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삶] Welcome to the ball game!


 
매일마다 모시는 알콜은 위장을 촉촉히 적십니다. 하지만 알콜의 구원을 받지 못하는 정서는 업무와 생활속에서 메말라가고, 이내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럴수록 지난날 내 일상을 적셔주던 책들이 떠오릅니다. 과거 나를 만든 책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동료들이 전해주는 과거 ‘책’ 이야기 속에서 ‘내 책’을 떠올려보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_편집자 주





 





Welcome to the ball game!
박민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SBS 유성재 기자



벌써 2년 전의 일이다. 결혼을 하고 1년 반 동안 부모님을 모시다가 분가를 하기로 결정했다. 외삼촌이 살고 계시는 경기도 김포 근처로 부모님이 이사하기로 하고, 나와 아내는 그동안 모아둔 돈과 부모님의 도움을 보태, 회사와 가까운 문래동에 주상복합 오피스텔을 전세로 계약할 돈을 마련했다. 새 집은 방이 세 개, 화장실이 두 개, 둘이 살기엔 제법 쾌적했고, 제일 윗층에 자리 잡은 덕에 야경이 볼 만 해서 아내와 나는-비록 전세일지라도-기분이 꽤 좋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뿌듯한 것은, 안방으로 쓰일 큰 방과, 온갖 자질구레한 물건과 계절이 지난 옷들을 쌓아두는 창고 용도로 쓰일 작은 방 외에, 남은 방 하나를 온전히 ‘책방’으로 꾸밀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인테리어 업체를 수배해, 문을 열고 들어서면 양쪽으로 보이는 벽을 모두 책장으로 꾸몄다. 창문 아래에는 작은 책상을 놓고, 책상 옆으로 컴퓨터와 전등, 스피커를 설치했다. 책장에는 결혼 전 내가 갖고 있던 책과, 결혼 전 아내가 갖고 있던 책과, 결혼 후 둘이 각자의 취향대로 사들인 책들이 작가별, 장르별로 책장에 가지런히 꽂혔다. 대학 시절의 전공 서적과, 철지난 잡지들, 영어 수험 서적들은 이사를 하면서 거의 버렸는데도 책장은 꽉 찼다. 족히 5백 권은 넘어 보였다. 이사한 뒤, 한동안은 그 방에 들어서기만 해도 괜히 기분이 좋아 정작 마음먹었던 독서는 못하고, 킬킬거리면서 책 제목만 눈으로 훑어보며 휴일을 보내기도 했다.

보름 전 난데없이 ‘나를 바꾼 한 권의 책’(혹은 ‘책들’)이라는 주제를 받고, 퇴근한 뒤에 책방에 들어가 봤다. 그리고 말없이 양쪽 벽을 메운 책장을 천천히 바라보며 눈에 띄는 책들의 내용을 복기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대부분의 책들은 ‘내가 (멋대로 내용을) 바꾼 책들’이 되어 있었다. 이건 이런 내용, 저건 저런 내용, 그건 들춰볼 가치도 없는 내용…. 저자가 알면 화를 버럭 내도 좋을 불경한 생각들 속에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간신히 한 권의 책을 골라 들 수 있었다. 그래도 최근 10년 사이에 내 곁을 스쳐간 책들 가운데 내 맘대로 내용을 바꿔놓지 않은 책. 그러므로, 반대로 ‘나를 바꾼’ 이라는 수식에 현재로서는 가장 어울릴만한 책. 바로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한겨레신문사,2003)이다.

내가 이 책을 읽은 것은 2003년 11월 4일이었다. 당시 근근이 글을 써 올리며 ‘회원 자격’을 유지하던 인터넷의 한 문학 동호회에, 책을 읽자마자 설익은 감상을 써 올린 글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날짜를 기억한다. 당시 나는 뭘 해도 어설프기만 한 2년차 기자였고, 수습생활을 마치고 좌충우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사회부 말진 시절을 거쳐, 일약 문화부 기자라는, 실로 얼떨떨한 명함을 10개월 넘게 쓰고 있었다. 홍대 정문에서 왼쪽으로 꺾어지는 미술학원 밀집지역 언덕 위에서 두 살 터울의 남동생과 반지하방 자취생활을 하고 있었고, 근무가 없는 주말이면 친구들 앞에서 (선배들에게 배운) 폭탄주를 자랑하듯 선보인 탓에 급격히 살이 찌고 있었다. 화려하지는 않아도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는 ‘이 정도면 잘 풀린 축’에 드는 삶이라고 자위했고, 그나마 그런 어설픈 생각으로 자신을 지키지 않으면 문득문득 엄습하는 허무함을 견딜 수 없어 힘이 주욱 빠져버릴 것 같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그날 나는 지금은 좀처럼 기억나지 않는 이유로 들어간 서점에서 이 책을 산 뒤, 회사로 들어오는 차 안에서, 아이템 회의 시간을 기다리던 책상 앞에서, 서강대교를 터덜터덜 건너 돌아온 자취방 침대 위에서 읽어 내려갔다. 자정을 넘겨 핥듯이 마지막 장을 읽고 난 뒤에는 입사 뒤 실로 오랜만에 ‘소설’을 단숨에 독파했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믿을 수 없었다. 읽어야 할 온갖 보도자료와 신문, 잡지들의 홍수에서 기적적으로 일궈낸 성공적인 독서였다.

그것은 이 소설이-조금 과장을 보탠-‘나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구도(球都) 인천에서 보낸 어린 시절과 이른바 ‘일류대’ 학생으로 보낸 젊은 날, 그리고 앞뒤 돌아보지 않고 당연한 듯이 투신한 약육강식의 사회로 이어지는 성장 과정을 거쳐, 얼떨떨하기만 한 ‘프로’의 세계에서 고민하고 상처입은 주인공의 마음이, 꼭 그때의 나와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소설의 후반부, 즉 주인공이 회사에서 정리해고를 당하고, 껍데기 같았던 아내와의 결혼을 정리하고, 남양주 인근 북한강가에서 친구와 함께 야구를 시작하는 그 모습에 엄청난 해방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책을 덮은 그 새벽에, 예의 인터넷 문학 동호회 게시판에 이렇게 썼다.

그들(삼미 슈퍼스타즈)의 야구는 프로에 이름을 올리기엔 뭣한, 철저하게 아마추어적인 야구였다, 고 작가는 말한다. 잡을 수 없는 공은 잡지 않고, 칠 수 없는 공은 치지 않는다. 그리고 1승에 연연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정신수양’으로서의 야구다. 눈에 보이는 모두가 ‘프로’를 외치던 시기였고, 그래서 계속 질 수밖에 없었지만, 그건 절대 비운이 아니었다고 얘기한다. 이기기 위해 무리하고 자신을 깎아오던 야구판이, 즉 우리 사회가 결국 얻은 것은 너덜너덜한 관계와 약육강식의 흉악한 이빨…. 그것에 우리는 스스로를 상실하고,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혀 오지 않았는가. (중략)
그래서, 조금은 후회한다. 나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이기는 편에 서고 싶었는가. 왜 그들처럼 스스로 선택한 패배 속에서 평화를 얻지 못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연히도, 나는 소설 속 주인공처럼 모든 것을 내던진 통쾌하고 깔끔한 평화를 얻지 못했다. 다만 결과와 관계없이 ‘조급해 하지 않는 것’이 ‘프로’의 세계에서 앞으로도 계속 살아갈 나를 보호하는 길임을 깨달았고, 눈 뜨면 코 베어간다는 이 세계에서도 어디 한 구석 작은 숨 쉴 곳을 두는 것이 생존의 요령이고 교훈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소소하지만 또 한 가지, 승패와 관계없이 야구를 진심으로 즐기게 되었다.



지난해 방송기자연합회 체육대회를 기억한다. 나는 실력과 관계없이 야구를 좋아한다는 선후배들을 모아 어찌어찌 팀을 꾸리고 ‘총무’를 맡았다. 우리의 첫 경기는 미처 유니폼도 맞추지 못해 모두 후줄근한 트레이닝복 차림이었고, 각자 쓰고 온 모자에 박힌 로고도 제각각이었다. 배트와 포수장비도 급조했다. 상대는 정말 ‘프로’처럼 회사 로고가 박힌 45인승 버스를 타고 와, 검은 색 스포츠 고글에 깨끗한 유니폼을 입은 모습으로 차에서 차례대로 내린 뒤 그라운드에 정렬해 일사불란한 동작으로 몸을 풀었다. 그야말로 소설 속의 한 장면처럼, 기업체 동호회인 ‘프로 올스타팀’과 오합지졸 외인부대인 ‘삼미 슈퍼스타즈 팬클럽’이 만난 격이었다. 그러나 그 경기에서 우리는 누가 봐도 ‘감격적인’ 승리를 거뒀다. 비록 경기에 임한 우리 팀의 마음가짐이 승패에 연연하지 않는 ‘삼미 정신’이라고는 도저히 할 수 없었지만, 그라운드 위에서 하얀 공을 쫓아 달리고 마음껏 배트를 휘두르던 순간의 해방감은 그것 그대로 소중한 것이었다. 시끌벅적한 뒷풀이의 소란 속에서, 나는 잠시 이 책을 떠올렸다. 그리고, 굳이 우승 따위 하지 않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방송기자연합회의 소박한 체육대회는 올해도 열린다고 한다. 2년 연속으로 야구 종목도 예정돼 있다. 올해도 우리는 그라운드에 나간다. 다행히 이번에는 유니폼도 맞췄다. 풀 옵션으로 새로 뽑은 파란 가을 하늘에, ‘까앙~’ 하는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뒤따라 하얀 공이 조용히 포물선을 그리는 그 멋진 장면을, 올해도 기대한다. 아무려면 어때. 항상 이겨야 한다는 무언의 억압에서 벗어나면, 인생은 꽤나 괜찮은 것이다. 자, 플레이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