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_헌재 탄핵심판, 관례에 부딪힌 알 권리_KBS 노윤정 기자 (법조팀)

‘법조’라는 출입처에서 헌법재판소는 통상 대검 출입기자가 전담한다. 법조 기자 가운데 고참급이고 대검과 대법원, 그리고 헌재를 함께 출입하는 경우가 많다. 업무 분장이 이렇게 된 건 헌재라는 출입처의 특이성 때문이다. 정기 결정일은 한 달에 한 번, 마지막 목요일. 이때가 아니면 (물론 헌법재판관이나 연구관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겠지만) 사실 잊기 쉬운 출입처다. 하지만 한번 사건이 떨어지면 핵폭탄이 되는 경우가 많다. 2016년 12월, 헌재에 설립 이래 가장 강력한 메가톤급 핵폭탄이 떨어졌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의결서가 접수된 이후 헌재는 바쁘게 움직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국회 탄핵심판소추위원단과 박근혜 대통령 측이 제출한 각종 서류와 탄원서가 줄을 이었다. 각 방송사 중계차가 헌재 주차장을 메웠고, 가뭄에 콩 나듯 인터뷰하던 헌재 공보관은 매일 오후 2시 카메라 앞에 섰다. 임시 브리핑 룸에는 50명 안팎의 기자들이 몰려 자리를 잡느라 부산을 떨었다.
언론의 취재 열기는 국민의 관심도에 비례한다. 탄핵심판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그만큼 매섭다는 뜻일 것이다. 기자들의 마음가짐도 그만큼 엄중하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취재 현장에는 한계가 있고 아쉬움도 있다.

탄핵심판 공개 변론은 반半 공개 변론?
헌재나 법원 취재는 검찰 취재와는 성질이 다르다. 새로운 정보를 캐내는 것보다는 심판정과 법정에서 벌어지는 당사자 간 공방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이 보도의 생명이다. 그래서 헌재 탄핵심판 변론이나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재판이 열리는 날은 많은 방송사가 길게는 몇 시간씩 특보를 연다.
헌재 탄핵심판은 원칙적으로 공개 변론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공개’라는 말에는 사실 어폐가 있다. 변론을 실제로 볼 수 있는 건 기자들과 극소수 국민뿐이기 때문이다. 협소한 장소 문제를 이유로 기자들도 각 사별로 할당된 인원만 심판정에 들어가 변론을 지켜볼 수 있고, 나머지는 브리핑 룸이나 대강당에 설치된 스크린을 통해 변론을 보게 된다. 일반 시민이 직접 보려면 인터넷 사전 추첨에서 경쟁을 뚫고 당첨돼야 하는데,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다.
이런 ‘반半 공개’ 변론을 지켜보면서, 그동안 무심하게 받아들였던 헌재 변론 제도와 취재 시스템에 의문이 들었다. 탄핵심판을 가장 정확하게 보도하려면, 기자가 지켜본 변론 과정을 정리해 보도할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생중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온 국민이 이렇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데 왜 중계나 촬영이 허용되지 않을까. 공개 변론이란 생중계와 촬영이 허용되는 변론을 말하는 게 아닐까.
헌재 측에 생중계 불허 이유를 물어봤지만 관례상 그렇게 해왔다는 답변밖에 들을 수 없었다. 법원은 요즘 그동안 관례를 깨고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재판을 생중계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헌재에서는 아직 그런 움직임이 없다. 오히려 올해 들어 그동안 없었던 일반인 출입통제 장치만 하나 둘 늘어나고 있을 뿐이다.

왜곡 보도·비전문적 보도 경계해야
생중계의 필요성을 새삼스레 느끼는 이유는 또 있다. 부끄럽지만 기자인 나도 언론 보도를 그대로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똑같은 변론을 지켜보고도 기사 제목은 제각각이다. 국회 소추위원단의 주장을 조목조목 전달하는 언론사가 있는 반면, 어떤 언론사는 대통령 대리인단의 주장을 제목으로 뽑는다. 무엇을 속칭 ‘야마’로 뽑을 것인가, 선택의 순간마다 왜곡과 변형이 일어나고 있다.
또 다른 이유는 헌법재판과 관련한 기자들의 전문성 부족이다. 요즘 법조를 취재하는 기자들은 법학 전공자가 많아 기본 지식은 어느정도 갖추고 있다. 하지만 헌법재판은 법원 재판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많다. 생소한 용어도 많고 개념이 아예 다른 경우도 있다. 한국에 헌법재판소가 생긴 것이 1988년이니 헌법재판에 통달한 전문가도 그리 많지는 않다. 기자들도 차근차근 배워나가야 할 것이 적지 않다. 하지만 생소함 때문인지 헌법재판 관련 기사를 보다 보면 유독 오보나 소설 같은 관측 기사가 눈에 띈다. 이런 기사들은 여과 없이 인터넷에 게재되고, 어떤 경우에는 정치권 반응이나 인터넷 여론까지 호도하기도 한다.

헌법재판소에 쏠린 눈과 언론의 의무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은 지난해 신문방송편집인협회 토론회에서 ‘추상적 규범 통제’라는 화두를 던졌다. 사회 갈등이 발생하기 전, 헌재가 입법 단계부터 미리 관여해 분쟁 유발 요소를 차단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개헌이 필요한 사안이고 법조계 내에서도 찬반 의견이 엇갈렸지만 이 같은 발언이 나온 배경은 공감할만하다. 모든 갈등이나 분쟁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헌재로 넘기는 현상에 대한 반성적 고려였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것은 헌재소장뿐 아니라 모든 국민이 우려할 만한 상황이다. 하지만 단기간에 개선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헌재의 어깨가 무겁고, 헌재를 취재하는 기자들의 책임도 무겁다. 무거운 짐을 짊어진 헌재를 투명하게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 헌재 심판 과정을 왜곡하지 않고 정확하게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언론이 해야 할 일이다. 이번 탄핵심판이 올바르고 정확한 헌법재판 보도의 틀을 갖추는 데도 시금석이 됐으면 한다.


* 노윤정 기자는 원고 작성 당시 법조팀에 있었고 현재 선거방송기획단 소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