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_YTN ‘해직 8년’ 이야기_YTN 나연수 기자 (앵커실)

울을 쏟아낸다. 배신당한 기분으로 한참을 내다봤다. 하늘도 슬퍼서 눈물을 흘리나. 휴일 스케치에도 안 쓸 진부한 멘트만 혀끝을 맴돈다. 달리 무슨 말로 위안을 삼을 수 있을까? 어제까지는 시리도록 파랗기만 하더니. <‘해직 8년’ 가을 캠핑장에서 치맥과 함께해요~> 노조에서 보낸 해맑은 공지 문자만 더 가엾게 느껴졌다.

“바보들인가?”
해마다 10월이면 해직 몇 년 행사를 하지만 야외 캠핑장을 빌려본 건 처음이었다. 행사장을 찾아가는 동안 빗줄기는 더 굵어졌다. 비도 오는데 여길 어떻게 찾아온담, 회사 앞 치킨집이나 빌릴걸…. 고기 굽는 냄새로 어수선한 캠핑장을 헤매며 불안해지려던 찰나, 맨 구석자리 천막 아래 촘촘하게 모인 익숙한 얼굴들이 보인다. 언제부턴가 출입처에 틀어박혀 좀처럼 회사에 들어오지 않던 선후배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해직자들, 회사를 떠난 선배들, 영상편집부, 기술국, 새 식구가 된 경력기자들, 아직 수습 교육 중이라는 막내들까지. 다 식은 치킨을 들고 소풍 나온 애들처럼 웃고 떠들고 있었다. 바닥에 고인 빗물에 바짓단이 다 젖는 줄도 모르고,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바보들인가, 비가 이렇게 오는데 어떻게 다 모였지….

YTN에서 신입사원이 된다는 것
나는 봄에 입사했다. 꽃샘추위가 가고 벚꽃이 지고 수습 생활에 대한 걱정마저 바람에 녹아드는 계절이었다. 와, 진짜 기자들이 일하는 곳이다! 두근거리며 보도국에 발을 들였을 때, 한겨울 같던 사무실 풍경이 잊히지 않는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들은 고개를 들어 열 맞춰 선 신입들에게 눈길을 줬으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막연히 상상했던 것처럼 보도국이 시끌벅적하지도, 다이내믹하지도 않았다. 침묵과 비웃음과 때때로 다툼이 뒤섞인 그 묘한 분위기에 몇 달 간 서서히 적응하고 나서야, 우리가 비어있는 여섯 자리를 비집고 들어온 첫 번째 기수였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달았다. 회사 로비에서 1인 시위하는 선배들을 지나쳐 취재를 나갈 때면, 나는 미안해서 고개도 들지 못 했다. 새파란 후배들이 차곡차곡 들어올 때, 회사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 사옥을 옮기고 로고를 바꾸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자 말할 때, 매일 아침 동료의 빈자리를 확인하는 선배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선배의 달리기
가을비 내리는 캠핑장에서 우리는 둥글게 모여 김진혁 감독의 다큐멘터리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의 티저 영상을 봤다. 지금보다 머리숱이 많고 목소리가 컸던 선배들이 대선 특보 사장을 막겠다며 주주총회장 앞에서 싸우는 장면부터다. 2008년 해직 사태를 겪지 않은 나로서는 당시 영상을 볼 때마다 선배들이 저렇게 젊었다는 게 충격이다. 아직 빈자리는 그대로인데, 시간은 무심하다. 영상에는 어쩐지 내 모습도 잠깐 등장했다. 3년 전 해직자 선배들이 국토 순례할 때 보낸 응원 영상이었는데, 그걸 찍을 때만 해도 2016년 해직 행사에서 이걸 또 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다. 마지막에는 달리기하는 조승호 선배가 나왔다. 어둑한 밤길을 선배는 아무 말없이 달려와 화면을 가로질러 사라졌다. 규칙적으로 내딛는 뜀박질 소리, 정확한 들숨날숨만이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지난 8년을 선배는 이렇게 지나왔을 것이다. 여기서 멈추지 않기, 한 발 한 발 계속 내딛기. 선배는 좀 독해서 42.195km가 아니라 100km 마라톤을 뛴다.

말하지 않은 말들
해직 8년을 맞은 해직자들의 소감은 소박했다. 조승호 선배는 문제의 마라톤 장면에서 감독한테 짜증을 낸 게 편집돼 안도하고 있었고, 현덕수 선배는 본인 분량이 적을까 봐 전전긍긍했다. 노종면 선배는 ‘그때 우리가 얼마나 재미있게 투쟁했는지’ 후배들이 몰라줄까 봐 걱정이었다. 선배들의 귀여운 푸념에 폭소하는 동안 가을밤이 깊어간다. 꼭 돌아가겠다는 말, 해직 행사는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말, 내년에는 복직 파티를 열자는 말, 얼마나 지겨울까. 얼마나 간절할까.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는 걸, 해직자들도 알고 있겠지. 빨리 데려오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 하지 않아도 알고 있겠지. 우리가 8년간 지치도록 주고받은 말들, 그래서 말하지 않은 수많은 말들이 밤새 빗방울을 타고 돌아다녔다.
자정 무렵, 주말 출근을 앞둔 후배들과 캠핑장을 나섰다. 뒤돌아보니 술자리는 아직 환하다. 비가 그치고 동이 틀 때까지 캠핑장 한구석에서는 도란도란 이야기가 끝나지 않을 것 같다. 해직자도, 해직자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외롭지 않겠다.
2008년 10월, 노종면·우장균·조승호·현덕수·정유신·권석재, 6명의 기자가 해고됐다. 1980년 군사정권 이후 첫 언론인 집단 해직 사태다. 정권의 낙하산 사장 퇴진과 공정방송을 외친 게 해고 사유였다. 남은 기자들에게는 정직과 감봉과 부당한 인사발령이 이어졌다. 잦은 소송과 노사 갈등 속에 ‘돌발영상’이 사라졌다. 2014년 대법원 판결로 3명이 돌아왔고, 아직 남은 3명의 복직을 기다리고 있다. 2016년 10월 20일, 해직 2,938일째. 또 하루만큼 늘어난 시간의 무게를 오늘도 우리는 나눠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