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_그들은 어쩌다 ‘독성 전문가’가 되었나?_KBS 심수련 기자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여러 차례 취재했다. 오래 만에 연락하면 서로의 안부를 물을 정도로 알고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기자에게 기회가 많았다는 것은 그만큼 문제가 풀리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2016년 다시 만난 피해자들은 기자들에게 정말 많은 정보를 주었다. 감정을 호소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들이 전한 정보의 상당 부분이 실체에 가까웠다는 걸 후일 깨닫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무도 저희 얘기를 들어주지 않았어요”
31주의 태아 밤톨이와 백일을 갓 넘긴 동영이를 연달아 잃은 권모 씨는 한차례 인터뷰를 거절했다. 수년간 여러 차례 언론 인터뷰와 각종 토론회에 사례자로 나선 바 있던 권 씨의 피로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서울대 조 모 교수의 생식독성보고서를 입수해 취재하게 됐다. 살균제에 노출된 새끼 쥐 15마리 중 13마리가 죽는 높은 사망률. 독성이 호흡기인 폐뿐 아니라 전신을 돌고 태반을 통해 태아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실험 결과였다. 이 사실을 전하자 권 씨는 감정을 주체하기 어려워했다.
“10년을 매달렸어요. 분명히 저는 건강한 아이를 출산한 경험이 있었고 살균제 때문에 제 아기들이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박사님들조차 먼 미래에나 밝혀질 일이라고 제 얘길 들어주지 않았어요.”
그렇게 해서 찾아간 권 씨는 자신의 얘기뿐 아니라 다른 피해자 엄마들의 사연도 들려주었다. 다른 피해자 엄마는 옥시 제품을 사용하다 둘째 아이를 잃었다. 그러다 지난해 초 정부로부터 셋째 아이의 폐 손상 판정을 받게 됐다. 가능성 높음에 해당하는 2등급이었다. 환경부에 둘째 아이의 제품 사용을 증명하려고 영수증을 확인하다 셋째 아이 임신 중 ‘뉴가습기 당번’을 두 달여 사용한 것과 유산 증상이 심했던 기억을 떠올린 결과였다. 피해자들은 서로의 피해 상황과 정부 판정 결과를 공유하고 있었고 정부와 언론, 과학자들이 뭔가를 분명히 설명해주리라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런 태아 피해 사실이 이미 1년 전 전문가 집단이 조사해 환경부에 보고한 내용들이었다는 것이었다. 정보들은 취사선택돼 세상에 알려졌고 학자들 사이에도 공유되지 않았다.

“피해자들 몸이 말하고 있다고요.”
아이와 함께 4등급 판정을 이모 씨는 ‘가습기 메이트’를 2년간 사용했다. 모자가 앓고 있는 질환은 자가 면역 질환, 천식, 비강 섬유화(콧속 조직이 굳는 증상) 등이다. 정부가 지난 5년간 폐 섬유화를 가습기 살균제의 유일한 증상으로 판정하는 사이 이 씨는 같은 제품군 피해자들의 질환들을 분석해 데이터화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용시기와 질환을 앓게 된 시점이 같았다. 폐 섬유화는 적었지만 비염, 후두염 등 상기도 질환과 천식과 면역 질환이 많았다.
“3,4등급 피해자들에게는 아무도 관심이 없어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피해자들이 의료기록을 모으게 된 거예요. 논문도 수없이 찾아봤어요. 외국 의사들이 작성한 어떤 논문에는 가습기 살균제 속 유기화합물인 CMIT(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와 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 성분의 화장품이나 페인트 등으로 인해 저희 피해자들 같은 질병이 발생해 이런 제품 퇴출시켜야 한다고 했던데 왜 우리는 피해 인정도 못 받는 거죠?”
CMIT/MIT는 검찰 수사에 제외돼 있다. 정부 판정단이 이미 CMIT/MIT 제품 사용자중 3명(1명 사망·2명 2등급 판정)에 대해 해당 제품으로 인한 피해가 ‘확실’하거나 ‘가능성 높음’이라고 판단했음에도 해당 기업인 SK케미칼은 사과도 하지 않았고 이에 대한 수사기관의 처벌도 없었다.
오직 CMIT/MIT 제품만 썼는데도 심각한 폐 손상이 확인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문가들은 이제야 이 씨가 만든 질환별 데이터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지난 4월 중순까지도 피해자들에게 ‘추가조사는 없다’ 공언하던 환경부도 4월 말 폐 이외 다른 장기 피해에 대해 조사하겠다고 발표했다.

 

과학적 진실, 취사선택은 안 된다
다급했던 2011년 ‘집단 사망’사건으로부터 5년이 흘렀다. 과학적 오류가 있었다면 오류를 바로잡고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만한 시간도 충분했다. 평범하던 엄마, 아빠들은 그 사이 전문가가 다 되었다. 그래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은 기자들뿐이라며 온갖 논문과 자료들을 내보이며 설명하니 그들을 만날 때마다 몸 둘 바를 찾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