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후배의 시각] 방송사의 칼에서 정치권의 입으로

[현직 후배의 시각]
방송사의 칼에서 정치권의 입으로

 

언론의 자유가 먼저다 

“2008년 2월 윤두현 (박근혜 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에게 정치부장을 시키라는 당시 보도국장 홍상표 (이명박 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의 요청을 거부했다.”
– 표완수 전 YTN 사장 (인권위,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직권조사’ 보고서 中)

 

 

 

 

 


홍상표, 윤두현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YTN이 10년 넘는 ‘공정방송쟁취’ 투쟁의 긴 터널을 지나는 동안 YTN의 공정 보도를 망친 대표적인 인물로 손꼽히는 이름이다. 이 둘의 공통점은 YTN 재직 시설 맡았던 정치부장과 보도국장을 지렛대 삼아 현직에서 청와대 홍보수석으로 영전한 빛나는 경력에 있다. 청와대는 이 둘의 임명을 알리면서 “정무감각과 경영능력을 겸비하고, 기획력과 상황분석 능력이 탁월하며, 사회 각 분야에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어 국민과 소통하는 홍보수석의 적임자로 판단했다”, “오랜 언론인 생활을 통해 균형감 있는 사고와 날카로운 분석 능력을 발휘해 온 분”이라며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과연 그럴까?

 

가장 정치 편향적인 폴리널리스트

홍상표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YTN 역사상 가장 빛나는 프로그램인 ‘돌발영상’을 망친 장본인이다. 홍 전 수석은 보도국장 재직 시절이던 2008년 3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삼성 금품수수 인사 명단’ 관련 돌발영상 <마이너리티 리포트>편의 재방송을 중단하고 삭제를 지시한 바 있다. 이동관 당시 홍보수석의 멘트를 사용한 것이 엠바고에 위배됐다는 청와대의 항의 때문이었다. 이후 돌발영상은 정권의 외압에 부침을 겪다가 제작진에 대한 징계와 인사발령으로 결국 2009년에 폐지되는 아픔을 겪었다. 홍상표 전 수석은 당시 회사 최고 결정 과정에 있으면서 돌발영상 폐지에 직·간접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윤두현 전 수석은 YTN 재직 시절인 2011년과 2013년, 보도국장과 디지털 YTN 사장 등 발령이 날 때마다 사내 구성원의 반대에 직면했던 인물이다. 그의 정치적 편향성이 보도 제작 과정에 잡음을 일으킨 전력 때문이다. ‘대통령 얼굴을 빼지 않으면 리포트를 못 내 보낸다’라며 BBK 단독 리포트를 불방시킨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앞서 언급한 표완수 전 사장의 진술처럼 이명박 정부 시절 정부 핵심 관계자가 윤두현 전 수석의 뒷배 노릇을 했다는 소문이 파다했고, 이명박 정부 실세였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과 막역한 사이로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그를 두고 ‘언론사를 정권에 헌납한 대표적인 정권의 하수인이자 전형적인 폴리널리스트’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2019 5.6월호 특집2 사진3

언론장악의 대가는 홍보수석이라는 열매(?)
홍상표와 윤두현의 사례는 YTN이 눈물과 회한으로 지켜낸 ‘공정방송 10년 투쟁사’의 흑역사로 남았다. 돌발영상과 단독 리포트를 대가로 이들이 취한 것이 홍보수석이라는 정황이 드러날 때마다 YTN 구성원들이 느낀 자괴감과 부끄러움은 현재진행형이다. 언론인이 정치로 직행하는 행태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얼마 전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특별보좌역에 YTN 보도국장과 보도본부장을 거친 인물이 기용됐다. 그는 윤두현 전 수석 시절 YTN 보도국장에 임명된 인물로, 임명 당시 청와대 언론장악 논란에 휩싸였던 이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 시절 YTN 보도를 좌지우지했던 핵심 인물들이 속속 정계에 진출하고 있는 현실은 ‘공정방송’을 외치던 YTN 구성원들에게 참담함을 안긴다.
정치적 선택은 자유다. 하지만 균형감각과 날카로운 분석을 통한 촌철살인이 최대 무기여야할 언론의 칼이, 정치적 성향과 정무적 판단에 의해 무뎌진 사례가 심심치 않게 목도되고 있다. 그리고 논란의 당사자들이 정치권에 입문한다는 소식이 속속 전해진다. YTN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권의 입맛에 쓴 보도물을 자신의 입신과 엿 바꾸듯 거래한 의혹을 받는 인물들이 청와대에 진출하고 정계에 입문했다.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 그들의 정치적 선택이 존중되어야 하는 걸까? 우리는 시청자와 국민을 대신해 어떤 현장이든 가야하고 그 누구와도 만나야 하는 사명을 가진다. 권력의 지근거리에 자리하고 있으면 그쪽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기자로서의 인정욕구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국민의 밝은 눈과 귀가 되려면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매몰되는 일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현직 언론인의 정계 진출 과정에서 드러난 정권과의 결탁이 아직도 뼈아프게 느껴지는 이유다. 개인의 선택 위에 언론의 자유와 언론인으로서의 사명이 놓여있기 때문이다.

YTN 시철우 기자 (영상기획팀)

 

그들의 변신은 ‘유죄’

‘2달’은 충분했다. 청와대 행정관이 퇴직 뒤 금융사 임원으로 ‘직행’하는 데까지 말이다. 회사는 기존에 없는 자리까지 만들어줬다. 연봉은 수억 원. 이 화려한 캐스팅의 주인공은 청와대 근무 경력을 빼면 ‘금융 경력이라고는 없는, 독어교육을 전공한, 39살 전직 기자’였다. 이것이 일반인들이 가지는 ‘상식 범위’에 들어오지 않는 건, 흔들리지 않는 분명한 사실이다. 

그녀의 ‘변신’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은 흥미롭다. 그녀는 2017년 출입기자로 당시 문재인 후보 캠프를 취재하다, 대선 직후 청와대로 자리를 옮겼다. ‘○○○’ 기자라고 쓰고 ‘폴리널리스트’라고 읽는 이들이 대다수지만, 그녀는 ‘용감’했다. 틀림없이 그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순실 씨 부탁을 받고 민간 회사 임원 인사에 개입한 혐의로 법정에 섰다. 정권과 특수 관계에 있던 사람이 민간 금융사로 간다는 것, 그것은 그것만으로 권력 남용, 심지어 불법 의혹까지 제기될 여지가 있다. 더욱이 당사자가 불과 얼마 전까지, 그런 모습을 비판했던 기자였다는 사실에, 국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후배들은 고개를 들지 못한다.

 그녀의 변신이 가능했던 건 ‘배움의 힘’이었을까. MB정권 미디어법 개정에 반대하는 후배들에게 비수를 꽂고 청와대 수석으로 간 모 선배. 대표이사까지 지내고 비서실장으로 간 모 선배. 정권이 바뀌어도 회사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던 선배들이 또다시 줄줄이 청와대로 향했다. 그들은 예외 없이 당시 ‘이정현 전 홍보수석 말’처럼 홍보수석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다.
안타깝게도 그건 끝이 아니었다. 지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SBS 전직 기자들의 청와대행이 또 전해졌다. 물론, 이 기간 정권을 비판하고 견제해야 할 펜과 마이크는 무뎌졌고, 공정성은 추락했다. SBS의 공정성을 인정받던 시절은 짧았고 그 시간은 아련한 추억의 한 페이지로 넘어갔다.

“아니,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어쩌면 그들은 항변하고 싶을 것이다. 상식적인 얘기는 긴 설명이 필요 없다. 그래서 이 항변에 대답도 간명하다. ‘권력의 현직 언론인 공직 발탁은 언론과 권력의 건강한 긴장관계를 허물기 때문’이다. 이 간단한 명제를 몰랐다면, 기자로서, 공직자로서, 임원으로서 그들의 삶은 완벽한 ‘미스캐스팅(Miscasting)’이다. 

한때는 ‘선배’라고 불렀던 이들에게, 조용히 읊조리고 싶다.
‘왜곡된 변신’을 꿈꿨던 자, 모두 유죄.

SBS  기자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소식을 듣고 의아했다가 마음 한 곳이 씁쓸해졌다. 며칠 전 선배의 명예퇴직 인사발령을 봤을 때와는 또 다른 씁쓸함이었다. (본인은 명예퇴직과 청와대행의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회사는 또다시 술렁였다. 현직 언론인의 청와대 직행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여러 곳에서 제기됐다.
2008년 뉴스데스크 앵커 출신 기자의 청와대행과 2015년 현직 시사보도제작국장 겸 토론 프로그램 진행자의 청와대행 당시엔 나 역시 같은 입장이었다. 두 기자는 회사에서 이른바 ‘잘 나가던’ 기자였다. 대중적인 인지도가 있었고, 회사에서 주요 보직을 맡고 있었다. 명확한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언론인으로서의 영향력을 정치권에 전달할 수도, 반대로 정치권의 요구를 보도에 투영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2008년의 경우 경영진은 당일 아침 사직의사를 밝힌 해당 기자를 위해 회사 건물에서 기자회견을 주선하는 파격적인 배려까지 단행했다. 하지만 이번 경우를 앞선 사례와 함께 ‘현직 언론인의 정치인 변신’이라고 뭉뚱그리기엔 스스로 완벽하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회사 사람, 구체적으로는 보도국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다. 다시 말해, 보도국이라는 경계 밖에서는 통하지 않을 사정이었다. 그렇다면 이번 사례에 대한 나의모호한 태도는 ‘팔은 안으로 굽는다’일 뿐인가.

기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로부터 얼마 뒤 공석이 된 청와대 의전비서관직에 타사의 유명 예능PD가 물망에 올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결과적으로 무산됐지만, 그 PD를 같은 논리로 비난하는 목소리를 찾기는 어려웠다. 당황스러웠고 모호했다. 아나운서들의 청와대행 소식이 전해졌을 때도 일방적인 비난의 목소리는 적었다. 기자와 아나운서, 예능PD의 역할은 다르지만, 언론인이라는 본질은 다르지 않다. 시청자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아나운서나 예능PD가 종종 더 크기도 하다.
분명한 건 기자 집단과 정치권 사이에는 부인할 수 없는 ‘갑을 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기자들은 합법적으로 ‘갑질’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집단인데, 어제까지 갑질을 하던 대상에 오늘 한자리 의탁하는 건 분명히 비난받을만한 행동이다. 그렇게 옮긴 자리가 사회적으로 ‘슈퍼 갑’에 해당되는 정치권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런 선례를 보면서, 자신의 취재활동을 ‘기자 이후의 삶’과 본격적으로 연결시켜보려는 또 다른 기자를 양산할 수도 있다. 물론 “나는 정치권에 갑질하며 기자짓하지 않았다”고 항변하는 기자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기자 개인만이 알 수 있는 양심의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이해해 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눈에 띄는 이해상충이나 불법적인 행위가 없더라도, 기자라는 이유만으로 정치권으로 직행한 뒤 비판을 받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다른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다. 기자가 정치권으로 가는 것이 그토록 비난받을 일이라면 기업 등 다른 직역으로 가는 일은 덜 비난받을 일일까. 기자의 정치권 직행이 ‘갑질+무임승차’에 비견될 만큼 기자로서의 경력이나 전문성이 그토록 보잘 것 없는 것일까. 차라리 퇴임한 고위 공직자의 재취업을 심사하는 것처럼, 기자협회에서라도 대략적인 가이드라인이나 윤리강령을 제시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기자 역시 직업적 안정성이 취약해진 직장인일 뿐이라면, ‘기자 이후의 삶’을 고민하는데 있어서 뭔가 기준이 있어야지 않나. 기자라는 이유만으로 선택에 대한 모든 비난을 감수하기란 뭔가 억울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질문은 출구 없이 맴돌기만 할 뿐이고, 스스로의 대답 역시 ‘나는 어떤 기자인가’로 환원될 뿐이다.

MBC △△△ 기자

 

‘역임歷任’이란 단어의 조건

2019 5.6월호 특집2 사진4

민경욱 전 청와대 대변인
2014년 2월 5일 민경욱 KBS 보도국 문화부장이 청와대 대변인에 임명됐다. 오전 보도국 편집회의까지 참석했던 그는, 곧바로 청와대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KBS가 지급한 법인휴대전화는 아직 그의 수중에 있었다.
KBS는 이날 13시 33분 인터넷뉴스를 통해 “청와대 대변인에 민경욱 KBS 문화부장”이라고 보도했다. 그리고 15분 뒤 이 기사는 “청와대 대변인에 민경욱 전 KBS 앵커”라고 대체됐다. ‘현직 문화부장’은 아무래도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심지어 기사에는 사표도 수리되지 않은 직원을 두고 ‘문화부장 역임’이라고 썼다. ‘역임歷任’은 과거에 지낸 직위를 언급할 때 쓰인다. 따라서 ‘역임’이란 단어는 이 상황에서 틀린 표현이다.
당시 KBS 수뇌부도 신임 청와대 대변인 ‘심기’ 지원에 나섰다. 2월 6일자 사내 게시판을 통해 면직 사실을 고지하면서, ‘민경욱 부장의 면직 시점은 2월 4일’이라고 친절히 사족을 달았다. 사의 표명을 4일에 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그렇다면 2월 4일 밤 <9시 뉴스>에 출연한 민경욱은 누구란 말인가? 지금까지 이런 ‘소급 사직’은 없었다. 2월 4일 민경욱은 직원인가 외부인인가?
최소한의 완충 기간도 없는 ‘순간 이동’을 두고 사내외에서는 조롱과 분노의 글들이 쏟아졌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공영방송 앵커의 이미지를 빌려 파탄 난 국정을 호도하려는 시도를 중단하라”로 지적하면서 당시 인기 드라마를 패러디한 ‘블루하우스 막장 드라마-변해서 온 그대’라는 이미지를 노보 1면에 실었다. 신입 기자들도 “오전에 단신 사인을 내신 뒤, 오후에 청와대로 가 손수 나팔을 잡으신 선배 덕분에 오랜만에 다시 부끄러움이란 감정을 느껴본다”며 치욕스러움을 표했고, “우리는 당신과 같은 언론인은 되지 않겠다”는 다짐도 이어졌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KBS와 청와대가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안방-건넌방’처럼 여겨졌을지 모르겠다”고 꼬집었고, 소설가 공지영 씨는 “민경욱 신임 청와대 대변인 임명소식에 대한 최고의 댓글, ‘쭉 대변해 오시지 않았어요? 빵(터졌다!)”며 일갈했다.

KBS 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