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에는 아직도 ‘길환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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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로 뜬 ‘길환영 사장 해임제청안 가결’ 소식에 순간 눈을 의심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KBS 이사회 결과를 기다리면서, 자유연상법에 따라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던 터였다. ‘이제 곧 월급을 못 받은 지 한 달인데 외벌이들은 대출금 상환 때문에 힘들겠구나. KBS 본사 앞 은행들도 대출 판촉 행사를 하려나? KBS 인사팀에서 MBC의 신천 교육대 샌드위치 교육도 따라 할까? 여름에 밖에서 싸우려면 덥고 힘들텐데….’

그러던 찰나,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해임안이 통과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MBC 사람들은 오랜 시간 경험하지 못했던, ‘상식’이 지켜지는 순간이었다. 뛸 듯이 기쁜 마음이 한차례 휩쓸고 지나가자, 이번에는 인간의 본성이라고 해야 할까, ‘부러움’과 ‘시기심’이 몰려들었다. ‘아니, KBS 사람들, 얼마 싸우지도 않은 것 같은데….’

2012년 170일 동안 이어졌던 MBC 파업. 여섯 달 넘게 월급을 받지 못하면서 마이너스 통장과 대출로, 어떤 이들은 애지중지하던 책과 음반을 팔아 연명하던 기억이야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랑하는 동료 8명이 해직자가 돼 지금도 판결문의 직업란에 ‘무직’이라고 적히는 상황은 도저히 웃어넘길 수 없는,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 해직자 말고도 정직과 교육, 원래 업무에서 쫓겨나며 직접 ‘칼을 맞은’ 이들만 지금까지 103명.

게다가 벌써 3년째 우리가 사랑하는, 국민들에게 사랑받았던 ‘마봉춘’의 상황은 조금씩 나아지기는커녕 가파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누구보다 능력 있는 동료들이 쫓겨난 빈자리는 수뇌부가 ‘MBC를 완전히 바꾸기 위해’ 새로 뽑은 이들로 채워졌다. 지금 뉴스데스크를 만드는 기자들의 절반이 ‘새로 수혈된 피’들이고, 사심 가득한 보도본부 수뇌부와 무능력한 기자들이 만들어내는 엉망진창 뉴스에 시청자들은 눈을 돌렸다. 보도국장과 전국부장이 세월호 유가족을 폄훼하고 모욕하는 발언을 해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사람들이 잘 모를 정도로 마봉춘은 미움을 넘어 관심 밖의 존재가 돼버렸다.
‘MBC에는 정신병 없는 사람이 없다.’고 서로 이야기할 정도로 많은 이들이 깊은 분노와 우울감을 느끼며 살고 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아예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술을 끊고, 담배를 끊고, 방송일이 아닌 다른 인생의 목적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KBS 구성원들이 함께 힘을 모아 길환영 사장을 물러나게 했다는 소식은 하나의 희망이 되었다. 언론인 동료로서 KBS가 공영방송의 공공성을 지켜낸 것이 자랑스럽고, 또 많은 사내 시스템과 관계들이 더 망가지기 전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 진심으로 부럽다. MBC를 비롯한 다른 언론사들은 언론의 공영성을 훼손한 주범들을 스스로의 힘으로 쫓아내지 못했지만, KBS는 똘똘 뭉쳐서 처음으로 이를 해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길환영 사장 해임’은 문제 해결의 시작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번 KBS 파업에서 금기어였다는 ‘MBC’의 상황을 다시 한 번 살펴보면, MBC의 길환영이라 볼 수 있는 김재철 체제는 끝나지 않았다. 김 사장이 우여곡절 끝에 물러나고도, 또 다른 김재철이 뒤를 이어 계속 나타났다. 6월에만 벌써 동기 카톡방에 기사를 공유한 기자에게 정직 1개월, 세월호 보도 문제를 실명 비판한 PD에게 정직 6개월이라는 무지막지한 칼을 휘두르며 MBC를 난도질하고 있다.

문제는 ‘길환영 사장’이 아니다. 정권을 잡은 이들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이들을 공영방송 KBS와 MBC의 수장으로 내려보내는 지금의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우리는 제2, 제3의 길환영과 김재철을 계속해서 맞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KBS가 조금 더 힘을 내주길 바란다. 편향됨을 숨기지 않았던 언론인들이 홍보수석과 국무총리로 부름을 받는 암울한 현실이지만, KBS가 이번 기회를 잘 살려 반드시 공영방송에 대한 제도적인 변화까지 이끌어내기를 기대하고 바란다. 비록 지금은 많이 지쳐있지만, 필요한 순간이 다가오면 수많은 마봉춘도 다시 일어나 힘을 보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