 반이라는 시간이 걸려 도, 편한 친구들이 서울에 있고 익숙해서였다. 한 계절 이 지날 때쯤 마음 맞는 사람들이 생겼고, 나도 자연스럽게 그곳에 어우러졌다. 마치 원래 있었던 사람처럼 창원은 점점 집이 되어갔다. 회사 규모가 서울에 비해 상 대적으로 작았기 때문에 구성원들끼리 더 자주 맞닿을 수 있었고 삼삼오오 모이는 소소한 재미에 출근 역시 즐거웠다.

창원에서 1년은 업무 측면에서 보더라도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았다. 출입처와 부서가 나눠 있는 본사와 다르게 지역에선 구분 없이 일을 맡아서 하게 된다. 그렇기에 사건팀 아이템만 하다 내려간 나로서는 정치 경제 아이템도 구분 없이 해 볼 수 있었다. 도청 취재부터, 국회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도 있는 도의회, 시의회에서의 취재 경험도 해 보고, 중공업이 많은 경남 지역의 여러 기업도 방문해보는 등 다채롭게 경험했다.

지역적 특성의 아이템도 다양했다. 통영, 거제, 남해가 인접해 있는 창원은 바닷가 아이템도 많았다. 특히 봄을 알리는 멸치잡이 아이템은 인상적이었다. 동이 트기 전 새벽 4시 작은 어 선을 타고 한 시간쯤 망망대해로 나갔다. 육지라곤 찾아볼 수 없이 넓게 펼쳐진 파스텔톤 수 평선위에해가뜨는장관은잊을수없다.일을마치고항구에서갓잡은멸치로요리한튀김, 구이, 회무침, 쌈밥은 세상 그 어느 음식보다 맛있었다. 새벽부터 잠을 못 잔 탓에 반쯤 감긴 눈에 졸음이 몸을 지배했어도 미각은 살아있었다. 보통 멸치라고 하면 찌개에 국물을 우리기 위해 넣거나, 밑반찬으로 볶아 먹는 작은 물고기 정도로 알고 있었지만, 생선이라는 표현을 해주고 싶었다. 아마도 순환 근무 기간 먹었던 가장 맛있었던 한 끼를 꼽으라 한다면 주저 없이 그날의 밥상을 꼽을 것 같다. 이밖에 무게가 380kg이나 나가는 초대형 호박, 성인 손바닥만한 굴 등 재밌는 취재를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1년 차, 2년 차엔 신입사원으로 일에 대한 부 담감과 강박관념으로 출근에 대한 막연한 두려 움이 있었던 나는 창원에서 1년이 방전되어가 고 있던 스스로를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었 다. 교통체증으로 1시간에 다다르는 서울에서 의 출근 시간도 창원에선 회사 바로 앞에 집을 얻어 걸어서 10분 정도로 출퇴근 시간이라는 게 거의 없었다. 자연스럽게 늦잠을 잘 수 있었 고 저녁이 있는 삶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씻고밥을먹어도9시가안되는시간이었다.오 롯이 내 시간으로, 어릴 적 기억을 되살려 피아 노도 다시 배워보고, 오피스텔 내에 있는 헬스 장도 다녔다. 그중 가장 큰 낙이라고 하면 집 근 처 호수 공원 산책이었다. 공원엔 나무가 많았 는데, 그곳에서 벚꽃이 만개하는 봄을 느꼈고, 낙엽이 되어 하나둘 떨어지는 가을을 맞았다. 찬바람과 함께 무르익어가는 연말이 되었을 땐 1년이라는 시간이 너무 빨리지나 간 것 같아 못내 아쉬워졌다. 시간은 그렇게 더욱 빠르게 흘렀고 어느덧 본사에서 복귀 연락도 받았다. 올라가야 할 날이 정해지자 매일 지나다녔던 출근길이 그리워질 것 같았고, 같이 지내는 사람들과의 시간은 모두 추억이 될 것 같아서 소중 했다.

본사로 복귀한 지 어느덧 반년이 되었다. 서울에 다시 적응하고 주어진 일을 하다 보니 올 라올 때만큼의 마음은 아니지만, 여전히 창원이 그리울 때가 있다. 이제 창원은 전국에서 서 울을 제외한 유일하게 내가 아는 곳이고 편한 곳이 되었다. 내려갔을 때부터 1년이라는 시간 만 잠시 왔다 가는 사람이었지만 모두들 진심을 다해 잘해주시고 그곳의 구성원으로 품어주 셨다. 사회생활을 하는 어른이었지만 집 떠나 생활해 본 적이 없던 나를 한층 성숙하게 만들 어준 시간이었고 이제는 그 창원을 마음의 고향이라 표현하고 싶다.

다음 만만한 릴레이 주자로는 뉴스타파의 오준식 기자를 지목한다. 과거 대외활동 선후배로 만난 사이 인데 같은 업에 종사하게 되면서 아직까지도 친분을 이어오고 있는 형이다. SNS를 통해 가끔 백팩킹 사진을 올리던데 그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했다.

보도그래픽과 스테레오 타입

 

SBS 김아영 기자

 

 

‘만만한 릴레이’라는 제목 믿고 정말 마음대로, 아무 이야기나 하려고 한다. 그래서 미리 이 말씀부터 드린다. 혹시 다 읽으신다면 그래서 당신, 어쩌자는 이야기냐, 이런 얘기는 말아 주십 사. 당장에 뭘 어찌하고 싶다는 이야기는 아니니까.

시작부터 TMI(too much information)지만, 필자는 시골 출신이다. 대학 입학 후 주변 환경 에 적응하는 데에는 사실 상당 기간 침묵이 필요했다. 20년을 자라온 환경의 주변인들과 대학, 그리고 이후 직장에서 만난 주변인들의 여건 내지는 조건이 상당히 달랐기 때문이다. 이를테 면 시골에서 가장 친했(다고 생각했)던 친구는 신체 한 부위가 없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또 다른 친구 역시 생김새가 나와 좀 달랐다. 이건 다소 일반적인 얘기겠지만, 뚱뚱하거나, 빼빼 마른 친구들과 선생님들도 여럿 있었다. 아빠가 없거나 엄마가 없는 아이들도 있었고, 머리가 없는 선생님도 있었다. 그때는 그게 내 주변의 사람들이었다. 개인사 한참 이야기하다가 공적 영 역의 ‘업’의 이야기로 넘어가려니 좀 어색하기도 한데, 감수하려 한다. 논리적 비약이 있을지언 정, 실제 내 질문이 시작된 것이 이런 이유들이었기 때문에.

어느 날, 문득 물음표가 떴다. 방송 화면에 쓰이는 수많은 이미지, 그래픽에 관해서 말이다. 특별히 누가 잘못 만들었거나, 의뢰를 잘못했다는 류의 사건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니 혹시 이 글 보고 ‘그게 뭐였니’ 취재하거나 물어보지 마시라. 혹 물어보신다면 분명히 제목만 읽으신 것으로 이해하겠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께. 방송 뉴스에서 이른바 ‘관계자’가 등장할 때 나오는 실루엣이 낯설게 느껴진 경험 있으신가? ‘○○○ 관계자’, ‘○○○소식통’ 같은 이들의 말을 인용하는 CG는 방송 뉴스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방송이 아니었다면 글로만 적어도 되는 사안이긴 하다. 언제나처럼 우리의 숙명은 ‘화면’인지라 방송기자들은 하나의 영역을 더 고민해야 하니까. 분야별로 이런 그래픽들이 더 많이 사용되기도 한다. 내가 몸담은 팀, 외교 안보도 영상이 제한적이다 보니 이런 그래픽들을 종종 사용한다.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체로 크게 흠잡을 곳이 없다. 비교적 건강한 체형의 중년 남성으로 추정될만한 실루엣들이 많다. 대체로 양복을 입었다. 국회의원이나, 검사 또는 변호사, 의사처럼 사회적으로 나름대로는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이들도 이렇게 실루엣으로 표현될 때가 있다. 실루엣이 자주 등장하는 또 다른 보도 범주는 피해자가 있는 뉴스다. 범죄 기사, 특히나 성폭력 기사나 아동학대 기사를 꼽을 수 있겠다. 범죄 장면을 거의 그대로 노출하는 것은 – 많은 경우 – 바람직하지도 않은 데다, 실제 제약도 많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에게 사건을 전달은 해야 하는 게 우리의 업이 고, 그래서 이런저런 고민 끝에 실루엣을 택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가끔 이 실루엣들에 질문을 던져봤으면 좋겠다. 잘 쓴 실루엣이라면 어떤 것일까. 언 뜻 생각하기에는 가장 전형적인 모습으로 생각되어서 특별히 그래픽에 눈길이 가지 않아야 잘 할 것 같다. 실루엣이 특이해서 시청자가 거기에 눈길을 주게 되면 보도 내용이 오히려 부차적 인 게 되고, 그러면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것일 테니까. 방송기자라면 이런 것쯤 상식의 범주일 것 같다.

그래서 여기서는 그다음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것이다. 우리가 택하는 그 전형적인 실루엣은 실제 우리의 현실을 담아내는 적절한 혹 은 바람직한 그릇일까? 치열한 취재 현장의 이야기를 쓰지는 못할 망정 이런 한가한 질문을 하는 것이 다소 민망하기는 하나 굳이 질문하는 이유는 이거다. 이런 질문하는 기자들이 주변에서, 많아졌으면 좋겠다. 남성 실루엣은 왜 당연할까? 익명이 필요한 어떤 상황에서 여성 실루엣을 쓰는 것은 왜 꺼려지나? (특정이 되기도 하니까) 이 실루엣 은 꼭 중년 남성일 필요가 있을까?20대는 안 되나?여성은?범죄 기 사에서 나오는 피해자 실루엣은 왜 그런 모습들일까? 그들은 고개를 숙이고, 또 팔로 얼굴을 감싸고 있어야 할까? 가해자는 왜 손가락을 치켜들고 있을까? 이렇게 속에 있던 질문을 하나하나 꺼내기 시작하면 부담스러운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 “아니, 그래서 넌 뭘 어떻게 하고 싶 다는 거야?” 그래서 앞서 말했다. 당장 뭘 어쩌자는 것은 아니라고. 왜냐하면, 필자 역시 질문만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기사 내용 전달이 우선이 고, 그래픽 자체가 기사를 흔들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런 문제의식 필요 하지 않을까. 우리가 쓰는 그래픽들에 여러 함의가 들어가 있다는 것, 당 연하게 생각하는 그런 것들이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우리 의 어떤 이미지가 기존의 관념들을 재생산하는 수단일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이상주의자 같은 소리지만 난 우리가 하루하루 나아지고 있다고, 혹은 나아질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질문을 꺼내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때가 분명히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0년 뒤 방송 기사라는 것이 어떤 의미로 남아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때도 실루엣이 사용된다면 보 다 지금의 형태보다는 다양한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이 낯설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환경이 되었으면 한다.

다음 만만한 릴레이 주자로 MBN의 주진희 기자를 지목한다. 주진희 기자의 ‘방송기자의 인터넷 기사 고군 분투기’를 기대해 달라.

w-nominate 분석을 통해 배운 것과 교훈

 

SBS 배여운 기자

 

데이터저널리즘 기사는 특정 분야의 스페셜리스트가 아닌 이상 데이터 분석 대상의 도메인 지식 (domain knowledge)이 많지 않다는 약점이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사전에 논문과 보고서를 읽고 전문가의 자문을 얻은 후에 분석을 진행하지만, 그럼에도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전문가만큼 알기는 쉽 지 않다. 최근 SBS 데이터저널리즘팀〈마부작침〉은 본회의 표결 데이터를 바탕으로 국회의원 이념 성향 과 공동발의 네트워크 분석을 진행했고, 며칠 전에는 KBS에서 ‘세대 인식 집중조사’ 기획 기사를 보도했는데 공통적으로 온라인에서 논쟁이 일어났다. 데이터를 분석하고 분석 방법론을 썼을 때 충분히 일어 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번 호에서는 데이터 분석 보도에서 조심해야 할 지점과 방송뉴스에서의 고민 지 점을 공유하고자 한다.

국회 이념 성향 분석 배경은?
21대 국회, 비록 1년 남짓 흘렀지만 과거 어느 국회보다 갈등과 거대 양당에 대한 피로감은 컸다. 돌이 켜보면 검찰개혁, 부동산법, 공수처법, 중대재해처벌법, 가덕도 특별법 등 굵직한  쟁점들이 많았다. 굳이 데이터가 아니더라도 다수가 느끼는 정치 피로감의 주요 원인이었다.

이런 점을 데이터로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뭘로? 정치인들의 지난 흔적이 담긴 데이터는 많지 않다. 국회 사무처는 투명하게 데이터를 공개한다고 했지만 여전히 PDF로 회의록을 공개하고 회의 참석자 명 단은 그림이랑 다를 바 없는 수준으로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본회의 표결 데이터는 그들의 행적을 로우 데이터raw data로 공개한 좋은 자료고, 이는 충분히 분석할 가치가 있다. 그때 눈에 띈 게 바로 워싱턴포스트, 미국 의회 등에서 사용하는 ‘w-nominate’ 분석 방법론이었다. ‘w-nominate’는 미국 국회의원들의 이념 성향을 표결 데이터와 통계 기법을 활용해 분석 하는 방법이다. 이를 국내에 적용시켜보고자 했다.

 

오해는 분석이 아닌 용어에서 발생했다

여운이 남는 데이터저널리즘_사진1

많은 분들이 지적한 것처럼 미국은 당론이 아닌 소신을 근거로 표결한다. 프리-보팅free-voting이라고 부른다. 당론이 찬성이라고 해도 지역구나 소신에 반하면 꼭 찬성표를 던질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반면 우 리 국회는 철저하게 당론 기반이다. 그렇다면 이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미국 정치 문화에 적합한 분석 모델을 한국 정치 분석에 적용해도 되는 것인가? 물론 100%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국 정치에 소신 투표가 아예 없는건 아니다. 가덕도 공항 특별법 통과때 부산 지역 의 국민의힘 의원들은 더불어민주당 당론이었던 찬성표를 던졌고, 공수처법 표결에서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당론에서 벗어나 기권을 표하며 소신 투표를 했다. 이 같은 케이스가 많진 않지만 법안 투표에서 지역구의 이익을 고려한 표결은 분명 존재했으며 19대 국회부터 표결 결과를 면밀히 봐도 조금씩 다른 표 결 결과가 보였다. 결과적으로 w-nominate 분석 결과는 현 정치의 단면과 비슷하게 나타났다. 하지만트위터에서 논란이 발생했다. 분석 과정에 큰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그래픽과 기사에 들어간 ‘이념 성향’이란 용어가 문제였다. 방송 뉴스에서 별다른 설명 없이 ‘보수’와 ‘진보’로 정당의 이념 점수를 보여줬다. 방송 CG의 제약이기도 하다. 미국 논문에 사용된 단어를 직역했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가져오면 사실 ‘이념’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다. 정확히는 상대적 진보와 보수 혹은 표결 성향 점수란 표현이 적합하다. 하지만 이런 설명이 빠지다 보니 절대적 진보와 보수로 기사가 소비됐고 자연스럽게 오해가 발생했다.

특히 정의당의 정치적 스탠스가 보수 쪽으로 가까워져서 정의당을 ‘중도화’ 혹은 ‘보수화’로 낙인찍어 공격하는 네티즌들이 있었다. 그림만 보면 국민의힘 쪽에 가까운 성향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 역시 표결 행태의 상대적 거리라고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그림만 보면 중도, 혹은 보수로 비쳤기 때문에 오해의 여 지가 있었다. 더불어민주당의 법안 표결에 반대하면 당연히 표결 행태는 국민의힘과 비슷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걸 ‘보수화’됐다고 부르면 안 된다. 민주당과 표결 행태가 멀어졌을 뿐이지 정의당이 보수 화된 건 아니다. 다만, 시각화에서 미숙한 점은 있었다. 이런 설명이 없다 보니 기사를 읽지 않고 그림만 보면 오해하기 쉽다.

분석한 기자는 몰랐을까?아니다. 2~3분가량 방송 뉴스 포맷에 방대한 분석 과정을 전부 담을 수 없기 때문에 핵심 요소만 그래픽으로 보여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운이 남는 데이터저널리즘_사진2

최근 논란이 된 KBS 보도도 성격 은 다르지만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세대 인식과 관련된 기사에서 “기회 가 되면 타인을 도울 것이다”라는 그래픽의 x축이 문제였다. 계층 의식을 최하층부터 최상층까지 10단계로 나눴는데 별도 설명이 없다 보니 독자 들은 절대적인 계층으로 인식하고 ‘최상층 청년 남성은 타인을 돕지 않겠다’라고 해석하기 시작했고 맥락이 빠진 그래픽은 소셜미디어 퍼졌다. 통계의 시각에서는 차트에서 신뢰 구간이 빠지다 보니 통계적 유의성도 논란이 됐다. 이 결과는 기술통계가 아닌 추론통계를 바탕으로 예측을 보여준 것이기 때문에 모수의 분 산 정도는 보여줘야 했다. 별도 설명이 있었다면 충분히 오해를 줄일 수 있는 부분이었고 제작진은 결국 기사 그래픽을 수정했다.

하지만 방송 뉴스에서 신뢰구간을 보여주는 그래픽 요소가 들어가고 설명이 들어가면 사람들이 보지 않는다는 의견도 꽤 많았다. 우린 이 두사안을 어떻게 봐야할 것인가?

 

방송과 데이터가 만나기 시작했다
방송 뉴스가 새롭게 고민해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시도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생긴 이 슈이기 때문에 생산적이라고 본다. 지면이나 온라인과 달리 방송은 순간의 영상으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전달 내용을 최소화한다. 제목을 최대한 간결히 줄이거나 차트(그래프)에서 중요한 요소를 생략하기도 한다. 복잡한 차트 대신 막대, 선, 파이차트로 보여주길 요구받는다.

방송 매체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중요한 데이터를 보여주고 전달할 때 꼭 필요한 부분까 지도 생략되어야만 하는 건 이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시청자와 독자는 예전보다 수준이 높아지고 있고 분석 과정에 대한 수준 높은 토론을 하고 원천(raw) 데이터 출처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기자들도 전문적인 통계 지식을 가져야만 한다. 기자가 숫자로 거짓말한다는 비판을 넘 어서 더 뼈아픈 건 기본 통계조차 모른다는 말이다. 단순 보도자료에 나온 통계만 활용하고 로우 데이터raw data를 분석하지 않으면 논란이 생겼을 때 아무런 대응을 할 수가 없다.

데이터 분석이 들어간 수준 높은 기사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웬만한 기획기사와 탐사보도에는 데 이터가 꼭 들어간 걸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방송 뉴스의 전달 방식과 통계 리터러시literacy를 키우지 않 는다면 좋은 기사를 보도하고도 이런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임현식 기자의 포토에세이

우리는 지구를 인류의 것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착각입니다.
지구는 인류의 서식지일 뿐입니다.
지구에는 인류 말고도 수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습니다.
인류는 지구라는 거대한 유기체의 극히 미세한 세포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머지않아 마스크를 벗을 것입니다.
코로나19 이후의 인류는 이전과는 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KBS 임현식 기자 (영상취재부)

더 나은 저널리즘을 위한 미디어 대타협이 필요하다
–  姑 손정민 씨 사망사고 언론 보도를 정리하며

 

 

7월 4일 서초경찰서는 변사사건심의위원회를 열고 손정민 씨 사망 사건의 내사를 종결하기로 결정했다. 4월 25일 손 씨 실종신고가 경찰에 접수된 이후 70일 만이다. 손 씨는 4월 30일 한강 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살해 가능성에 여론이 쏠렸지만 결국 단순 익사로 사실상 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한 여론은 급격히 식었다. 손 씨의 친구 A 씨는 자신을 범인으로 몰아 간 네티즌을 상대로 고소를 예고했고, 네티즌 1,000여 명은 앞다퉈 반성문을 작성하는 희극같은 비극이 벌어졌다.

손 씨 사망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가 문제가 많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언론들은 선정적 인 제목으로 하루에도 수백 개의 기사를 쏟아냈다. 사실관계에 기초하기 보다는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음모론적 제목으로 클릭장사를 했고 의혹을 부풀리는 데 앞장섰다. 사람들이 타살 이라는 음모론의 바다에서 허우적댄 것은 언론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7월 2일 한국신 문윤리위원회는 뉴스1, 조선닷컴, 한경닷컴 등 11개 매체가 쓴 손정민 씨 기사 15건에 대해 주의 조치를 내렸다. 언론의 책임과 보도준칙을 저버렸다는 것이 이유다.

언론계가 고민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첫 번째는 피해자 보호 원칙이다. 이번 사건에선 아들을 잃은 손정민 씨 부모도, 술자리에 같이 있던 친구 A 씨도, 그리고 A 씨의 부모도 모두 피해자다. 그런데 언론은 손 씨 가족만 피해자인 것처럼 보도했다. 나는 사건 초기 MBC <100분 토론>에서 친구 A 씨를 범인으로 몰아가는 여론에 편승한 언론 보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언론은 대중의 정제되지 않은 여론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존재 이유인 것처럼 무분별하게 날 것의 언어와 감 정을 그대로 전달했다. 언론은 한 명의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무분별하게 A 씨를 범인으로 몰아간 언론이라면 반성문을 써야 할 때다.

두 번째는 기사 생산 방식이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언론은 누군가의 페이스북과 익명의 온라 인 커뮤니티 글을 여론이랍시고 기사로 전달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하루에도 여러 건의 비슷한 내용을 ‘종합’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또 보도했다. 네티즌과 기자가 똑같은 일을 수행한다면 언론은 왜 존재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 참을 수 없는 언론 보도의 가벼움은 신뢰도 하락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클릭수 증대로 인한 몇 푼의 알량한 돈을 번 몇몇 언론은 수혜자가 됐지 만, 언론계 전체는 ‘기레기’의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식의 기사 쓰기를 모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면 언론생태계라는 공유지는 앞으로도 ‘쓰레기 기사’로 넘쳐날 것이다.

세 번째는 포털이다. 네이버로 대변되는 포털의 인공지능은 대 체로 가장 많이 본 뉴스를 좋은 기사로 추천한다. 그리고 가장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가 가장 추 천이 많이 되는 시스템이다. 많은 언론이 과감하게 설익은 기사 를 쓸 수 있었던 배경은 포털의 이런 알고리즘 때문이다. KBS <질문하는 기자들 Q>가 네이버 구독자 300만 명이 넘는 언론사 19곳을 대상으로 5월 한 달간 저녁 6시 기준 많이 본 기사를 매일 50개씩 뽑은 결과, 상위 키워드로 ‘친구, 한강, 손정민, 실종, 정민, 대학생’ 등이 꼽혔다. 5월 한 달간 숱하게 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지만, 네이버는 이런 기사들 을 사람들에게 추천하며 여론의 왜곡 현상을 방치한 것이다. 포털 탓만 할 수는 없다. 자사 홈페이지에는 근엄하게 정치권과 사회를 꾸짖는 기사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포털에서는 자극적인 제 목으로 낚시질을 하는 기사를 전면에 내세운 대형 언론의 이중플레이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클릭수 최대화라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포털과 언론의 유해한 공생이다. 포털뉴스에 대한 근본 적인 개혁이 있지 않은 이상 앞으로도 이런 현상은 지속될 것이다.

네 번째는 유튜브에 대한 고민이다. 이번 사건 보도가 혼탁하게 된 데에는 일반 기사뿐 아니라 유튜브 영상이 큰 몫을 했다. 무속인을 포함한 모든 분야의 유튜버들이 손 씨 사망 사건에 달려들 면서 유튜브는 그야말로 ‘만인 대 만인의 투쟁’ 양상을 보였다. 문제는 주요 방송사를 비롯한 언론들이 유튜버와 다를 바가 없는 퀄리티의 영상을 생산했다는 점이다. 타살 확증편향은 또 다른 확증편향 영상을 추천했고, 음모론에 목마른 대중은 또 다른 음모론으로 갈증을 채웠다. SBS <그 것이 알고 싶다>와 같이 제대로 검증한 언론도 있었지만, CCTV 영상 하나로 조회수 수백만 회를 뽑은 언론이 수두룩했다. 언론이 유튜브라는 미디어를 이런 식으로 활용하는 것이 당연시된 다면 앞으로도 똑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무엇인가. 비관적인 결론이다. 현재 언론 생태계에선 보상과 응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좋은 기사를 써도 칭찬을 받지 못하고, 안 좋은 기사를 써도 제대로 응징받지 않는다. 언론은 클릭수 증대의 이익은 사유화하고 신뢰도 저하란 손해는 공유하고 있다. 악화 가 양화를 구축하고 정직한 언론이 손해 보는 시스템이다. 이런 시스템을 고치지 않는 이상 기사 참사는 계속될 것이다. 사회적 대타협은 노사정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포털과 언론, 그리고 독 자가 같이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보상과 응징 시스템 구축을 위한 ‘미디어 대타협’을 모색할 때 다. 더 나은 저널리즘이 한국 사회에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말이다.

 

뉴스톱 김준일 대표

“코로나 백신을 맞았습니다”
– 본지 편집위원들의 코로나19 백신 접종 후기

 

 

첫 번째, 얀센

“처남은 무지 아팠다던데….”
남들보다 빨리 맞을 것이라고는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던 코로나19 백신. 올해를 마지막 으로 끝날 예정이던 민방위 신분이 제게도 얀센 백신을 내려줬습니다. 3대 1의 경쟁률을 뚫었다는 기쁨도 잠시, 곧바로 먼저 백신을 맞았던 처남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30대 초반의 건강한 청년인 처남은 백신을 맡고 고열에 응급실을 찾아야 했고, 몸이 아파 출근 도 하지 못했다고 토로했었기 때문입니다.

쓸데없이 듣는 것이 많은 기자인지라 시간이 지날수록 걱정은 늘어갔습니다. 젊은 사람 들은 혈전이 많이 생길 수 있다는 얘기가 처음이었습니다. 기우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수 백만 명 가운데 소수의 확률로 나타나는 부작용 사망자가 내가 될 수 있는 건 아닐지 문득 작은 걱정이 들기도 했습니다. 접종을 앞둔 술자리에서 “이게 내 생애 마지막 술자리가 될 수도 있어”라며 농을 던졌지만 일말의 불안감을 지울 수는 없었습니다.

 

걱정은 걱정 인형에게… 백신 체질 선언합니다!
구구절절 쓸데없는 걱정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을 때 눈치채신 분도 계실 듯합니다. 네, 그런 걱정 끝에 백신을 맞았고 아무런 이상이 없었습니다. 백신을 맞은 자리만 이틀 정도 얼얼한 느낌이 있었을 뿐입니다. 혹시나 몰라 미리 구입해뒀던 해열제는 고스란히 약통으로 들어갔습니다. 다행이겠지만, 미열도 나지 않았고 근육통에 시달리지도 않았습니다. 뭔 가 상세히 설명하고 싶지만 설명할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너무 아무 이상이 없다 보니 제 몸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들 정도였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외부에서 병균 같은 것이 침투했을 때 체내 방어 시스템이 더 잘 작동하는 만큼 열이 나고 아플수록 건강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백신 접종 2주가 다 되어가는 지금. 전 아주 건강히 5인 이상 회동에 참여할 7월 의 어느 날을 기다리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만 저같이 걱정을 달고 사는 사람들, 그중에 서도 전형적인 문과생들을 위해 누군가, 좀 더 자세하고 친절하게 백신 기사를 써주셨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너의 걱정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지, 혹은 ‘이럴 때는 이렇게, 저럴 때는 저렇게’를 알려주는 기자님이 계시다면 아낌없이 ‘좋아요! 추천’을 누르겠습니다.

 

YTN 김주영 기자 (본지 편집위원)

 

두 번째, 아스트라제네카

일본 올림픽 출장을 앞두고 코로나 백신을 맞게 됐다. 은근 화이자 백신을 맞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내가 맞아야 할 백신은 아스트라제네카였다.

‘부작용이 많다고 하는데….’ 걱정했지만 젊고 건강하니 별일 없겠지 생각하고 보건소로 향했다. 백신을 맞기 전 보건소로부터 열이 나지 않으면 타이레놀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설명을 들었다. 오히려 항체 형성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 열이 나지 않으면 먹지 말라는 뜻이었다. 백신을 맞고 온 오후부터 몸에 스멀스멀 알 수 없는 기운이 돌았다. 왼쪽 팔부터 시작 해서 다리 그리고 오른쪽 팔로 무언가가 번져나가는 느낌이었다. 내 몸과 코로나바이러스가 열심히 싸우고 있구나, 생각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불쾌한 기분이었다.

그리고는 바쁜 업무와 출장 때문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못하다가 주말을 맞았다. 쉬면 서 생각해보니 몸살 기운이 지나간 뒤에 팔다리가 조금 저리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필 그 날 기사에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경찰관이 같은 증상을 느끼다가 뇌출혈 진단을 받았다 는 걸 봤다. 불안감이 엄습하여 백신 주사를 맞았던 영등포 보건소에 급히 전화를 했다. 응급실로 가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이후로 가본 적이 없는 대학병원 응 급실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 그러나 병원에서도 인과관계를 알 수 없다며 손발이 저리는 증상이 더 심해지거나 마비가 오거든 병원에 다시 오라고 했다. 불안에 떨며 주말을 보냈지만, 다행히 저리는 증상이 나아지며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주 목요일 2차 접종을 맞았다. 아스트라제네카의 경우 1차 때 조금 아프고 2 차 때는 덜 아프다는 주변의 말처럼 별다른 문제 없이 이번에는 지나갈 수 있었다. 다행이 라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백신을 맞아서 이 정도로 아프면 정말 코로나에 걸리면 얼마 나 고통스러울까 생각도 해볼 수 있었다. 곧 다가올 코로나 없는 세상을 기원하며….

 

KBS 김재현 기자 (본지 편집위원)

‘설마’란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 공군 부사관 성폭행 취재기

 

KBS 홍진아 기자 (통일외교부)

 

‘큰 물을 먹었네’ 다른 방송사에서 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사망사건이 보도됐을 때 먼저 든 생각이었습니다. 성추행 피해를 당한 공군 부사관이 신고 뒤 극단적 선택 을 했고, 마지막 모습을 영상으로 남겼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습니다. 단순히 낙종 했다고 보기에는 사건이 심각했고, 주변에서 빠르게 돌아가는 움직임도 심상치 않았습니다. 첫 보도 다음 날 오전 공군은 곧바로 합동전담팀을 꾸렸고, 저녁이 되자 국방부 장관 지시에 따라 사건은 공군에서 국방부 검찰단으로 이관됐습니다. 공군 자체 수사로는 의혹이 충분히 밝혀지기 어려울 거란 지적에 내린 조치였습니다. 수 사 착수 하루 만에 국방부 검찰단은 가해자에 대해 구속 영장을 청구했고, 당일 저녁 영장이 발부돼 가해자는 구속됐습니다. 사건 발생 석 달 동안 지지부진 했던 수 사가 피해자 사망과 첫 보도 이후 빠르게 전개되는 상황이 석연치 않았습니다. 피해 자 유족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봐야 했습니다.

처음이 아니었다… 반복된 성추행과 2차 가해
6월 초, 국군 수도병원에서 故 이 중사의 유족을 만났습니다. 이 중사의 부모님은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이 중사의 시신이 안치돼 있는 장례식장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아버지는 큰 목소리를 내기도 했고, 어머니는 빼곡히 적힌 메모지를 보며 침착하게 말을 이어가다 중간 중간 흐느껴 울었습니다. 한 순간 딸을 잃은 부모의 분노와 슬픔, 고통이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설마 진짜로 그랬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때로는 사실이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강박에 같은 질문을 여러 차례 되물었습니다. 그때 마다 유족은 당시 이 중사로부터 들었던 이 야기 등 당시 정황을 일관되게 말했습니다. 신빙성이 있다 고 판단됐습니다. 유족은 이번 성추행 외에도 이 중사가 과 거 상관들로부터 성추행 피해와 2차 가해를 반복해서 당 했다는 새로운 이야기를 털어놨습니다. 이 중사가 성추행 피해 사실을 알리자 ‘누구나 한 번은 겪는 일’이라며 회유와 압박을 한 2차 가해자가 과거 이 중사를 성추행 한 적이 있으며, 1년 전에는 다른 상관으로부터 또 다른 성추행 피해를 당한 적이 있었다는 겁니다. 당시에도 이 중사 는 회유를 당해 신고는 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사건과 판박이 같은 일이었습니다. 이 같은 내용은 수사로도 확인됐습니다. 해당 가해자들은 혐의가 인정돼 구속되거나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고 있습니다.

드러나는 축소·은폐 정황… 비상식적인 군의 성범죄 대응
여론이 거세지자 대통령까지 나서 엄정 수사를 지시했고, 이성용 공군참모총장은 사퇴했습니다. 수사가 속도를 내면서 초기 부실 수사, 보고 누락 등 축소와 은폐 정 황은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국회에 출석한 공군 양성평등센터장은 국방부에 한 달이 지나서야 늑장 보고한 이유에 대해 “지침을 미숙지 했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라는 황당한 말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피해자를 적극 보호해야 할 국선 변호사는 대면 면담을 한 차례도 하지 않는 등 부실변론을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유족에게는 군 수사를 믿으라던 공군 법무실장을 비롯한 법무실 관계자들은 줄 줄이 공수처 이첩을 요청하며 이율배반적인 행태도 보였습니다. 20전비 군사경찰은 이 중사가 가해 상황이 녹음돼 있는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를 첫 조사를 받으며 제출 하려 했음에도 받아주지 않았고, 사흘 만에 가해자 조사도 없이 ‘불구속’ 결정을 내렸습니다. 공군 경찰단장은 국방부에 사건을 보고하면서 여러 차례 ‘성범죄 피해 사 실을 빼라’고 실무자에게 지시했다고 합니다. ‘설마 그랬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상식적인 군의 대응은 수사 결과 대부분 사실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故 이중사, ‘조직이 나를 죽이려 한다’ 메모남겨
사건을 취재할수록 군이 이 중사를 피해자로 보긴 했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최근 포렌식 작업으로 복구된 이 중사의 휴대전화에서는 ‘내가 가해자가 됐다’ ‘조직이 나 를 죽이려고 한다’는 메모가 확인됐습니다. 피해 발생 다음 날, 술자리를 주관했던 상 사와 면담한 뒤 이 중사가 작성한 글입니다. 피해 직후부터 극단적 선택을 고민할 정 도로 회유와 압박이 집요했다는 걸 짐작케 합니다. 상관들은 성범죄 발생으로 인해 받을 불이익을 걱정하며 자신들의 안위만 챙겼습니다. 가해자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 와 처벌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개선하려면 성범죄 발생시 지휘관이 불이익 을 받게 돼 사건을 은폐하게끔 유도하는 군의 구조적 문제도 손을 봐야합니다.

국방부 합동수사단은 수사 착수 한 달도 안 돼 20여 명을 피의자로 입건하거나 기소했습니다. 이례적으로 빠른 수사가 가능한 것도, 반면에 늑장 부실 수사가 가능했던 것도 지휘관이 수사권을 쥐고 있는 군의 조직적 특성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다른 군 내 성범죄 사건들이 묻힌 것은 아닌지, 여론에 따라 군 수사의 방향이 바뀌는 건 아닌지 말입니다. 이 중사와 남편 이 나눈 SNS 대화 내용을 보면, 이 중사는 숨지기 전 계속해서 군에 ‘도와달라’는 신 호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밤마다 ‘약을 먹어도 잠이 안 온다’며 불면증을 호소했고, ‘나를 얕볼 것 같다’며 주변 시선을 두려워했습니다. 하지만 이 중사를 향한 회유와 압박은 계속됐고, 군의 보호 체계는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언론의 관심 없이도 피해 자가 완벽히 보호받고, 가해자는 엄격하게 처벌될 수 있어야 성범죄 처리에 있어 군 에 대한 신뢰는 회복될 수 있을 것입니다.

코로나19 속 올림픽, 선수를 위한 변명

 

KBS 문영규 기자 

 

스포츠 강국 대한민국, 스포츠 후진국 대한민국
코로나19의 그늘은 약자들에게 유독 더 어둡게 드리워졌다. 모든 스포츠계가 코로나19로 신음했지만, 그 깊이는 달랐다. 코로나19로 인해 스포츠 선진국과 후진국, 인기 종목과 비인 기 종목의 명암이 더 뚜렷이 드러났다. 수영 스타 박태환의 전성기, 언론은 수영 불모지에서 영웅이 탄생했다며 찬양했다. 동시에 또 다른 스타가 탄생할 수 있게 불모지를 개간해야 한 다고 떠들어댔지만, 매번 반복된 공염불이었다.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 도쿄올림픽을 앞 둔 지금에도 여전히 비인기 종목의 토양은 바뀌지 않았음을 코로나19는 일깨워줬다.

지난해 침체됐던 수영계를 들썩이게 한 새 얼굴이 등장했다. 서울체고 3학년인 고등학생 황선우다. 황선우는 박태환의 자유형 100m 한국 신기록을 경신했고 200m에선 세계 주니 어 신기록도 세웠다. 고무적인 것은 황선우가 기록을 세운 수영장 수심이 1.8m란 점이다. 올 림픽 수영장의 수심은 3m인데, 수심이 깊어 부력이 강하고 물살의 저항이 적어 기록 단축의 가능성이 크다. 수영연맹은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3m 수심에 적응하기 위한 국가대표 합숙 훈련을 계획했다. 하지만 국내에선 어려운 일이었다. 장소가 문제였다. 국내에서 수심 3m 수영장은 2019년 세계선수권이 열렸던 광주 남부대 단 한 곳이다. 연맹은 남부대와의 협조 로 일주일 이상의 합숙 훈련을 추진했지만, 결국 거절당했다. 남부대는 이미 일반 동호인 회 원을 대상으로 한 강습 등으로 일정이 차 있어 장기간 대관은 힘들다는 입장이었다. 정당한 비용을 낸 회원들의 양보를 강요 할 수도 없었다. 수심 적응 훈련은 올림픽 규격 수영장 경험이 거의 없는 황선우 에겐 더욱 필요한 훈련이었다. 사 실, 코로나19만 없었다면 큰 문제 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국제대 회에 참가하거나 해외에서 전지훈련을 하면 해결됐을 일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이 모든 것이 불가능했다. 스포츠 강국이 라 자부하는 나라에 국가대표가 훈련할 국제규격 시설조차 없었다. 국가대표 선수들을 위해 지어진 진천선수촌조차 수심은 2m였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소수 엘리트 선수 육성에만 치중해왔고, 그마저 비메달권 종목, 비인 기 종목에 대한 투자는 적었다. 생활체육 기반이 빈약하니 인프라 확충도 제대로 이뤄질 리없다. 대한민국은 올림픽 메달 종합순위 10위 안에 드는 스포츠 강국이지만 스포츠 선진국은 아니었다.

선수는 1류, 인프라는 2류, 행정은 3류
국내에서 코로나19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종목은 레슬링이었다. 레슬링 대표팀은 올림픽 진출권을 위해 장기간 해외 파견을 계획했다. 4월 초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대회와 5월 초 불가리아에서 열린 대회를 모두 치르고 귀국하는 일 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무더기 확 진자가 나왔고, 확진 판정을 받아 대회에 나갈 수 없는 선수도 생겼다. 한 달이 넘는 장기간 파견이 사태를 키운 원인 중 하나였다. 두 대회 사이에 한국으로 돌아올 경우 2주간의 자가격리로 정상적인 대회 준비가 불 가능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상황에서 프로 스포츠의 대처는 조금 달랐다. K리그 울산 현대는 해외에서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경기를 치른 후 곧장 국내 경기가 예정돼 있었다. 만약 2주간 자가격리를 한다면 국내 리그를 위한 훈련이 힘든 상황이었다. 다행히 정부와 방역 당국의 협조로 ‘7일 동일집단(코호트) 격리’를 승인받아 구단 시설에서 훈련하며 경기를 준비할 수 있었다.

다른 종목들도 코로나19로 올림픽 준비에 여러 걸림돌이 생겼다. 핸드볼은 유럽 등 체격 이 큰 국가에 대비하기 위한 해외 전지훈련이 필수적이었지만, 코로나19로 불가능했다. 결 국, 차선책으로 국내에서 남자 선수들과 훈련을 하며 준비 중이다.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 들의 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이 4월 말에서야 이뤄졌는데, 이를 조금만 앞당겼어도 상황은 달라졌을 수도 있다. 물론 백신 접종에 우선순위야 있었겠지만, 문체부와 대한체육회가 방 역 당국과 공조하는 과정이 원만치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접종이 이뤄지기 직전까지 접종 일정을 알 수 없어 해외 전지훈련 등의 계획을 구상할 수 없었다. 스포츠계로선 아쉬움 이 남는 부분이다.

모기업에 존속된 프로스포츠, 올림픽이 전부인 아마추어 스포츠
국내 스포츠는 아마추어는 물론 프로도 기업의 후원이 가장 큰 재원이다. 프로 구단이 자체 매출보다 모기업의 후원에 의존하는 기형적인 구조다. 프로가 프로답지 못한 이 괴상한 현실은역설적으로득이됐다.프로구단은관중수입감소로큰적자를봤지만,선수들이입 은 피해가 치명적이진 않았다. 그들의 연봉 대부분이 관중 수입이 아닌 모기업의 지원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프로야구의 개최가 국난 극복의 신호로 여겨질 만큼 큰 관심을 받았다. 리 그는 무관중으로 시작됐다. 관중 수입의 일시적 부재는 큰 피해였지만 산업을 붕괴시킬 정 도는 아니었다.

올림픽을 앞두고도 인기 프로종목과 아마추어 종목 사이에는 온도 차가 있다. 일본에서도 도쿄올림픽 개최에 부정적 견해를 밝힌 선수들은 테니스의 니시코리 등 대부분 프로 선수였 다. 프로 선수에게도 올림픽은 영광스러운 무대지만 리그보다 더 중요하다고 단언하긴 힘들 다. 반면, 우리나라의 아마추어 선수들에겐 올림픽이 전부다. 코로나19로 그 비중은 더 커졌 다. 지난해 국내에선 대부분의 아마추어 스포츠 대회가 취소되거나 축소됐다. 선수들은 기 량을 펼칠 기회조차 잃었다. 대회가 없어지니 관심도 줄고 기업의 후원도 끊겼다. 지난해 예 정됐던 탁구 세계선수권 대회를 앞두고 탁구연맹은 20억 원의 대출을 받았다. 이 돈은 입장 권 수입과 기업의 후원 계약 등으로 충당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대회가 취소되면서 당연히 계약도무산됐고연맹은원금은물론매년5천만원상당의이자를내야하는상황에놓였다.

이제 그들에겐 올림픽만이 대중들의 관심을 받고 종목이 존속될 수 있는 유일한 생존의 기회다. 생활체육 기반이 빈약한 엘리트 종목들이 올림픽에서도 성과를 못 낸다면 관심도 지원도 없을 것이다. 일본 내 코로나19 대유행에도, 일본의 역사 왜곡으로 대회를 보이콧해 야 한다는 국내 여론에도 선수들은 도쿄로 향할 수밖에 없다.

한국 야구는 ‘올림픽 챔피언’의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SBS 이성훈 기자 

 

한국 야구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전승 우승’의 신화를 썼다. 극적인 명승부가 가득했던 당시 대표팀의 쾌거는 한국 프로야구의 인기 폭발로 이어졌다. 그해 처음으로 경기 당 평균 관중이 1만 명을 넘어섰고 2012년까지 30% 넘는 성장세를 보였다. NC 다이노스와 KT 위즈가 새로 창단됐고, 광주와 대구, 서울과 창원에 새 야구장이 지어졌다. 베이징 대회 이후 올림픽에서 야구가 사라졌기에, 한국은 여전히 ‘올림픽 야구 디펜딩 챔피언’이다. 그리 고 13년 만에 도쿄에서 왕좌 수성에 나선다.

베이징에서처럼 이번에도 김경문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13년 전 대표팀 막내급이었던 강민호와 김현수가 이번에는 최고참으로 후배들을 이끈다. 이들 3명 말고는 모든 게 바뀌었다. WBC와 올림픽에서 한국 야구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이대호와 정근우, 오승환, 추신수 등 1982년생들은 이제 아무도 없다. 류현진, 김광현, 양현종 등 세계를 호령했던 에이스들도 아무도 없다. 1982년생과 ‘좌완 3인방’이 모두 빠진 대표팀은 2003년 아시아 선수권 이후 18년 만에 처음이다.

이들의 빈자리를 신예들이 메워야한다. 자타공인 이번 대표팀의 간판스타는 이정후와 강백호다. 2017년과 2018년 신인왕을 차지했던 이들은 올 시즌 프로야구에서 4할에 육박하 는타율을 기록하며 MVP경쟁을 펼치고 있다. 둘중 누가 나은지에 대한 논쟁, 이른바 ‘후호 대전’은 한국 야구팬들의 즐거운 소일거리이기도 하다. 이들의 ‘천재성’과 타자로서의 특징은 처음 보는 투수들을 상대해야 하는 국제대회에서 더욱 돋보일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삼진을 감수하면서 ‘일발 장타’를 노리는 유형의 타자들이 아니 다. 이정후는 원래 국내 최고의 정교 함과 콘택트 능력을 뽐냈고, 강백호도 올 시즌 삼진 빈도를 극적으로 떨어뜨려 정교함까지 겸비하게 됐다. 즉 이들은 처음 보는 투수들의 낯선 공도 어떻게든 맞춰내는 능력을 가진 타자들이다. 김현수, 이용규, 정근우 등이 국제대회에서 상대투수들을 괴롭혔던 바로 그 능력이다.

투수진에서 주목할 얼굴은 원태인과 고영표다. 소년 시절부터 ‘야구 천재’로 유명했던 원 태인은 프로 입단 3년차인 올해 마침내 잠재력을 꽃피웠다. 직구 평균 시속이 지난해보다 2.6km/h이 빨라져 145km/h를 넘어섰고, 기존 주무기인 체인지업 외에 슬라이더의 위력이 높아졌다. 6월 25일 현재 프로야구 토종 투수들 중 다승(8승)과 평균자책점(2.48) 1위다. 국 제대회에서도 제 기량을 충분히 펼칠 수 있는 담대함도 갖췄다는 평가다. 프로 무대에 이어 올림픽에서도 호투를 펼친다면 ‘원태인 시대’의 개막을 선포하게 된다. 그리고 어쩌면, 원태인 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맡을 투수가 고영표다.

세계 야구계에는 최근 10년 넘게 ‘속도 혁명’이 벌어졌다. 스포츠 과학의 성과를 이용 해 투수들의 투구 속도를 빠르게 만드는 훈련 방법이 개발되고 전파됐다. 2010년에 시속 146.7km/h였던 메이저리그의 직구 평균 시속은 해마다 증가해서 올해는 사상 처음으로 150km/h를 돌파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7년 전인 2014년에, 일본 프로야구의 직구 평균 속도는 우리와 큰 차이가 없었지만 지금은 3km/h 이상 빨라졌다. 그래서 지금 우리 대표팀 정통파 투수들의 빠른 공은 다른 나라 타자들에게 빠르게 느껴지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즉 속도로 상대 타자들을 압도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속도로 정면승부가 어렵다면, ‘변칙’이 해법일 수 있다. 해외 타자들이 낯설어 할, 현란한 변화구와 제구력을 갖춘 언더핸드 투수 같은. 바로 고영표 같은 투수다.

지난해 말 제대하고 KT로 돌아온 고영표는 예전보다 훨씬 향상된 구위로 타자들을 압도 하고 있다. 공이 빨라졌고, 주무기 체인지업의 움직임이 더 커져 ‘마구’ 수준이 됐다. 올 시즌 12번의 선발 등판에서 ‘6이닝 이상, 3실점 이하’를 뜻하는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하지 못한 경기는 딱 한 번 뿐이다. 리그 선발 투수들 중 가장 볼넷비율이 낮을 정도로 안정적인 제구까지 갖췄다. 투구 폼과 공의 특성을 볼 때, 고영표는 처음 보는 타자들을 가장 헷갈리게 만들 투수다. 그래서 언더핸드 투수가 많은 일본만 빼고, 나머지 나라들과 경기들 중 가장 중요한 승부에 선발로 투입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조별리그 두 번째 경기로 사실상 ‘조1위 결정전’ 이 될 미국과 경기에서 활약이 기대된다.

새 얼굴들이 많다는 건, 불안 요소도 많다는 뜻이다. 앞서 쓴 ‘압도적 에이스 의 부재’ 외에도, 김경문 호에는 몇 가지 약점이 눈에 띈다. 과거 이승엽이 맡았 던 ‘결정적 순간 홈런 한 방’을 쳐줄 타자 가 드물다. 좌타자가 많고 우타자가 적 어 타선이 ‘좌편향’ 됐다. 2루수 박민우 와 외야수 박건우가 부진한 성적과 팀내 사정으로 2군에 왔다갔다 한다. 이들이 정상 컨디션을 찾지 못한다면 대표팀 전력에는 거대한 구멍이 뚫리게 된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1명 적은 ‘10명 투수진’이 10일 동안 최대 8경 기를치러야하는일정을감당할수있을지도걱정이다.

대표팀은 이런 리스크들을 극복하고 ‘올림픽 챔피언’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확실한 건, 바 로 지금 한국 야구는 대표팀의 선전을 갈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베이징 금메달’ 효과로 시작 된 한국 프로야구의 황금시대는 2015년쯤부터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 관중 숫자가 정체됐 고 TV 시청률과 인터넷 동영상 조회 수는 떨어졌다. 코로나19 시대에, 다른 콘텐츠들과 달리 프로야구 시청자수가 감소했다는 건 심각한 적신호다. 오죽했으면 이정후가 대표팀 발탁 소 감으로 “요즘 어린이들은 야구에 관심이 없다. 올림픽을 통해 야구에 관심 없는 분들도 좋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을까. 이정후의 말은 한국 야구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 들의 마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