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직언론인 이야기]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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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조승호 기자(해직 언론인)

아내가 오디션 프로그램을 즐겨본다. 그래서 나도 가끔 같이 본다. 심사위원인 박진영 씨가 이런 말을 한다. “노래를 정말 완벽하게 부릅니다. 그런데 왜 감동이 없죠” 음치인 나에겐 먼 나라 얘기일 뿐이다. 음정만 맞아도 소원이 없겠는데 감동은 무슨? 그리고 세상에 감동을 주는 게 노래 뿐인가? 가수는 노래로, 기자는 보도로 감동을 주면 된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런데 그 다음 단계에서 막힌다. 나는 과연 얼마나 감동을 주는 기자였던가?

 

1994년 연합뉴스에서 YTN으로 파견됐을 때 막막했다. 차라리 처음부터 방송을 했으면 모를까, 통신 기사가 2년 이상 몸에 밴 상태여서 방송에 대한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그 때 내 인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선배를 만났다(나를 방송기자로 교육시켜준 은인이면서 동시에 낙하산 사장 영입을 주도해 해직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악연이 있는 선배이다). 아무튼 좋은 면만 생각하자. 당시 그 선배의 말에 용기를 얻었다. “방송 잘 못해도 괜찮다. 무조건 열심히만 하면 된다.” 능력은 모자랐지만 열정만큼은 자신이 있었기에 그 말은 큰 힘이 됐다. 그 이후 건방진 얘기지만 감히 말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 나만큼 열심히 일한 기자는 많아도, 나보다 더 열심히 일한 기자는 없을 것이라고.

 

객쩍은 소리 그만두고,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나는 단순히 보도를 열심히 하는 기자였나, 아니면 보도에 영혼을 담아 감동을 전해주는 기자였나? 부끄럽게도 전자에 더 가깝지 않았나 생각된다. 기자가 냉정을 잃지 않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그러나 그 대상에 공감하면서도 냉정을 유지하는 것과, 아예 공감 자체가 없어서 냉정하게 비쳐지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성수대교 붕괴, 대구 지하철 공사현장 폭발, 삼풍백화점 참사, 12·12, 5·18 재판, 남북 이산가족 상봉 등 참사나 비극의 현장을 보도하면서도 나는 거의 눈물을 흘린 적이 없었다. 돌이켜 보건대 나는 단순한 팩트 전달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눈물을 흘린 것으로 분명히 기억되는 것은 1999년 씨랜드 참사 때였다. 현장이 아니라 회사에서 ‘받치는’ 리포트를 제작했는데 화면 편집을 하다 눈물이 나와 녹음실 골방으로 갔다. 당시 스스로 의아했다. 내가 왜 이럴까? 그 때 유치원생 19명이 희생됐는데 아마도 내 첫 아이가 태어난 직후여서가 아닐까 싶었다. 희생당한 아이들이 남의 자식으로 여겨지지 않았고, 오열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그동안 취재 대상을 벽 건너서 열심히 바라만 볼 뿐 벽을 넘어가서 그들의 입장에 서 보려는 노력은 없었던, 그런 게으르고 이기적인 기자가 아니었나 후회가 들었다.

 

최근에 또 한 번 울었다. 후배 박진수 씨가 강력히 추천해서 설 연휴 때 식구들이 함께 본 영화 <7번방의 선물> 때문이었다. 남들이 많이 울었다는 <레미제라블>을 보면서도 눈물이 안 나와 ‘내가 감정이 메말랐나’ 생각했었는데 결코 아니었다. 내 눈에 눈물샘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아내가 그 뒤부터 ‘흑~~ 흑~~ 흐흐흑~~’ 하면서 나를 놀릴 정도이다. 아내는 아마도 부성애를 다룬 영화여서 내가 공감을 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한다. 초등학교 1학년인 막내딸을 주인공의 딸에, 누명을 쓴 주인공을 나 자신에게 오버랩 시키면서… 그동안 모성애를 다룬 영화도 많이 봤지만 내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는 거였다.

 

결국은 ‘공감共感’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 입장에 있다면 어떻게 느낄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 방송 도중에 기자의 감정이 표출된다면 그건 방송사고이다. 그러나 방송에서는 냉정하게 전달하되, 방송의 뒷 편에서는 함께 눈물 흘리고 함께 분노하고 함께 웃는다면 그건 방송사고가 아니다. 오히려 그런 보도에 영혼이 실려 시청자에게 감동을 주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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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어떤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동일한 처지가 될 필요는 없다. 마약중독자를 취재하기 위해 마약을 먹는 게 정당화될 수 없고, 자살하는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 기자가 자살을 경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어떤 경로로든 누군가의 입장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면 그것 또한 큰 장점이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흔치 않은 장점을 갖게 됐다고 생각한다. 본의 아니게 ‘해직’이라는 공감共感의 정서를 갖게 됐으니… 그게 무슨 자랑이냐고 타박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그 입장이 되고 나니 MBC,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사태를 보는 깊이가 달라진다. ‘해고는 살인이다’는 노동자들의 외침도 피부에 와 닿는다. 예전에 시사저널 기자들이 『시사IN』을 만들기까지의 그 어려웠던 시기에 나는 왜 그토록 무관심 했던가 자책도 된다. 내가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으니 아마도 하늘이 나를 교육시키려고 그 입장으로 만들어 버린 게 아닌가 싶다.

 

<7번방의 선물>을 보면 기자들이 나온다.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정황인데도 경찰발표와 여론의 분위기에 휩쓸려 주인공을 살인자로 단정하고 돌팔매질을 함께 한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기자들에게 분통이 터지겠지만, 나는 자책감이 먼저 들었다. ‘나도 예전에 저러지 않았나’하고… 수없이 기사로 썼던 ‘경찰과 검찰, 정부의 발표를 별 의심 없이 관성대로 기사화하지 않았나’하고… 언젠가 복직이 된다면,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기자가 되기에 앞서 마음부터 먼저 움직이는 기자가 돼야지 하고 다짐해 본다.

 

해직 6년째이다. 흔들리지 않으면 정말 대단한 사람이리라. 그러나 나는 보통의 사람이기에 흔들린다. 과연 복직이 될 수 있을까? 복직이 안 된다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 땅에 언론자유의 싹을 틔우기 위해 헌신한 동아투위, 조선투위 선배들을 존경하지만, 그 분들처럼 평생을 살고 싶지 않고 또 그렇게 살아갈 자신도 없다. 그래서 요즘 이 시를 자꾸 읽는다. 해직된 후 지인이 휴대폰 문자로 보내준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이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