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먼지 속에서 개척자의 심정으로_MTN 이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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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N 이재경 기자

사방이 탁 트인 광활한 벌판. 그러나 보이는 것이라곤 곳곳에 쌓아 놓은 흙더미와 수많은 타워크레인, 덤프트럭, 회색 콘크리트와 흙먼지뿐이다. 지난 겨울 세종시에 처음 발을 디뎠다. 영하 10도 밑으로 떨어지는 기온만큼이나 마음은 착잡했다. 숙소를 구하기 위해 대전, 공주, 대평리 등지를 돌아다니면서도 ‘내가 살 곳’이라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바람은 차고 거셌고 거리와 길은 온통 낯설었다. 그땐 맡은 일만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자는 생각뿐이었다. 얼어붙은 건설 한파 속에서 일거리를 찾아 전국에서 이곳으로 모여든 건설 인부들의 심정이 그랬을 테다.

 

오피스텔 임대료는 서울 도심 수준

세종시로 ‘집단 이주당한’ 공무원들의 심정도 다르지 않았다. 서울의 집을 놓을 수 없어 수개월간 서울 경기권에서 세종시로 출퇴근하는 공무원들도 아직 그 수가 적지 않다. 왕복으로 꼬박 네 시간을 통근버스 안에서 보내야 하는 그들의 불만은 아직 누그러들지 않고 있다. 대전, 공주, 조치원, 장군면 등지에 집을 얻은 공무원들도 내 집 마련을 한 이들은 매우 드물다. 잠시 거쳐 갈 곳이라는 생각일까. 두세 명이 전세를 함께 얻거나 혼자 원룸을 얻어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무원 수천 명의 임대수요가 쏟아져 내려오자 인근 전월세 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내가 얻은 보잘 것 없는 오피스텔도 보증금 1천만 원에 월세 50만 원 짜리다. 임대료만 보면 서울 도심 수준이다. 세종시의 아파트나 오피스텔이 제 모습을 갖추려면 최소한 1~2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 그때까진 임대 대란을 피할 길이 없다.

 

정부 세종청사 안에서는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 극에 달하고 있었다. 청사 경비원들은 주말도 없이 10시간의 주간 근무와 24시간의 당직 근무를 연이어 했다. 높은 업무 강도에 월급은 쥐꼬리였다. 한 달에 180만 원을 받았고 그 중 휴일 수당은 8천 원에 불과했다. 별다른 교통수단이 없는 곳인데도 통근 버스는 공무원들의 것이라며 탑승을 저지당했다. 그 추운 겨울도 흰 셔츠 한 장과 검은 외투 한 장으로 버텨야 했다. 재킷이나 비옷도 없었고 구두는 직접 구입해야 했다. 미화원이나 식당 아주머니들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비정규직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늘고 있지만 정작 정부 건물에선 그들은 단지 하청업체가 데리고 있는 ‘알바’ 수준의 대접만 받고 있었다. 우리는 이에 대해 연속 보도를 했고 처우는 상당 부분 개선됐다. 경비원들은 근본적인 개선을 요구하며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정부의 하청 노동자 중에선 처음 있는 일이다. 세상과 거꾸로 가는 안전행정부의 하청 관행을 바로 잡은 첫 단추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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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까지 택시비 3만원, 대리비 5만원

식사 시간엔 서울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이 펼쳐진다. 청사 내 구내식당과 인근 공사장의 함바집 말고는 걸어서 갈 수 있는 식당이 없다. 격식을 갖춘 식사를 하려면 조치원, 공주, 대전 등지로 차를 타고 한참을 달려야 한다. 식당들도 자연스레 승합차나 관광버스로 고객을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과천 청사 인근에서 공무원 상대로 점심이나 저녁 장사를 하던 식당들도 하나둘씩 세종시 인근으로 내려오기도 했다. 그래서 11시부터 청사 앞은 승합차가 장사진을 이룬다. 풍문으로는 점심시간에 손님을 실어 나르는 대가가 대략 5만 원 선이라고 한다. 낮 시간에 별 일이 없었던 유치원 승합차나 출퇴근 버스들이 이 아르바이트에 나섰다. 샤브샤브 집에 가는 중년의 넥타이 아저씨들이 점심 때 유치원 버스를 타는 이유다.

저녁 시간도 별반 다르지 않다. 부서 회식 장소는 조치원, 대전, 공주 등지로 한 번씩 장소를 옮긴다. 사는 곳이 제각각이어서다. 퇴근 후에도 취재원을 만나야 하는 기자 입장도 마찬가지다. 취재원의 집 인근이든 맛집을 찾아가든 기자의 숙소와는 멀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되면 3만 원 정도의 택시비를 내든지 5만 원 정도의 대리기사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다보니 부르는 게 값이다. 이제는 정말 특별한 일이 아니고선 저녁 약속을 잘 잡지 않게 됐다.

 

공무원들은 툭하면 서울로

평소에 장차관이나 고위 공무원을 만나는 일도 하늘의 별따기다. 자리에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대부분 서울에 있기 때문이다. 국무회의, 경제관계 장관회의, 대외경제 장관회의가 서울에서 열리고 차관회의도 서울이고, 최근 연달아 열린 인사청문회, 업무보고 등이 모두 서울이었다. 장차관이 참석하는 회의지만 관련 부서의 공무원들도 함께 움직인다. 열심히 취재했다가도 정작 리포트는 서울 기자들 몫으로 돌려야 했다. 세종시가 제대로 자리 잡으려면 앞으로 수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들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도 우리는 자리를 잡고 이곳에서 왕성한(?) 취재활동을 벌여야 하는 운명이다. 주중엔 청사로 출퇴근하고 주말엔 청소와 밀린 빨래를 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아는 사람도 하나둘씩 늘어가고 있다. 적어도 자리는 잡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세종시는 여전히 사방이 공사판이다. 그 흙먼지 속에서도 개척자들은 오늘 하루를 살아가고 있고 우리는 그 하루하루를 기록하는 것에 점점 더 익숙해져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