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싸움_YTN 한연희 기자

YTN 한연희 기자(사회부)

지난해 12월 초, 법무부가 갑작스러운 발표를 했다. 사법시험 폐지를 4년 유예하고자 한다는 내용이었다. 법무부는 일반 국민 천 명을 대상으로 한 자체 여론 조사 결과 80% 이상이 사시존치를 주장하고 있고, 사회적 논란도 계속되고 있어 이 같은 결정을 한다고 밝혔다. 로스쿨 제도가 일부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개선이 필요한 부분도 남아있다며 10년째 시행돼 정착될 것으로 보이는 2021년을 폐지 시점으로 잡았다고 설명했다. 유예기간 동안 사법시험 폐지 이후 필요할 대안에 대해서도 고민하겠다고 했다. 이렇든 저렇든 2017년 폐지될 예정이던 사법시험을 2021년까지 그냥 두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법무부 발표는 파장을 몰고 왔다.
정부가 사시존폐 입장을 정리해 발표한 건 그동안 논쟁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2007년 관련 법안이 통과하면서 2009년부터 로스쿨 25곳이 처음 등장해 입학생을 받기 시작했다. 변호사 시험이 올해까지 5차례 진행됐고, 지금은 로스쿨 출신 변호사가 전체 변호사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비싼 등록금과 사회 고위층 자제의 특혜 의혹 등이 이어지면서, 사법시험을 폐지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반대 측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해왔다.
재보선을 거치며 슬근슬근 이어지는 것 같았던 사시존치 문제는 모 신문이 자체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이 붙었다. 사법시험을 유지해야 한다는 단체들은 저마다 그 여론조사 결과를 앞장세워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일반 시민들에게 와 닿기는 힘들었다. 말하자면 법조계, 그들만의 문제였다. 그러나 10월 사시존치법이 국회에 상정되면서 법조계를 넘어선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고, 법무부 발표 이후에는 그야말로 핫이슈가 됐다.
사실 이건 법무부의 입장에 불과한 것이기는 했다. 이전에 있었던 공청회에서 제대로 된 입장을 내놓지 못하자 비판이 이어졌고, 그러다 보니 급하게 입장을 내놓은 거라는 말도 떠돌았다. 정부 기관이 의견을 내놓은 것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도 있고, 최종 결정은 국회의 몫인 것도 사실이지만, 법무부가 처음으로 사법시험 폐지와 관련된 공식 입장을 내놓은 만큼 그 무게감은 무시할 것이 못됐다.

사시존치 vs. 사시폐지, 첨예한 갈등
관련 단체들은 곧바로 입장을 내놓았다. 사시존치를 주장해 온 단체도, 폐지를 주장해 온 단체도 모두 법무부 입장에 유감을 표했다. 한쪽에서는 이미 논의가 끝난 문제를 왜 다시 뒤집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어 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폐지를 4년만 미루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특히나 로스쿨 학생들의 반발이 거셌다. 학생들은 집단 자퇴서를 냈고, 시험을 치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로스쿨 교수들도 시험출제를 거부하겠다며 힘을 실어줬다. 시험을 취소해달라는 소송도 냈다.
그들에게도 하루하루가 전쟁이었겠지만, 사시존치 논란에 대한 기자들의 피로도도 만만치 않았다. 자정을 넘겨서도 입장을 담은 장문의 문자메시지가 수신됐다. 메일함이 가득 차 다른 메일들이 반송될 정도로 여러 단체에서 보내는 입장이 쏟아졌다. 챙겨야 할 기자회견도 많아졌다. 조금이라도 더 자신들의 입장을 전하기 위해 로스쿨 학생들은, 고시생들은, 거리로 나왔다. 집회와 대학 관련 일정은 통상 사건팀에서 맡아왔지만, 이번엔 어쨌거나 법조계 문제인 만큼 어느 팀에서 어디까지 기사를 처리해야 하는가를 두고 미묘한 신경전도 있었다.
사실 나중에 가서는 연락해오는 단체가 사시존치를 주장하는 곳인지 사시폐지를 주장하는 곳인지도 헷갈렸다. 각기 다른 단체가 여러 차례에 걸쳐서 쏟아내는 똑같은 말에 조금 지친 것도 사실이다. 소모적인 논쟁이었다. 고시낭인, 흙수저·금수저 논란, 국민의 법률 서비스 접근 가능성, 훌륭한 법조인 양성 등 로스쿨과 사법시험을 둘러싼 수많은 쟁점보다는 밥그릇 싸움이라는 느낌만 남게 됐다.

또다시 미봉책…
다행히 대법원이 나서서 범정부 협의체를 제안했고, 법무부가 이에 참석하기로 했다. 출제를 거부하겠다던 교수들도 업무에 협력하기로 했다. 몇 주 동안 여러 차례 집회를 이어오던, 수시로 기자회견을 열겠다며 문자를 보내던 이들은 학업으로 돌아가겠다고 밝혔다. 1월 초에 진행된 변호사 시험은 파행 없이 치러졌다. 하지만 잠잠해졌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사법시험 관련 법안은 아직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있다. 결정된 것은 없다. 잠시 수면 아래로 내려갔을 뿐이다. 의견을 밝힌 것만으로도 이 같을진대, 앞으로 또 어떤 갈등과 대립이 이어질지 걱정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