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 20초 리포트에도 스토리텔링은 있다”_박성호 본지 편집위원장

08-1 데일리 리포트

 

08-2 박성호스토리텔링이라는 말이 넘쳐난다. 문학, 서사학에서 주로 쓰이다 지금은 비즈니스나 광고에서도 거론될 만큼 널리 퍼졌다. 저널리즘 영역에서는 ‘이야기의 설득력 있는 전달’로 받아들여진다. 여기서 방송기자의 반응이 두 갈래로 나뉜다. 첫째, 리포트의 전개방식, 구성의 변화를 통해 전달력을 높일 고민이 필요하지 않은가? 둘째, 과연 스토리텔링이라는 것이 방송뉴스에 존재하는 것인지, 효과를 발휘할 수는 있는지, 오히려 신문처럼 텍스트 매체나 호흡이 긴 다큐멘터리에나 적합한 개념이 아닌가?
필자 역시 두 가지 생각을 모두 갖고 있던 터라 답답했다. 그러다 지난 7월 초 미국의 대표적인 언론인 실무교육 기관으로 꼽히는 포인터 연구소Poynter Institute를 방문해, 방송과 온라인 분야의 교육담당 수석인 알 톰킨스Al Tompkins로부터 신선한 자극과 영감을 얻었다. 그는 25년간의 방송기자 경력을 가진 베테랑이자,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15년 이상 스토리텔링에 관해 기자들을 교육해온 전문가다. 결론부터 말하면, 1분 20초짜리 방송 리포트에도 스토리텔링은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다. 국내 방송기자들과 고민과 정보를 공유하는 차원에서 그의 저서 『Aim for the Heart: write, shoot, report and produce for TV and multimedia』의 주요 대목을 인용·발췌하고, 그의 강의 내용과 그와 나눈 대화를 보충해 소개하겠다.

스토리텔링은 팩트 텔링이 아니다

팩트 텔링(fact telling)과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은 다르다. 이것이 알 톰킨스의 스토리텔링론의 핵심이다. 최고의 방송뉴스 기사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거나, 새로운 사실을 가르치고 설명하거나, 뭔가를 주입시키려 하지 않는다. 좋은 기사는 시청자의 심장을 겨냥(aim for the heart)한다는 것이다. 톰킨스는 “방송기자들이 ‘우리는 방송을 한다. 짧은 기사를 쓴다.09-3 aim for the heart 1분 20초 안에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팩트에 충실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반기를 들겠지만, 마크 트웨인, 도로시 파커, F. 스코트 핏츠제럴드, 에드가 앨런 포우, 어니스트 헤밍웨이, 존 스타인벡은 짧은 기사를 쓰면서 그들의 솜씨를 키웠다는 점을 잊지 말라.”고 한다. 그 작가들도 오늘날의 방송기자
들과 같은 교훈을 얻었다. 긴 기사를 쓰는 것보다는 재미있으면서 맥락을 완벽히 담은 짧은 기사를 쓰는 게 더 어렵다는 점이다.
시청자의 심장을 겨냥하려면 기사의 핵심을 찔러야 한다. 구체적으로 그가 짧은 방송기사의 훌륭한 스토리텔링을 위해 기자들 스스로에게 던져보라고 한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이 기사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무엇일까?” (이것이 기사의 핵심이다.)
“무엇이 나를 놀라게 했지?” (기사의 첫 문장이 될 수 있다.)
“전에는 몰랐던 무엇을 알게 됐지?” (기사에서 가장 부각된다.)
“시청자들은 뭘 알고 싶어 하고, 그걸 어떤 순서로 물을까?” (기사의 틀을 결정한다.)
“시청자들이 이 기사에서 뭘 기억하고 느끼면 좋을까?” (사운드바이트에 해당한다.)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클로징 문장이 될 것이다.)

스토리텔링 프레임

● 검증된(tried and true) 프레임 vs 뒤집은(upside-down) 프레임
방송시간이 임박해 기사를 쓸 때는 공식처럼 굳어진 프레임이 기사를 명쾌하고 이해하기 쉽게, 그리고 빨리 쓸 수 있도록 도와준다. 동화책이나 성경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이른바 검증된 틀은 우리 식으로 말하면 기승전결의 형태를 띤다.

옛날 옛적에 아기 돼지 삼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배경 설정)
갑자기 늑대가 나타나 돼지를 잡아먹으려 했습니다. (사건 발생)
다행히 막내 돼지가 벽돌집을 지어, 늑대를 물리쳤습니다. (해결)
결과적으로 삼형제는 안전하게 살았습니다. (클로징/요약)

그러나 훌륭한 방송 기사는 전통적 이야기 틀을 거꾸로 뒤집는다. 미니애폴리스 KARE11-TV의 탁월한 스토리텔러인 보이드 후퍼트 기자는 거꾸로 뒤집은 프레임은 “현재 시점에서 기사를 시작한 뒤, 시간을 거슬러 사건의 맥락과 배경을 던져주고, 나중에 다시 이야기를 현재로 가져오는 틀.”이라고 설명한다.

결과적으로… (사건 발생)
옛날 옛적에… (사건의 배경)
갑자기… (이야기의 주된 행위)
다행히… (결론)

● 역 피라미드 vs 모래시계
역 피라미드 프레임은 기자라면 누구나 다 아는 틀이다. 첫 문장에 중요한 팩트를 배치함으로써 긴급 뉴스를 보도할 때처럼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라는 질문에 답할 때 유용하다. 그러나 내러티브가 중요한 경우는 프레임이 달라진다. 톰킨스는 역 피라미드의 대안으로 모래시계형을 제안한다. 기사의 머리 부분에 중요한 팩트를 담되, 중간으로 갈수록 사건의 세부 내용으로 전환했다가, 다시 시청자가 놀랄만한 내용을 끝 부분에 배치하는 방식이다. 시청자의 마음을 모래시계의 위에서부터 바닥까지 붙들 수 있다. 그는 이 방식의 장점으로 스토리텔링에서 결정적 순간을 부각시킬 수 있고, 맥락에 대한 질문에 답할 수 있다는 점을 꼽는다.

사운드바이트: 지식이 아니라 느낌이 기억에 남는다

시청자들이 기사에서 정보를 얻는 것은 팩트 텔링이지 스토리텔링이 아니다. 톰킨스는 기억에 남는 기사가 되려면, 시청자들이 뭔가를 느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람들은 언제나 아는 것보다 느끼는 것을 더 오래 기억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그래서 그는 느낌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능력이야말로 텔레비전의 힘이며, 감정과 감각 경험을 통해 전달하는 능력에 있어서 텔레비전은 다른 매체에 비해 훨씬 특별하다고 강조한다.
그런 점에서 특히 강조되는 것이 국내에서는 인터뷰나 싱크로 불리는 사운드바이트이다. 흔히 훌륭한 방송뉴스 기사는 훌륭한 사운드바이트에 달려 있다는 말을 한다. 실제로 톰킨스가 소위 ‘잘 만든’ 리포트로 제시한 사례들의 경우, 기사 문장을 뺀 채 사운드바이트만 따로 떼서 훑어보면 어느 것 하나 팩트(fact)를 담고 있지 않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의견과 감정, 인터뷰이의 관찰만을 담고 있다. 반면 사운드바이트를 뺀 채 리포트에서 기사 문장(copy)만 모아 읽어 보면 또 다른 공통점이 발견된다. 화면에 나타나긴 하지만 기자가 설명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팩트와 디테일을 포함하고 있다. 요컨대, 사운드바이트는 주관적이어야 하고(subjective sound), 기사 문장은 객관적이어야 한다(objective copy).
이 기준을 숙지했다면, 뉴스에서 흔히 등장하는 공무원이나 경찰관들의 뻔한 인터뷰는 사라져야 한다. 딱딱하게 말하는 경찰관 인터뷰의 전형은 아마도 이럴 것이다.

기자: 지금까지 무엇을 알아냈습니까?
경찰관: 20대 남자가 장총으로 두 번 발포해 피해자는 현장에서 사망했습니다. 수사가 진행 중입니다.

톰킨스는 ‘무엇’(what)을 묻는 물음은 대개 사실에 관한(factual) 반응을 이끌어내기 때문에, 좋은 사운드바이트를 얻어내려면 주관적 질문을 던져야 한다며 다음과 같은 대안을 제시한다.

기자: 경관님, 현장에 제일 먼저 도착하셨죠. 거리 한복판에서 시체를 봤을 때 어떤 생각이 떠오르던가요?
경찰관: ‘아, 제발 이런 일이 또 일어나면 안 되는데….’ 하고 혼잣말을 했어요. 이달 들어 세 번째 살인이거든요.

연설이나 행사를 소재로 리포트 할 때 사운드바이트의 선택 기준도 마찬가지라고 톰킨스는 충고한다. 발언자의 의견, 느낌, 감성이 잘 나타난 사운드바이트를 골라야 시청자의 목을 메게 하거나 가슴을 벅차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복잡한 숫자나 정책의 이름, 구체적인 대처 방안을 팩트랍시며 담아내는 기존의 사운드바이트들은 이런 기준에서 보면 탈락감이다. 사실 이러한 주관/객관의 구분을 명확한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한 사람은 ABC의 짐 우튼 기자였다. 그는 1988년 미국 대선 당시 리포트에서 후보자의 주관적 주장은 사운드바이트로 처리하고, 그 발언의 진위를 취재, 검증한 팩트는 기사 문장으로 처리했다.

도입부(lead)와 클로징(closing)에 공을 들여라

첫 문장은 기사의 첫인상을 심어준다. 기사 쓸 때 에너지를 쏟을 가치가 있다. 톰킨스는 “도입이 너무 압도적이거나 기사의 정점일 필요는 없지만, 가급적 많은 시청자를 붙잡을 수 있도록 그물을 넓게 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사의 리드는 스토리가 아닌 스토리로의 관문, 즉 미끼인 셈이다. 중견 방송기자이자 시라큐스 대학 조교수인 다우 스미스는 “최고의 첫 문장은 뉴스를 시청자와 직접 결부시킴으로써 시청자를 끌어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즉 리드 문장은 “그래서 뭐? 내가 왜 이 기사를 봐야 하는데?”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든 사례는 국내 뉴스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시의회는 부동산 감정가의 100달러당 10센트의 보유세를 인상하기로 의결했다.”(X)
“시의회는 여러분의 세금을 6백 달러 올리기로 했습니다.”(O)

클로징의 요건은 무엇일까? 톰킨스의 조언은 이렇다. “모든 에너지를 기사 전반부에 다 써서 연료가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고, 귀가 솔깃해지는 마지막 문장(ear-catching close)을 위해 마지막 한 조각을 아껴둬라.” 따라서 클로징은 ‘이 기사는 무엇에 관한 것인가?’에 대한 해답과 직결돼야 한다. 훌륭한 스토리텔러는 시청자들이 기사 끝 부분에서 어떤 느낌을 갖기 원하는지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하고, 마음에 남을 한 문장으로 시청자를 사로잡아야 한다.

11-4 poynter

인상적인 인물(character)을 내세워라

작은 그림으로 큰 이야기를 만들어내려면 인물을 잘 선택해 부각시켜야 한다. 토네이도가 마을을 할퀴고 간 취재를 할 때, 피해 농가나 나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보험이 없어서 새로 집 지을 방도가 막막한 사람들에 초점을 맞추라는 것이다. 이는 사실 태풍이나 수해 보도에서 현지 르포나 이재민 스토리를 다뤄온 국내 방송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또 어떤 사안에서 누가 가장 이득을 보고, 어떻게 그 영향을 미치는가를 밝혀내는지에 집중하라고 톰킨스는 권한다. 그러면 복잡한 기사도 강한 캐릭터를 통해 쉽게 전달할 수 있다. 모든 기사에는 사람의 ‘얼굴’이 필요하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내용들은 따지고 보면 국내 기자들도 다 아는 얘기들이다. 완전히 새로운, 몰랐던 내용은 아니다. 신입 기자들을 교육할 때 흔히 강조되는 내용들이 다수 섞여 있다. 그러나 그때의 강조점은 ‘제작’을 잘한다는 데 있었다. ‘스토리텔링’이라는 뚜렷한 주제의식과 ‘스토리텔러’로서의 방송기자의 역량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국내 방송 현업에서 더 다듬고 체계를 잡은 시도와 연구, 교육이 필요하다. 참고로 이 글에 소개된 내용들은 포인터 연구소의 웹사이트에서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www.newsu.org/he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