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부당한 징계는 리셋되어야 한다

이재강

 

방송기자연합회장

 

 

 

 

이제는 고전반열에 오른 하퍼 리의 소설 <앵무새 죽이기>에는 톰 로빈슨이라는 평범한 흑인 남자의 불행한 삶이 그려져 있다. 그는 백인 여자를 성폭행하려 했다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감옥에서 탈출하려다 경비원의 집중 사격을 받아 실탄 17발을 맞고 세상을 떠났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점은 톰 로빈슨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철저하게 적법 절차에 의거해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는 민주적 제도로 여겨지는 미국 법정에서 12명의 배심원단에 의해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가 흑인이라는 점 때문에 백인 배심원들이 편견을 갖고 판단했지만 어쨌든 그들의 평결은 적법한 것이었다. 감옥에서 탈출하려는 흑인을 처참하게 쏴 죽인 경비원의 행위도 적법한 것이었다. 만일 톰 로빈슨이 백인이었어도 경비원은 그렇게 쉽게 방아쇠를 당길 수 있었을까. 톰 로빈슨의 이야기는 적법하지만 부당한일이 이 세상에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방송계에서 징계가 유행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방송기자들에게 징계가 떨어지다 보니 이제 해고는 돼야 진짜 징계인 것 같고 정직, 감봉에 대해서는 둔감해질 정도다. ‘문화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는 문화방송 MBC가 징계 폭탄의 중심이요, 해직 기자를 이미 4년 전에 낼 정도로 엉뚱한 데서 앞서갔던 YTN, 이 정부 들어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KBS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징계 조처를 내리고 있다.

 

알고 보면 이런 징계 모두 각 사의 규정에 따라 실시되었다. 징계 사유를 적시하고 인사위원회를 열고 소명 절차를 거치고. 그 잘난 적법절차에 따라 이뤄진 것이다. ‘적법이 가치 있는 것은 적법이 갖는 권위와 영향력 때문이다.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심정적으로나 군말 없이 따를 수밖에 없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적법은 권위와 영향력을 갖고 불특정 다수를 강제하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런데 징계를 받은 기자든, 그런 기자를 동료로 둔 기자든, 대다수 방송기자들은 요즘 폭탄처럼 떨어지는 징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아니 우습게 안다. 징계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것이다. 이유는 단 하나, ‘부당한징계이기 때문이다. 방송사에서 아무리 규정과 절차를 들이대며 징계의 정당성을 주장하더라도, 그것이 부당한 것임을 방송기자들은 직감적으로 단번에 안다. 징계가 곧 공정방송에 대한 공격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방송사마다 갈등의 내용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본질은 공정방송이다. 적법이니 뭐니 하는 거 집어치우고 공정방송만 하면 모든 게 풀린다. 그런데 이게 해결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못한다. 보편적 상식과 저널리즘의 가치, 그리고 기자의 양심 등에 비추어 자사의 방송이 참을 수 없을 만큼 불공정하기 때문에 기자들이 저항하는 것이다. 그런 방송 만드는데 참여한다는 것이 창피해서 들고 일어선 것이다.

 

 

공정방송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선택 사항이 아니다. 100% 완벽한 공정방송이야 이론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공정방송이 방송사와 기자들의 궁극적 목표가 되어야 함은 분명하다.

 

방송이 목표를 향해 가는지 아니면 샛길에서 헤매고 있는지는 매일 취재 보도 업무를 하는 기자들이 가장 잘 안다. 어떤 종류의 보도가 부각되고 어떤 종류의 보도가 누락되는지, 내가 발제한 어떤 아이템이 환영받고 어떤 아이템은 묵살되는지, 기자가 쓴 기사와 데스크에 의해 고쳐진 기사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어떤 특집 프로그램이 과도하거나 무리하게 편성되는지, 어떤 자리에 어떤 간부가 인사발령을 받았는지 등등 방송사 내부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은 종합적으로 방송의 공정성을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 외부 시청자야 방송된 최종 결과물만을 놓고 공정성 여부를 판단하지만 기자들은 여기에 더해 훨씬 다양하고 풍부한 내부 정보를 합쳐 판단한다. 그래서 일선 기자들이 이건 아니다며 집단행동을 할 정도면 방송 공정성이 심각한 상태에 있다고 보면 된다.

 

 

얼마 전 국내 사정에 밝은 외국인 한 명과 이 문제를 놓고 대화를 나눌 일이 있었다. 그 사람 말이, 전임 좌파 성향 정권 때는 정부와 별 문제가 없지 않았느냐, 지금 정권이 우파니까 좌파 성향의 기자들이 저항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나의 대답은 이랬다. 지금의 문제는 정권의 성향의 문제도 기자들의 신념의 문제도 이데올로기의 문제도 아니다. 공정방송의 문제다. 어떤 정권에서든, 방송사가 공정방송을 방해한다면 기자들은 저항할 것이다. 왜냐면 공정방송은 기자의 정체성의 핵심이자 존재이유이기 때문이다.

 

지금 방송가를 횡행하는 징계는 부당하다. 적법, 불법을 논하기 앞서 추락한 공정방송을 원상회복시키고자 한 것은 지극히 정당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적법이라는 외피를 썼다 해서 그런 징계가 정당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부당한 징계는 리셋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