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규의 저널리즘 트렌드] NYT 혁신보고서 그 후…

핵심 가치(Core Value)는 지향점이면서 실행 전략이다. 핵심 가치에는 해당 언론사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가 담겨있고, 차별되는 해법도 녹아있다. 한두 문장으로 요약된 핵심 가치를 읽으면 그들의 고민과 전략,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독보적인 저널리즘’(Journalism That Stands Apart) 보고서에서 자신들의 핵심 가치를 이렇게 정의했다. “NYT는 독자들에게 권위 있고 명쾌하며 필수적인 목적지가 되는 것을 미래의 지향점으로 설정했다.” 보고서에 제시된 핵심 가치는 구체적이며 군더더기가 없다. 각론을 유추하고 실행 전략을 떠올릴 만큼 명확하다. 깊은 고민과 실패의 역사도 투영하고 있어 교훈적이다.

짧은 문장에 담긴 전략적 함의
이 문장을 오밀조밀 뜯어내 실행 전략과 연결하면 의미는 더욱 또렷해진다. 뉴욕타임스는 독자들에게 권위 있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 방법은 명쾌해야 하며, 결과는 뉴욕타임스(웹/모바일 사이트)가 목적지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독자들에게 권위 있어야 한다는 것은 표적 독자들에게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제공해야 한다는 의미다. 지불의사를 드러낼 정도로 유일무이한 뉴스와 정보를 생산해야 한다는 저널리즘 전략과도 닿아있다. “독창적이며, 시간을 투자하는, 현장에 기반한, 전문가들이 보도”함으로써 권위를 지탱할 것이고, 이를 위해 “경쟁사의 글과 차이가 미미한 기사, 시급하지 않은 기획 기사와 칼럼” 등을 과감히 버리겠다고 선언했다. 권위를 만들고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일반적이며 중복적인 기사는 뉴욕타임스의 미래를 위해서도, 비즈니스를 위해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핵심 가치로 제안된 ‘명쾌함’은 방법론이다. 이 보고서가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 설명하고 있듯, 표적 독자들에게 명쾌하게 전달하기 위해선 “편안한 형태”여야 하며 “시각적이어야 한다”. 기존 스토리텔링 방식과도 결별해야 한다고 공표했다. “인터넷 언어와도 이질적인 모습을 보인다”, “독자에게 다가가기 쉬운 문체를 충분히 쓰지 않고 있다”는 자성에서 도출된 결론이다. 그래서 명쾌함이라는 가치를 위해 기사의 형식을 혁신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필수적인 목적지’는 뉴욕타임스의 비즈니스 전략을 함축하고 있다. 분산 미디어 환경에서도 최종 목적지는 페이스북이나 스냅챗이 아니라 뉴욕타임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뉴욕타임스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생존 전략이다. 페이지뷰를 목표로 설정하지 않고 구독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을 핵심에 두고 있다는 설명도 이 문구와 연관돼 있다. 자사 웹/모바일 사이트가 필수적인 목적지가 될 때만 구독 비즈니스가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독 중심의 비즈니스에 집중한다는 전략은 성과 지표로서 페이지뷰에 헌신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뜻한다. 적은 사용자가 웹사이트를 방문하더라도 유료 구독 전환이 가능한 뉴스 생산에 더 많은 자원을 집중하는 접근이 뉴욕타임스에 이롭다. 구독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는 외부 플랫폼에서의 수백만 페이지뷰는 더 이상 가치를 갖지 못한다. 분산 콘텐츠 전략을 지향하는 미디어 스타트업과도 구별되는 대목이다. 권위 있고 명쾌한 방식으로 작성된 품격 높은 기사와 필수적인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뉴욕타임스를 유료 구독하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것이 앞으로 기자의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서비스 저널리즘을 여러 차례 언급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디지털 광고 수익에 의존하는 국내 언론사들이 더 많은 노출과 페이지뷰에 목을 매는 것과는 정반대의 방향이다.

국내 언론사에 던지는 메시지
국내의 전통 언론사들은 핵심 가치를 설정하고 공유하는데 소홀하다. 핵심 가치에 대한 이야기는 소모적인 것이라는 인식이 많다. 업무의 우선순위로 거론도 되지 않는다. 물론 다수의 국내 언론사들은 수십 년 전 사시社是를 핵심 가치로 내걸고는 있다. 정론, 공정, 불편부당, 민족 등 다수 언론사가 표방하는 가치를 보면, 구체성이 결여돼있고 변화한 미디어 환경도 반영돼있지 않다. 심지어 낡아서 폐기된 저널리즘 가치도 선명하게 사시로 내걸려있다.
핵심 가치의 모호성은 언론사 간 중복 기사, 유사 보도의 양산으로 이어진다. 천편일률적이고 획일화한 ‘받아쓰기’ 관행, 소위 ‘물먹은’ 기자들에 대한 일상적 질책은 핵심 가치가 시대에 맞게 재설정되지 않는데서 비롯됐다. 같은 문제, 동일 해법, 유사 표적 집단을 상정한 언론사들에게 저마다의 특별한 뉴스 생산을 기대하기는 무리다.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은 동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다른 핵심 가치’를 제공할 것을 요구한다. 뉴욕타임스도 “1970년대 전략을 현시점에 맞춰 실행해야 한다”라는 표현으로 이에 동의를 표시하고 있다. 이 핵심 가치에는 언론사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목표가 담겨야 하고 제공하는 뉴스 및 정보의 차별화 전략을 포함해야 한다. 훌륭한 인재를 채용하기 위한 원칙으로 제시될 수 있어야 한다. 본질적이지만 주변화한 주제인 핵심 가치에 대한 고민을 다시 꺼내보는 계기로서, 이 보고서가 작용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