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직언론인 이야기] 해직 4년 돌발영상 PD의 고백 “나는 언론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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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노종면 기자(해직언론인)

    

나를 드러내 보인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지금껏 나를 숨기는 것이 미덕이요, 도리라고 배워왔다. 그러나 요즘 세상은 나를 당당히 내보인다. “나는 가수다”, “나는 꼼수다”, “나는 꼽사리다”, “나는 하수다” 여기저기서 외쳐댄다. 거기엔 당당함도, 다짐도, 역설도, 해학도 담겨 있다. 이러한 세상이 내게 묻는다. “너는 누구냐”

    

“노조는 언론사에도 과연 필요한가 의문입니다”

1994년 YTN이라는 신생 방송사에 입사 원서를 내밀었다. 방송을 시작하지도 않은, 듣도 보도 못했던 뉴스 전문 방송사에 특별한 꿈이 있어서 들어가려 한 것은 아니었다. 졸업한 지 1년 반 동안 이 언론사, 저 언론사 시험 보느라 심신이 지쳤다는 사실, 유일한 응시의 이유였다. 다큐멘터리 PD가 되어 보겠노라던 첫 목표가 드라마PD, 예능PD, 음악PD로 변이되더니 방송사라면 기자인들 어떠랴 하는 심정이었을 때 YTN에 응시했고, 붙었다. 당시 YTN 입사 전형의 마지막 단계, 경영진 면접 때 면접관이 물었다. “노조에 대해 어찌 생각합니까?” 사실 예상 문제였다. 3당 합당으로 탄생한 YS 정권 치하의 취업 준비생들은 다 아는 예상 문제였고, 1990년 KBS 사태, 1992년 MBC 사태를 어느 정도 아는 언론인 지망생들은 모를 수 없는 예상 문제였다. 나는 사상 검증을 받는다는 불쾌한 생각이 들었지만 심신이 지친 백수임을 핑계 삼아 매끄럽지만 부끄러운 답변을 내놨다. “노조는 기업에 중요한 존재이지만 언론사에도 과연 필요한가 의문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따졌다면 할 말이 없는 엉성한 답변임에도 YTN 경영진은 원한 답은 얻었다 싶었던지 더 묻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기자라는 직업을 얻었다.

    

방송사의 보도 조직 안에서는 기자를 하다가 뉴스 PD를 하곤 한다. 일부는 앵커를 하기도 한다. 나는 기자, PD, 앵커를 다 해보았다. 세상 사람들이 이러한 세세한 이력을 알아줄 리 없다. 하지만 내가 돌발영상을 세상에 내놨고, 대박 프로그램으로 만든 PD라고 하면 ‘그래’ 하며 낯빛을 바꾼다. 그러니까 나는 알 만한 사람들은 알아주는 꽤 잘 나가는 PD였다. 나 스스로 우쭐해 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신 차려 보니 그건 치기일 뿐이었다.

    

기억에 없던 8년 전…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는

내가 해직 된 지 2년 반이 되었을 무렵인 2011년 6월, 김진숙씨가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던 한진 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을 향해 희망버스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른바 주류 매체들은 외면했지만 트위터는 뜨겁게 희망버스 소식을 퍼날랐다. 그 소식들 사이에 영상 하나가 있었다. 2003년 11월,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 바로 그 곳에서 목을 맨 김주익 열사의 장례식이었다. 영상 속에서 추도사를 눈물로 읽고 오열하던 노동자, 그는 바로 김진숙이었다. 나는 멍한 상태로 15분 길이의 영상(‘진숙을 위하여’)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고, 눈물을 참지 못하였다. 기억에 없던 8년 전 그때, 그때 나는 부산 영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한창 돌발영상이나 만들고 있었다. 언론이 노동자의 죽음을, 8년 뒤에도 눈물 쏟게 만드는 기막힌 죽음을 감쪽같이 덮어버리는, 그래서 그 비극을 다시 되풀이시킨 사회적 범죄 행위에 나 역시 가담했던 게다. 나는 기자요, PD로 단순 분류되었을 뿐 진짜 언론인이 아니었다.

    

나의 고백과 달리 세상은 나를 멋대로 규정한다. 해직과 구속 이후 세상은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를 비추었고 감당하기 힘든 규정들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반복되었다. 나를 이렇게 생각했다. ‘대상을 규정하기 위해 언어와 이미지를 동원하는 순간 조작이 이뤄지며, 그 조작은 필연이구나.’ 외부의 시선은 나를 보고 싶은 대로 보며, 내가 미더울 때는 내가 보여지고 싶은 대로 보기도 한다. 본래와 다른 것을 보아 버렸는데 표현이 정확할 리 없다. 어지간히 표현력이 좋지 않고서는 본대로조차 표현하지 못하며, 어지간히 표현력이 좋은 이는 언어와 이미지의 유희를 시도하기 십상이다. 내가 나를 가장 잘 알고, 나밖에는 나를 잘 알지 못하며, 자기 최면의 유혹이 있기에 내가 나를 잘 알기도 쉽지만은 않다. 결국 신문과 TV, 책 등에 등장하는 인물평과 고백 따위는 믿을 게 못 된다.

    

나의 약속, 당당한 해직언론인으로 살기

4년 넘게 해직 언론인으로 살면서 나는 본의 아니게 노동자임을 자각한 언론인, 언론 자유의 가치를 실천하는 언론인이라는 조작된 수식을 얻었다. 나를 인터뷰 한 기사들, 나를 인용한 칼럼들, 나를 그린 영상들 속의 나는 조작된 나이다. 고백컨대 나는 나를 꽤 잘 안다고 생각해 왔지만 나를 표현한 여러 조작된 나를 대하면서 자신이 없어졌다. 나는 누구인가? 조작된 내가 낯설었다가, 나였으면 했다가, 나인 줄 착각하기도 한다. 나에게는 두 가지의 길이 존재한다. 조작되지 않은 나를 드러내 보이거나 나를 조작된 나에 맞추어 사후적으로 조작을 치유하는 길이다. 나는 후자의 길을 택하기로 했다. 세상에 드러난 조작된 나를 세상과의 약속으로 삼기로 했다. 약속을 실천할 좋은 기회가 생겼다. 복직이 멀어진다 해도 당당한 해직 언론인으로 살기. 박근혜 정부의 2013년은 그렇게 나에게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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