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처럼 보고 소처럼 나아갑시다

 

2020년이 끝나고 드디어 2021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한 해를 보낸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지난해 코로나19로 겪었던 고통과 불편한 기억은 아마도 인류 역사상 처음 모든 사람이 함께 느꼈던 전(全)지구적 기억과 경험이 아닐까 싶습니다.

올해 2021년은 12간지(干支)의 두 번째 동물인 소(牛)의 해입니다. 저는 소라는 동물을 생각할 때면 늘 ‘느리다’는 생각이 먼저 연상됩니다. 아마도 천천히 여물을 되씹고 늘 천천히 걷는 소의 모습만 봐왔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소의 걸음을 뜻하는 ‘우보(牛步)’에는 너무 느려 답답하다는 의미도 있는 반면 멀리 내다보며 신중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후자의 의미로 쓰이는 대표적인 사자성어로 ‘호시우행(虎視牛行)’이 있죠. ‘호시우보(虎視牛步)’ 혹은 ‘우보호시(牛步虎視)’라고 쓰기도 하죠. ‘호시우행’ 혹은 ‘우보호시’란 말은 ‘호랑이처럼 바라보고 소처럼 행동한다’는 것으로 ‘명확한 목표물을 향해 예리하게 주시하고 판단하되, 행동은 신중하고 우직하게 하라는 뜻일 겁니다. 다소 진부할 수도 있는 사자성어지만 2021년 소의 해를 맞아 이 단어에서 저는 우리 언론인, 방송기자들에게 주는 남다른 의미를 발견해 봅니다.

‘호시’는 관점이고 ‘우행’은 실천입니다. 이를 우리 저널리즘에 대입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가까이는 우리 주변의 불합리와 차별을 찾아내고 멀리는 우리 사회와 세상이 나아갈 방향과 미래를 바라보는 관점을 우리 방송기자들이 갖추기를 기대해 봅니다. 아울러 온갖 비판과 어려움 속에서도 뚜벅 뚜벅 우리 언론인이 해야 할 일들을 찾아 하나하나 실천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작금의 언론 환경 속에서 우리 언론인들은 지금 무엇을 어떻게 뉴스로 전해야 할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럴 때 일수록 정론직필(正論直筆)이 중요할 때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집권 초기, 개혁을 실천하기 위한 국정운영의 기조로 ‘호시우행’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당시 청남대에서 쓴 글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납니다.

‘나라는 생각하지 않고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만 생각하는 일부 사람들이 아무리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고, 못난 저를 이 시대의 희망으로 보고 있는 양식 있는 국민들과 함께 저를 흔드는 사람들까지 가슴에 안고, 호랑이처럼 보고 소처럼 나아갈 것입니다.’

올해 방송기자연합회는 회원 여러분의 ‘호시우행’을 위해 늘 함께 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성재호 방송기자연합회장

온전한 나의 것 만들기

 

내가 만든 나의 자전거

YTN의 이규 기자에게 자전거로 서울 전역을 누비는 이동학 기자라는 소개로 릴레이를 받게 되었을 때 매우 당혹스러웠다. 자전거를 좋아하지만 자전거에 대해서 무언가 이야기할 만큼 지식이 깊지 않다. 자전거에 대해서라면 만만한 릴레이에도 이미 여러 선배들이 좋은 글들을 실어주셨다. 그렇다고 자전거를 출중하게 잘 타거나 자전거로 전국 일주를 하거나 할 만큼 많이 타는 것도 아니다. 자전거래며는 출퇴근 할 때 이태원과 충무로를 오가는 것과 한강이나 남산을 가볍게타는 것이 전부다. 조금 색다른 점이라면 내 자전거는 내가 직접 만든 자전거라는 것이다. 자전거를 직접 조립하고 수리하는 사람들이 적지는 않다. 몇 가지 자전거 전용 공구만 있으면 쉽게 배울 수 있다. 분명한 건 자전거를 만들고 수리한 일이 나에게 큰 만족감을 준다는 사실이다. 이번에는 이 자전거를 통해 내가 일상 속에서 만족을 찾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자전거 시장은 패션 시장만큼이나 유행에 민감하다. 자전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그 차이를 안다. 10단이니 11이니 하는 기능적 측면뿐만 아니라 프레임의 설계 방식 등. 대형 자전거 제조사나 부품 제조사들은 크고 작은 차이를 만들어 가며 유행을 선도한다. 나는 유행의 흐름에 휩쓸리기 보다 내의 개성이 담긴 자전거를 원했다. 아무리 비싸고 좋은 자전거여도 불필요하게 느껴지거나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꼭 있었다. 첫 자전거는 기성 자전거 제조사의 자전거였지만 구입한지 얼마 안 되어 하나 둘 뜯겨져나갔다. 마음에 안 드는 부속은 바꾸고 그렇지 않은 부속도 이유 없이 뜯었다. 망가트리고 고치는 과정을 통해 자전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자전거를 탄 시간보다 분해하고 조립한 시간이 더 길었다.

그 과정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자전거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성 제조사에서는 만들어 주지 않은 나의 개성이 온전히 담긴 자전거. 프레임을 비롯하여 자전거에 필요한 부속을 하나둘씩 사 모으기 시작했다. 파란색의 크로몰리 프레임, 요즘 나오는 검은색이 아닌 은색의 구동계 등. 나의 기준에 맞는 것들만 사다 보니 부속을 다 사 모으는 것만 몇 개월이 걸렸다. 그렇지만 자전거를 완성하였을 때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다고 느꼈다. 고급 부속들로 만들어지거나 빠른 자전거는 아니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적은 자전거였다. 나에게 자전거는 취미나 이동의 도구이면서 개성의 표현이었다.

목공, 공간에 애정을 쌓는 일

나는 자전거뿐만 아니라 가구도 직접 만든다. 나의 작은방에 있는 가구들은 대부분 직접 만든 것들이다. 가구를 직접 만드는 일은 시간과 품이 많이 든다. 손으로 거친 목재를 부드럽게 다듬기 위해선 경제적으로도 기성품보다 낫다고 할 수 없다. 원하는 목재와 공구들을 하나씩 사다 보면 생각했던 예산을 초과하기 일쑤다. 목공 전문가가 아니라서 아무리 공들여 만들어도 기성품보다 투박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직접 가구를 만드는 이유는 나의 공간에 딱 맞는 가구를 만들기 위해서다. 아무리 비싸고 이름난 브랜드의 수트라도 몸에 맞지 않으면 소용없다. 비싼 가구처럼 만듦새 완벽하지는 않아도 나의 가구들은 내 공간에 딱 맞고 내가 원하는 기능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가구다. 고등학교 때 처음 만든 오디오장은 아직도 내 방을 지키고 있다. 기성품 중에는 더 세련되고 완성도 높은 오디오장이 많지만 내 방 크기에 딱 맞고 나의 요구를 정확히 반영한 제품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나의 오디오장이 처음 만들어 투박하고 미숙하지만 오래도록 내 방을 지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런 가구들이 하나둘씩 늘 때마다 공간에 대한 애정이 생겨난다. 공간에 딱 맞는 가구를 직접 만드는 일은 공간에 애정을 쌓는 일이다.

희소성보다 내가 원하는 무엇을 찾아서

희소성이나 유일함은 중요한 가치가 아니다. 남들과 같은 것을 쓰는 게 싫어서 자전거나 가구를 직접 만드는 게 아니다. 쇼핑몰 구경하는 것도 좋아하고 인터넷으로 필요한 물건을 찾거나 사기도 한다. 가구도 내가 원하는 디자인과 소재, 크기, 기능에 딱 맞는 제품이 있다면 직접 만들기보다 구입한다. 많은 사람들이 쓴다 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개성은 희소성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나름의 기준을 통해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려내는 과정을 통해 개성은 명확해진다. 무언인가 직접 만들고 손보는 것은 개성을 명확하게 하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이다. 직접 만드는 과정 속 수많은 선택과 실패를 통해 내가 원하는 것과 그것을 어떻게 구현해야 할지 알게 된다. 내가 직접 만든 자전거나 가구가 나만이 것이어서 소중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것들이 어떤 기성품 보다 나의 개성과 요구를 잘 담아내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애착을 느끼게 한다.

다음 목표는 집이다. 나의 큰 아버지는 홍성의 한 시골집에서 한 평생을 사셨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분가를 하면서 큰 어미니는 시집오며 그 집에 살게 되셨지만 큰 아버지는 그 집에서 태어나 이사 한 번 없이 평생을 보낸 유일한 분이다. 오래되어 불편하고 문화재로서 가치가 있는 집은 아니지만 집안 곳곳에서 그분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큰 아버지께서 그 집에서 보낸 한 평생 동안 집도 큰 아버지를 닮아갔다. 요즘은 큰 아버지처럼 한 집에서 평생을 보내기 쉽지 않다. 나만 하더라도 학교와 직장을 쫓아 몇 번을 이사했다. 옛날과 달리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이 대부분인 지금 집에 나의 개성을 드러내는 것도 많은 제한이 따른다. 그래서 나를 닮아 갈 수 있는 집을 찾고 싶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해 줄 수 있는 집도 좋지만 오래도록 살아가며 부족한 부분은 직접 고치고 내가 만든 가구들로 채워 넣고 싶은 집을 가지고 싶다. 감각적이고 트랜디한 인테리어의 집보다 조금씩 쌓아가며 애정의 깊이를 더 할 수 있는 온전한 나의 집 을 꿈꾸어본다.

다음 릴레이는 KBS 유용규 기자다.
얼마 전 자녀를 얻어 하나의 가정을 일군 KBS 유용규 기자의 일상에 대해 들어보자

MBN 이동학 기자

석 달 간의 뉴미디어 표류기
(feat. 성공 사례 없음)

 

‘전조등 교환은 개껌?’

우리 집 자가용 전조등이 나갔습니다. 야맹증 없어서 다행이지, 라이트 안 켜니까 밤길 정말 어둡더라고요. “유튜브 몇 개 찾아보면 답 딱 나오겠지.” 과연, 예상대로입니다. “10분밖에 안 걸려요.” “여성분들도 금방 하셔요.” “혼자 갈면 만 원, 카센터 가면 10만 원.” 그렇지요. 요 정도는 개껌입니다.

호기롭게 보닛을 확 열어젖혔습니다. 그 다음 더스트캡(라이트에 먼지 들어가지 말라고 씌워 놓은 뚜껑. 전문가 느낌 팍팍!)을 찾아서 열었는데…. 인터넷 폭풍 검색으로 산 전구와 모양이 너무 다릅니다. “전 차주님이 전조등을 튜닝해놨구만.” 거기 달린 전구와 똑같은 놈을 다시 주문해서 손쉽게 갈아 끼웠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불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뭐지? 맞게 했는데.’ 다시 유튜브 폭풍 검색. “카센 터 가시기 직전 마지막으로 찾아보는 영상. 퓨즈를 교환해보세요.” ‘아하, 퓨즈 문제였구나. 그래. 하나 배웠고, 이번 한 번은 카센터 가준다.’ “제가 전구는 다 갈았고, 퓨즈가 나간 거 같아요. 퓨즈만 봐주시면 될 거 같아요.” ‘아는 티 좀 냈으니, 눈탱이는 못 때릴 거야. 나는 다 계획이 있거든.’ “이거 퓨즈는 정상인데요.” 잠깐 만져본 정비사님이 금방 원인을 찾아내십니다. “고장 난 하향등이 아니고, 멀쩡한 상향등을 갈았구먼요. 하향등은 여기, 상향등 바로 옆에 있어요.” 띠로리, 또르르……

이 바닥 겸손해야 한다

YTN PLUS(온라인 전담 회사) 발령 석 달. 제작팀 PD 11분의 콘텐츠 제작에 일일이 참견하고 방향을 함께 논의하는 ‘바이스’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겉은 번지르르한데, 그 쉬운 전조등 교체 때처럼, 여기서도 성공 경험은 적고, ‘좌충우돌 적응기’만 있습니다. 타사 유튜브 콘텐츠를 열심히 찾아보고는 있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PD님들이 재미와 의미를 모두 잡으실 수 있게 충분히 지원해드리고 싶은데, 어디서 조회 수가 터지는지 아직 포인트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 옆자리 팀장(1995년 입사하신 촬영기자 선배)도 “유튜브 진짜 모르겠다.”는 말을 달고 사십니다. 둘이 합쳐 39년 차인데, 온라인에서는 짬바(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안 먹히나 봅니다. (아, 저희가 짬바 원조인 래퍼 원썬 씨와 ‘드랍 더 이슈’라고, 래퍼가 알려주는 요즘 이슈 콘텐츠를 만들었는데, 많이 아쉬운 조회 수로 시즌 1을 종영했습니다. 팀장님은 처음 기획 회의 때보다 많이 겸손해지셨습니다.)

물론, 몇 가지 명제는 확인했습니다. 그중 공유할 만한 한 가지는 ‘잔머리는 안 통한다.’입니다. 독일 사람, 다니엘이 알려주는 국제뉴스 ‘와이즈맨’ 제작을 도와드리다 있었던 일입니다. 담당 PD님이 홍콩 민주화 시위를 발제하셨는데, 다른 편보다 내용이 어렵고 정리도 덜된 것 같았습니다. ‘이번 편은 기대감 내려놓자.’ 그런데 웬걸. 조회 수가 50만을 넘습니다. ‘뭐지? 어디서 터진 거지.’ 일단, 이유는 못 찾겠고, 얕은 잔기술 한번 써보기로 합니다.

‘이건 중국 코드야. 중국 욕하는 콘텐츠는 뭘 만들어도 잘 팔릴 거야.’ 제가 이렇게 주장해서
PD님이 ‘빅브러더의 나라, 중국’을 제작하셨지요. 홍콩 편보다 재밌고, 내용도 막히는 곳 없이 쉬웠습니다. ‘으하하, 백만 조회 수는 가뿐하겠어.’ 하지만…. 두 달이 지난 현재, 조회 수는 6.6만 회입니다. (유 PD님, 죄송해요. 제가 또 멀쩡한 상향등을 간 거 같아요;; 저도 팀장 따라 많이 겸손해지겠습니다.)

치트키는 안 쓰렵니다

물론, 조회 수가 안정적으로 나오는 치트키가 없어 보이진 않습니다. 욕하면서 보는 미니시리즈처럼, 욕하면서 클릭하게 만들면 되겠죠. 바로 ‘정치 관련 콘텐츠’. 입담 좋고 씹을 거리 다양한 분들만 모시면 실패할 확률은 높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것도 정답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정치 과잉·혐오를 부추긴 건 80% 언론 탓인데, 여기에 또 정치 콘텐츠라니요. 알량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와이즈맨 ‘일본의 부동산’ 편이 백만 뷰를 넘는 걸 보고, 미국 부동산, 중국 부동산, 영국 부동산 등등 세계의 부동산 시리즈를 하면 될 거 같다는 순진한 상상을 해보긴 합니다)

언젠가 성공담을 쓸 수 있기를

얼마 전, YTN 유튜브 구독자가 200만 명을 넘어 기념 이벤트를 진행했습니다. 독자들의 응원 메시지를 받았고, 아이패드 선물도 드렸죠. 그런데, 아쉽게도 아직 구독자 규모에 걸맞은 YTN만의 ‘킬러 콘텐츠’는 만들어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새해부터는 다양한 기획을 시도해보자는 취지로 제작팀 업무분장을 새롭게 했습니다.

그 시도가 우연한 기회로 성공할 수도, 빗나간 실패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CBS 씨리얼이나 MBC 14F 소비더머니를 보면 능력을 한계를 체감할 때도 많습니다. 그래도, 멀쩡한 상향등 갈아놓고 정신 승리하는 한이 있어도, 최소한 실패 원인이 뭔지 해보는 데까지는 해보려 합니다. 미친 듯이 웃기고 눈물 나게 감동적인 콘텐츠를 기어코 만들게 되면, 그때는 지금의 실패담이 아닌, 어깨 뽕 섞인 성공담으로 다시 한번 기고할 기회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음 글은 저와 국방부를 함께 출입했던 SBS 김수영 기자님이 ‘코로나 국회’에 관해 써주신다고 합니다. 잘 생기고, 일 잘하고, 언제나 나이스한 김 기자님의 주옥같은 글을 기대합니다.

YTN 권민석 기자

 

방송기자가 쓴 책

MBN 재승인 이슈를 바라보며

 

예견된 위기

‘알아서 할테니 안심해도 된다, 취재나 열심히 하라.’는 말이 계속 들려온 한 해였다. 자신만만하던 사측이 받아온 결과는 6개월 24시간 방송 중단 처분. 하지만 그후에도 태도 는 마찬가지였다. 소통은 부족했고 안심시키기 급급했다. ‘임금 삭감 없고 순환 근무 없다, 조건부 재승인됐으니 그만 불안해하라.’는 위로 하나로 모든 구성원들이 마음을 놓고 전과 같은 마음으로 생업에 종사할 수 있을까?

재승인 문제와 자본금 불법 충당 사태, 평기자와는 무관한 윗선의 범죄 행위고 수습은 경영진의 몫이라지만 그 파장을 함께 감당하는 건 올해 내내 일선 기자들의 몫이었다. 주변 사람들마다, 취재원마다 묻는다. “너네 회사 어떻게 되는거야?” “그런데 MBN 거기 아직도 방송해요?” 애써 웃어 보이지만 열심히 질문하고 취재하려던 의욕에도 위기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회사에 전과 같은 보상과 안정성으로 다닐 수 ‘없게’ 되는 것만큼 두려운 건 더이상 이곳에 남고 싶지 ‘않아지는’ 것이다. 안전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머물 곳을 결정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조건부 재승인으로 연명하며, 방송정지 기한을 미뤄가며 다닐 수 ‘있기야’ 한 곳이기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고 싶은 직장이기를 원하는 마음은 나뿐이 아니리라 믿는다. 그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진정한 소통의 출발점일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수년에 한 번씩 불거지는 재승인 이슈보다 피부에 와닿는 고질적인 위기는 매일의 보도국에 있었다. 개국 이래 뼈를 깎는 노력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 시기지만, 실망스러운 부분들도 여전히 많았다. 데스크 평가제가 있었다면 혹평을 면치 못할 윗선들이 위기를 실감하지 못한 듯 여전히 후배들을 입맛대로 마구 굴리고 평가하는 모습을 볼 때면 이 곳에서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을지 막막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미 나온 결과에 대한 회사의 아쉬운 소통 및 향후 법적 대응 계획을 차치하고, 재승인이 난 이상 결국 우리의 미래를 좌우하는 건 이 회사의 비전, 더 나은 회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일 테다. 엄격한 재승인 조건들을 MBN 개혁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사내 유죄를 받은 인물들의 사퇴, 이른바 ‘고인물’의 정화와 더불어 중요한 것이 바로 새로운 물이라고 할 수 있는 보도국을 누비는 일선 평기자들의 몫이리라. 개국 10년만에 맞은 최대 위기에 보도국도 한해 내내 분주한 모습이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변화를 위한 걸음을 내딛고 있다.

젊은 기자들을 주축으로 한 혁신위원회가 꾸려졌다. 그간 관성적으로 유지되던 ‘앵커멘트+비슷한 길이의 리포트’ 나열 형식을 탈피해 더 재밌는 뉴스를 만들어보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그 결과가 바로 종합뉴스 속 새로운 코너들인 ‘세상돋보기’, ‘뉴스피플’, ‘포커스M’이다. 긴 호흡으로 화제의 인물을 만나보고, 트렌드를 읽고, 사회 문제를 깊이 파헤쳐볼 준비를 마치고 차차 울림 있는 이야기들로 좋은 선례들을 만들어가리라 믿는다. 고참 기자들만 모여 하는 큐시트 구성 회의의 투명성 역시 높아졌다. 내부에서 논의되는 내용을 회의 참가자 아니면 알 수 없었던 이전과 다르게, 평기자 1명이 순번을 정해 회의에 참여하고 그 내용을 기록·공유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원한다면 누구라도 오늘 뉴스의 큐시트가 구성된 과정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 자신의 발제가 뉴스에 채택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고,
회의 참여자들 역시 더 긴장감을 가지고 회의에 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 평소 좋아하는 기도문 구절의 일부다. 회사가 치르게 될 행정처분은 평기자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이미 닥친 일일 것이다. 그 속에서 바꿀 수 있는 것을 힘을 합쳐 과감히 바꿔나가며, 때로운 실망스러운 소식들 속에도 기운을 잃지 않고 새로운 MBN으로 태어날 날을 기대해 본다.

MBN 기자 (익명기고)

 

임현식 기자의 포토에세이

더듬이로 천천히 더듬어 가며 느릿느릿 나아가는 달팽이처럼
조심스럽지만 꾸준히 노력해야하는 것이
올 한 해 우리 앞에 놓인 삶이 아닌가 합니다.
모두의 건투를 빕니다.

KBS 임현식 기자 (영상취재부)

아이들의 ‘스위트홈’은 어디에?
– KBS 연말기획 ‘주거빈곤 아동’ 취재를 마치고

 

집 밖은 위험해

드라마 ‘스위트홈’의 인기가 대단하다. 안락한 집이라는 제목이 주는 기대와는 달리 그들이 살고 있던 집 곳곳에 괴물들이 등장하며 몰입감을 선사한다. 현실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집’은 가장 안전한 곳이다. 그래서 우리는 코로나19라는 집 밖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전한 집에 머물러야 한다고 서로를 타일렀다. 그중에서도 아이들은 그 취약성과 집단감염의 위험을 고려해 가장 먼저 집으로 보내졌다.

아이들의 집은 안전한가

첫 질문은 외로움에 대한 것이었다. 아이들, 그중에서도 취약계층의 아이들은 돌봄을 받기 어렵고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 외롭겠다는 짧은 생각이었다. 실제로 만나본 저소득층 아이들은 이미 코로나19 이전에도 오랜 시간을 홀로 보내왔고 정서적인 부분은 소득계층에 따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실직한 부모와 좁은 집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는 데에 따른 답답함과 난방이나 채광과 같이 기본적인 주거 환경조차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온종일 견뎌야 하는 데 대한 불편이 컸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주거빈곤 아동’ 취재였다.

직접 본 아이들의 집은 안전하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해도 잘 들지 않는 어둡고 습한 반지하 방에서 벌레에 물려 한쪽 귀의 청력을 잃었다는 아동의 사연을 듣고, 운이 좋아 벌레를 촬영할 수 있길 바라며 그 집을 찾아갔다. 운이 좋을 필요도 없었다. 그곳에는 환한 대낮에도 장판만 들면 벌레가 있었다. 내려앉은 마룻바닥 밑으로 뜨거운 보일러 열선이 드러나 있는 집도 있었고, 또 다른 집에서는 자그마한 전기난로와 가스 불의 온기가 전부인 부엌에서 아이가 혼자 라면을 끓여 먹어야 했다. 취재로 만난 아이들은 전부 집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일상적으로 위험에 내몰렸다. 비슷한 아이들이 94만 명가량, 아동 10명 중 1명꼴이었다.

주거빈곤 가정도 ‘영끌’한다

왜 그런 집에 살아야 할까. 정부 역시 매입임대나 영구임대의 한계를 알고 있다. 아이와 함께 살기에는 좁거나 환경이 열악한데 이를 보수하기도 어렵다. 실제로 우리가 만난 주거빈곤 아동 중에서는 이미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다자녀 가정에 LH전세 대출 한도를 늘려줬다. 수도권은 세 자녀 기준 1억 4천만 원이다. 이 돈으로 수도권에서 구할 수 있는 집이 있을까. 사례자의 집 반경 1km 내, 집값이 그나마 낮다는 동네의 부동산을 찾아 다녔다. 결과는 매물이 없거나, 가격이 비싸거나, 반지하뿐이었다. 전세임대주택에 들어가기 위해 사회복지단체나 재단에 손을 벌려 부족한 돈을 마련했다는 한 가정의 사연을 듣다 보니 영끌해도 ‘살’ 집이 없다는 건 2030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깨달았다.

사실 이사를 알아본 것은 취재기자의 욕심이었다. 이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도 있었다. 하지만 보호자들에게는 그러한 작은 욕심과 바람도 허용되지 않았다. 가사도우미나 식당 종업원과 같은 서비스업 종사자가 많다 보니 코로나19로 가장 먼저 실직한 이들이 아이들의 보호자들이었고 그런 보호자에겐 지금 사는 곳이 마지막 보루와도 같았다. 열악한 주거 환경이지만, 이들은 그것마저 잃게 될까 전전긍긍했다. 반지하 단칸방에서 사는 한 아동의 보호자는 처음 그 집에 이사할 때 좋아하던 아이의 모습을 기억하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월세가 밀리고 보증금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일자리마저 잃은 보호자에게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사실은 줄일 데 없는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함을 의미할 뿐이었다.

안락한 집은 어디에?

‘최저주거기준’만 가지고는 4인 가족도 13평에 살 수 있다는 말 외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주거빈곤 가정 모두에 집을 지어 주거나 매입해서 나눠줄 수도 없다. 더군다나 노인이나 청년을 대상으로 지어져 인근에 학교나 제대로 된 교통, 치안 인프라도 없는 곳에서는 아이들이 살기도 어렵다. 공공임대주택 중 빈집을 무주택자에게 전세로 돌린다는 정부 정책이 나오는 만큼 단순히 공급되는 양의 문제만은 아니다. 취재하면 할수록 정책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또 한 가지, 무섭게 치솟는 집값만 아니었어도 빌라 4층에 사는 이들이 반지하로 밀려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정부가 2019년 ‘아동주거권 보장’을 내걸었다. ‘개룡이’가 없어지고 중산층마저 세습된다는 말이 나오는 지금, 쉽지 않은 목표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새해의 기운을 빌어 KBS 취재진이 만난 아이들이 더 나은 주거 환경에서 살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KBS 조혜진 기자

코로나로 달라진 연말연초 풍경

 

‘해맞이 명소’ 닫으니 ‘다른 곳’ 북적

풍선은 한 곳을 찌르면 다른 쪽이 튀어나옵니다. 하지만, 여러 곳을 계속 찌르다 보면 튀어나오다 못해 결국 터져버리고 맙니다. 지난 한해 코로나 현장을 취재하면서 가장 자주 보도했던 현상이 ‘풍선효과’였습니다. 클럽이 문을 닫으니 ‘감성 주점’이 확산하고, 음식점이 밤 9시 문을 닫으니 한강공원이 문전성시. 오락실, 노래방, PC방이 폐쇄되니 ‘홀덤펍’으로 사람들이 몰렸습니다.

2021년 새해 첫날도 어김없이 ‘풍선효과’가 문제였습니다. 매해 1월 1일이면 전국에서 수십만 해맞이객이 몰리는 정동진, 경포대, 간절곶 인기 명소가 줄줄이 폐쇄됐습니다. 붉은 통제선만 휘날릴 뿐, 텅 빈 채 고요하기만 했습니다. 마스크 없이 빽빽하게 모여 일출을 즐기던 한 해 전과 극명하게 대비됐습니다.

하지만, 통제선 밖은 또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통제가 느슨한 해변 도로,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잠수교-동작대교, 성산일출봉 같은 명소 인근 주차장은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정부의 방역 지침을 지키는 일은 중요하지만, 한편으론 사각지대에서 숨 쉴 틈 찾아 튀어나오는 시민들을 무작정 비난만 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여기 오면 안되는데, 거리두기 지켜야하는 것 아는데, 너무 간절해서 왔다.”라는 시민 인터뷰가 잊히지 않습니다. 지난 한 해 수험생이었던 두 딸이 학교도 못 가고, 학원도 못 간 채, 홀로 고군분투하며 수능 시험을 치뤄냈는데, 결과가 좋았으면 하는 절실한 마음으로 새해 첫 해를 보러 왔다는 겁니다.

‘코로나 피로’ 어떻게 해소하나

취재 현장에서 점점 더 느껴지는 건 시민들의 피로도가 눈에 띄게 짙어 졌다는 점입니다. 국내 첫 코로나 환자가 발생한지 1년이 다 돼 갑니다. 인터넷을 보면 “코로나 생일이 얼마 안 남았다.”는 우스갯소리가 단순한 말 장난만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올해는 거리 두기로 야기된 시민들의 피로도를 어떻게 줄일지가 과제일 것 같습니다 .

조금씩이지만, 방역 수칙 못 지키겠다는 집단 행동이 전해집니다. 생활체육시설 운영자들이 지침을 더 이상 따르지 못하겠다며 닫았던 헬스장을 열었습니다. 클럽, 노래방 운영자들이 “이러다 죽는다.”라며 구청 앞으로 모여들었습니다. 2020년보다 2021년이 더 걱정되는 건 한계에 이른 풍선이 어떻게 터질 지 모르겠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감염병은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부터 끊어 놓는다는 말이 맞는듯 합니다. 백신 보급이 시급하지만, 동시에 ‘사회 분열’을 어떻게 최소화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절실해 보입니다. 시민들이 국가의 통제에 자발적으로 따를 때 국가가 유지된다고 합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섬세한 접근을 기대합니다.

SBS 유수환 기자

코로나19와 함께한 입사 1년

 

글을 시작하며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기 시작한 2020년 초 입사해 지금까지도 함께해오고 있는 이 순간,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한 해를 돌아보며 제게 목소리를 전해준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끼고 전하게 됩니다.

“관심받지 못한 이곳의 목소리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2020년 11월 30일, 보다 강화된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 격상을 앞두고 서울의 한 줌바 스튜디오를 찾았던 기억이 아직도 마음 한 켠에 남아있습니다.

조명받지 못했지만 또다시 집합금지 행정명령으로 인해 생계를 위협받는 줌바, GX 체육 업계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습니다. 그 시작은 02로 시작하는 전화였죠. 무턱대고 찾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장 문을 열고 싶어도, 영업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그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당신이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를 경청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했습니다.

오전부터 시작된 통화가 2시간쯤 흘렀을까. 줌바 스튜디오 원장님은 그제서야 영업장 방문을 허락해주셨습니다. 약수동의 위치한 건물 지하 1층의 스튜디오에 들어간 순간, 모든 것은 깨끗하게 정리돼있었고 만나 뵐 당시가 마지막 수업이 있는 날이라고 전해주셨죠. 눈에 띈 큰 드럼통 형태의 소독제 앞에서 원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관심받지 못한 이곳의 목소리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막막해요, 깜깜해요”

그 누구도 본인이 직접, 몸소 경험한 일이 아니라면 당사자가 겪고 있는 고충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의 확산세와 정부의 조치를 이해하면서도 당장 언제까지 집합금지 행정명령이 지속될 것인지, 언제부터 영업재개를 통해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을지 걱정하는 줌바 스튜디오 원장님, 오랜 시간 꿈꿔온 헬스장을 세운 20대 후반의 젊은 청년도 코로나19 앞에서는 속수무책인 모습이었습니다. 막막하고 깜깜하다고 호소하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감정적인 아픔을 함께 느꼈습니다. 비록 명쾌한 해법을 제시할 수는없지만, 누군가의 고충을 듣고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소소한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글을 마치며

30년동안 한 자리를 지켜온 중국집도, 학부 시절 자주 가던 고깃집과 술집도 코로나19 바이러스 앞에서 모두가 ‘힘듦’을 경험하고 있는 요즘,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요즘. 그들에게 “요즘 어떠세요?, 힘드시죠?”라고 묻는 것 자체가 결례가 되진 않을까 더욱 더 조심스러워지는 나날입니다. 하지만 주변 곳곳에서 이 순간을 함께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우리는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하고 싶습니다. ‘기자’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경험하고, 전달하는 행위를 통해 조금이라도 일조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참 행복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 소소한 행복을 느끼기 위해 이 일을 택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를 위해 더 무거운 책임감과 사명감을 다시금 새기게 됩니다. 모든 것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모든 순간에 감사하며, 글을 마칩니다.

MBN 정태진 기자

12. 언론학자

2021년, 도래할 방송 저널리즘의 부흥을 기대하며

무엇을, 어떻게, 누가?

한국 방송 저널리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일까? 정치 권력의 수족에 다를 바 없었던 90년대 이전을 제외한다면 30년의 시간이 선택지로 남는데, 이마저도 공영방송의 중립성과 독립성이 심각하게 훼손된 이명박·박근혜 정권 10년을 지우면 불과 20년밖에 남지 않는다. 한국 사회를 나락으로 떨어트린 외환위기 앞에 미리 경고음을 울리지 못한 언론의 책임도 적지 않았던 바 재차 시간대를 좁혀보면 2000년대 초중반이 방송 저널리즘의 ‘영광의 시대’에 가장 가까워 보인다. 재기 넘쳤던 YTN의 돌발영상, KBS 탐사보도팀의 대활약, MBC의 황우석 연구윤리 위반 폭로가 이때의 성과이다. 건국 이래 방송 저널리스트의 자율성이 가장 높았던 시절이다.

하지만 당시를 회고하면, 방송 저널리스트 각각이 제 홀로 분주했던 감이 없지 않다. 개별 성과가 조직의 건전성을 담보하지는 못했다. 이명박 정권 이후 이어진 공영방송 붕괴는 시민과 동반 성장하지 못한 방송 저널리즘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그래서 ‘무엇을 보여주었는가’에서 독자 및 시청자에게 ‘어떤 정치적 효능감을 주었는가’로 기준을 바꾼다면 2016년 하반기에서 이듬해 봄의 대선 전까지가 다음 후보로 부상한다. JTBC의 최순실 태블릿 PC 입수와 TV 조선의 국정농단 연속 보도는 방송사의 뉴스 경쟁을 가속화시켰고, 시민의 ‘촛불혁명’ 열망을 자극하며, 일탈적 대통령의 탄핵을 가능하게 했다. 방송 저널리즘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제고하는 데 기여했고 시민의 주인의식을 북돋았다.

그럼에도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언론에 부착된 ‘기레기’ 등의 멸칭은 사라지지 않았다. 시민의 높아진 눈높이는 기존의 방송 저널리즘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래서 ‘누가 방송 저널리즘의 주체인가’를 기준으로 다시 ‘영광의 시대’를 산정하면 어쩌면 바로 지금이 그때일지도 모르겠다. 독자와 시청자는 거대방송사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가 방송을 만들어 직접 세상과 소통한다. 누구나 기자, 기록하는 자, 저널리스트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전파하고, 독자와 시청자를 재발견·재발명하며, 제도권 언론과 경쟁한다. 그 어느 시대보다 ‘방송’ 뉴스는 차고 넘친다. 하지만 주장이 사실을 압도하는 다수의 ‘가짜 뉴스’와 온갖 광고가 덕지덕지 붙은 1인 미디어와 소위 ‘대안’ 매체를 보자면 이것이 과연 우리가 원했던 시민 참여 저널리즘인지 회의감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영광의 시대’를 판별하는 ‘무엇을’, ‘어떻게’, ‘누가’의 세 기준은 서로 다른 시기 한국 방송 저널리즘의 부분적 성공을 보여주는 키워드이자, 동시에 각각의 기준만으로는 방송 저널리즘 전체의 성공 혹은 좋은 방송 저널리즘의 지속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지시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개별 저널리스트가 열심히 노력해 괄목할 결과물을 내놓았더라도 이들이 당대의 시대정신과 맞닿지 못한다면 이내 돈의 화신 앞에 무릎 꿇을 수 있음을, 시민의 정치적 효능감 신장은 이후 제도 언론 또한 불신과 개혁의 대상으로 문제시할 수 있음을, 그러나 아래로부터의 시민 저널리즘은 자칫 정파성과 상업주의로 각자도생을 낳아 언론판 전체를 황폐화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방송 저널리즘의 ‘영광의 시대’는 저널리스트의 무능함을 혁신하고, 시민의 무력함을 극복하며, 방송 저널리즘을 혼탁하게 만드는 무자격의 배격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조직화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여기가 로도스 섬이다, 여기서 뛰어라

크리스마스 전날 SBS 8시 뉴스를 보며 방송 저널리즘의 ‘영광의 시대’를 앞당길 수 있는 단초를 떠올렸다. 캄보디아 이주 노동자가 난방도 없는 비닐하우스 임시 숙소에서 홀로 돌연사했다는 보도였다. 해당 뉴스는 정소희·섹 알마문 감독의 2018년작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를 자료 화면으로 짧게 소개했고 섹 알마문 감독의 인터뷰도 담았다. SBS가 캄보디아 아주 노동자의 죽음을 계기로 그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고발하며 다큐멘터리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를 뉴스 속에서 지우지 않고 오랜 기간 이 문제를 다룬 당사자 섹 알마문 감독을 직접 인터뷰한 것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실하다.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라는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이주노동자의 오랜 시위 구호이기도 했다. 이주 노동자 문제의 심각성에 동의한다면, 그동안 방송사가 이 문제에 충분히 귀를 기울이지 않았음을 인정한다면, 그래서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이제는 진지하게 바라보아야 할 때라면, 아예 SBS가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를 감독과 협의하여 정당한 조건 하에 긴급 편성할 수도 있었다. 단언컨대, 그 어떤 제도권 언론의 특집 보도도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 만큼의 진정성과 절박함을 담지 못할 것이다.

시민 저널리스트의 뉴스를 ‘무엇’으로 삼아, 뉴스를 직접 만드는 ‘누구’로 이들을 상호 존중하며, 그를 통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를 함께 고민할 때, 방송 저널리즘은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확보한다. 2020년, 커다란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일련의 텔레그램 성착취 고발 보도도 대학생 기자단 〈불꽃>을 통해 비로소 수면 위에 부상했다. 방송 저널리즘은 방송사가 만드는 뉴스의 총합 이상이 된지 오래다. 다양한 시민 저널리스트들이 독립영화, 블로그, 유튜브 등의 매체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다만, 방송사는 파급력과 전달력에 있어 개별 시민, 다른 여타의 매체보다 비교 우위를 갖는다. 따라서 방송사들은 ‘누가’, ‘무엇을’, ‘어떻게’에 대한 문제를 내부에서만이 아니라 방송사 외부와의 관계 속에서 살펴야 한다. 제도권 언론은 ‘누가’, ‘무엇을’, ‘어떻게’의 결합을 유기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경험적·인적·물적 자원을 지녔다. 단순제보 이상으로 시민에게 충분한 자리를 내주며 시민 저널리즘의 옥석을 가려내고 그들과 협업하거나 대화하는 일, 때로는 전위가 아니라 후위에 물러나 방송사가 시민 저널리즘을 든든하게 지원하는 일이 전혀 불가능한 이상으로만은 느껴지지 않는다.

무능-무력-무자격의 악순환 혹은 유능-활력-자격증명의 선순환의 갈림길 앞에서 2021년 방송 저널리즘은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홍성일 언론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