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직언론인 이야기] 잃어버린 시간으로 나를 채우다

35 해직언론인_권석재

YTN 권석재 기자
(해직 언론인)

잊을 수 없는 날들

2013년 8월 15일 아침.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뉴스타파에서 다시 카메라를 잡기로 한 날이다. 두 돌이 채 안 된 아들 권이준 군은 아빠의 분주한 아침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본다. 늦지 않으려 밤잠을 설치고 신입사원인 양 서툰 출근 준비가 어색하기 그지없다. 아내가 준비해 놓은 옷이 새삼 고맙다. 나에게도 생소했던 그 아침은 잊을 수 없다. 이준이가 처음 세상에 온 그 날부터 늘 아침을 함께했던 아빠였기에 아들에게는 분명 이상하고도 낯선 모습이었으리라.

2008년 10월 6일.
나의 인생 여정 속에서 가장 빠르게 질주하고 있던 39세의 가을, 난 내 전부라 여겼던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한결같이 달려왔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만큼 나의 일을 사랑했다. 내가 열정을 갖고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말과 글이 아닌 눈으로 세상을 읽어내는 것, 그것은 나의 천직이다. 나는 열심히 일했고 내가 생각했던 옳은 일을 했다. 그러나 그날 나는 해직기자가 되어있었다.

만 5년의 시간이 지났다.
여전히 돌아가야 할 곳은 남아있고 마음속 짐의 무게는 변하지 않았다. 결국 난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일까.

“커다란 톱니바퀴일수록 맞물리기까지 오래 걸리는 법”

어느 순간부터 마음을 채우는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우리에게 고맙다고 한다. 나는 미안하기만 한데 가족들은 나를 자랑스럽다고 한다. 끈끈한 동료애는 어느 곳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값진 것이다. 나와 함께 일하기를 원하는 한국 사회의 거울도 있다. 내 곁에는 세상에 부끄럼 없는 멋진 사람들로 가득하다. 내가 가는 이 길을 희망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해직기자라는 직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내 어깨를 더욱 당당하게 만든다.

언론인이 진실로써 소통할 수 없다는 것은 본질적인 문제이며 결국 시대적 병을 낳는다. 곳곳을 가로막은 보이지 않는 바리케이드는 신뢰로 가는 지름길을 차단한다. 인류의 역사는 정의를 향하는 영혼의 바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우리는 끊임없이 성숙한 정신적 교감을 갈망한다. 인간으로서 언론인으로서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근원적 고뇌는 삶의 이유를 건네준다. 그 자체로서 5년의 시간은 내게 충분히 귀하다.

돌이켜보면 시간은 결코 인색하지만은 않다.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일들로 나를 새롭게 채우고 있으니 말이다. 커다란 톱니바퀴일수록 맞물리기까지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멈추지 않은 채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순간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곳은 분명 내가 기꺼이 있어야 할 곳이기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