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_그래도 봄은 온다_YTN 김승환 기자 (사회부)

국민적 열망은 특검으로

“참 힘들었죠. 올해 돌아보면 어쩜 그렇게도 그럴 수가 있는 건가요.
잘했어요. 참아 내기 힘든 그 용서할 수 없는 걸 다 함께 외쳤던 그날들.”

윤종신의 ‘그래도 크리스마스’. 지난해 대한민국 사람들 마음이 아니었을지. 박정희 전 대통령 영정이 박힌 휴대전화 고리를 쥐고 다니신 95살 우리 할아버지도 이젠 등을 돌리셨다. 로스쿨에서 강의하다 전화를 받았다던 특검 관계자는 특검팀 합류 사실을 알리자 학생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라고 했다. “그게 국민적 열망”이라고 표현했다.
우여곡절 끝에 서울고검장 출신의 박영수 변호사가 특검으로 임명됐다. 박 특검은 “(수사) 대상자의 지위고하나 정파적 이해관계를 고려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국민들이 박 특검에 바라는 것은 간단했다. 박 대통령을 직접 조사해 사실관계를 명백히 밝혀내고, 관련자들이 응당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 하지만 조직적인 뒷받침이 가능했던 검찰과 달리 특검은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정식 사무실이 마련되기 전 나 같은 주니어 기자들은 박 특검이 근무하던 로펌으로 몰려들었다. 당연히 있을 곳은 없었다. 박 특검의 출근과 퇴근 그리고 화장실 갈 때 궁금한 점을 물어보며 기다리는 이른바 ‘뻗치기’ 생활이 시작됐다. 파견 검사나 수사관 인선, 전체 특검팀 구성 방식 등 하나하나가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늦게 가면 화장실 앞쪽에 있어야 했는데, 민망한(?) 소리가 들려 이어폰을 꽂고 있어야 하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대치동 시대의 시작
특검은 임명 2주 만에 서울 대치동에 둥지를 틀었다. 검찰 기자단도 서초동 시대를 잠시 접고 대부분 대치동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특검 건물에 기자실이 충분치 않아 우리 회사를 포함해 몇몇 회사들은 사무실 근처에 오피스텔을 마련했고, 각 회사별로 출입 인원도 대폭 보강됐다. 이전에 법조에 출입했던 ‘왕년의 용사’들과 저돌적인 막내급 기자들이 충원되면서 진검 승부의 서막을 예고했다.
박영수 특검이 공식 수사 개시를 선포하며 현판 앞에서 미소를 짓던 그 시각. 수사관들은 국민연금공단과 보건복지부 연금정책국 등에 들이닥쳤다.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을 통해 최순실에 대한 지원과 삼성그룹의 숙원인 경영권 승계 문제를 ‘빅딜’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정조준 한 것이었다. 그 이외에도 문화계 블랙리스트 수사 등 검찰 수사에서는 구체화되지 않았던 쟁점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피 말리는 속보·단독 경쟁…하지만 중요한 것은
24시간 뉴스채널의 운명인지라 실시간으로 나오는 속보 처리로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나날이 계속됐다. 특검 브리핑이 끝나고 10분 안에 원고를 준비해 중계를 해달라는 주문은 예사였고, 야근하며 햄버거를 사러 갔다 갑자기 소환 대상자가 공지돼 속보를 치기 위해 빨간불을 무시하고 도로를 건너기도 했다. 한밤중에도, 주말에도 기사 처리와 향후 취재를 의논하기 위해 카톡은 쉴 새 없이 울렸다.
매일 회사별로 단독 보도도 쏟아졌다. 도무지 확인되지 않는 진술들과 어떻게 구했는지 직접 묻고 싶은 ‘핫한’ 자료들의 향연. ‘난 뭘 하고 있는가’ 하는 자괴감에 시달리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문득 이러다 또 ‘아님 말고 식’ 지르기 기사나 흥밋거리 위주로 흘러가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 아찔하기도 했다. 물론 인사치레겠지만 “방송 잘 보고 있다”는 말을 들을 때면 무서워지기도 했다. 언론이 쥐고 있는 칼을 어떻게 휘두르냐에 따라 특검의 성패에 영향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결국 기자들이 중심을 잃지 않고 기본자세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는 뻔한 말밖엔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누구나 생각하는 당연한 ABC를 어겼기 때문에 이 엄동설한이 시작된 게 아닌가. 기나긴 겨울이 끝나고 노래 가사처럼 따뜻한 봄이 올 날을 기다려 본다.

“곧 해피 뉴이어. 더 어른 되면 좀 더 괜찮은 얘길 해요. 가슴이 따듯해지는 미소가 떠나지 않는 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