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직언론인 이야기]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36-1 꼭지

36-2 정유신

새내기 시절, 선배들 이름 외우느라 정신없을 때, 정유신 선배는 단어 하나 덕분에 단번에 기억할 수 있었다. ‘정피협’. ‘정유신 피해자 협의회’의 준말로, 정 선배 밑에서 혹독한 수습 기간을 보낸, 나보다 1, 2년 위 선배들이 만들었다. ‘오죽했으면 이런 말이 생겼을까, 얼마나 독한 사람일까, 내가 2진으로 들어가는 불상사가 일어나서는 안 될 텐데….’ 하지만 ‘정피협’이라는 말이 애증의 찬사임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수습 교육을 시켜본 기자라면 알 것이다. 수습 괴롭히기가 얼마나 귀찮은지, 또 수습을 ‘제대로’ 괴롭히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이 고민해야 하는지를. 나 역시 수습 교육을 담당해 보고서야 정 선배가 얼마나 정성껏 후배들을 못살게 굴었을지 이해가 됐다. 그만큼 YTN이라는 조직을 사랑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래도 나는 다짐했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해 보자….’

그리고 우리는 만났다. 정 선배는 검찰 반장, 나는 병아리도 햇병아리인 2년 차 법조팀 막내. 처음 두어 달 동안 선배는 내게 검찰청사 주차장 뻗치기, 엘리베이터 앞에서 출근 멘트 따기 등 온갖 ‘수습스러운’ 일들을 시켰다. 본인은 또 얼마나 부지런하고 성실하신지, 후배로서는 당연히 달갑지 않은 솔선수범을 늘 실천했다. 나도 ‘정피협’ 회원명부에 이름을 올리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 두어 달 덕분에 나는 검찰 조직의 바닥부터 상세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튼실한 YTN 구성원을 하나 더 키우려 한 선배의 노력 덕분이었다.

적응하기 전까지 나는 그야말로 법조팀의 ‘구멍’이었다. 물 먹은 줄도 모르고 수없이 물을 먹었다. 당시 법조팀장은 말 그대로 ‘한 놈만 패는’ 스타일이었는데, 상대는 당연히 정 선배. 선배는 어리바리 후배들의 모든 과오를 혼자 짊어져야 했다. 하지만 나는 선배가 그렇게 ‘쪼이고’ 있었는지 처음 몇 달은 전혀 알지 못했다. 깨지면 담배만 뻑뻑 피워댈 뿐 짜증 한 번 낸 적이 없었다. 언제나 격려했다. 아무리 하찮은 정보보고라도 귀 기울여 듣고 칭찬했다. 당시 호흡 잘 맞고 좋은 기사 나오는 법조팀이라고 평가를 받았던 것은 정 선배가 가운데서 후배보다 더 성실하게, 선배보다 더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팀원 화합에 애썼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팀장이 굉장히 악덕한 인물이었던 것 같은 분위기가 감지되지만 제가 글재주가 없어 그럴 뿐,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물론 정 선배는 이렇게 착해 빠지기만 한 기자는 아니다. 기자가 한 출입처에 오래 머무르다 보면 취재원에 물드는 경우가 많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점점 검사들 입장에서 사건을 대하게 됐다. 그럴 때마다 정 선배는 집요하게 딴죽을 걸었다. 나는 속으로 왜 이해를 못 할까, 왜 저렇게 순진하게 생각할까 불평을 해댔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더라면 매너리즘에 빠진 나는 잘난 척하느라 시청자는 안중에도 없는 어려운 기사를 쓰거나, 말도 안 되는 해명에 휘둘려 검찰을 제대로 비판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정 선배는 검찰 반장들 가운데 거의 막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말 그대로 ‘날고 기는’ 타사 반장 선배들이 어찌 보면 눈치도 없고 덩치와 달리 술도 잘 못 먹는 정 선배를 대체로 좋게 본 것은 선배의 이러한 성실함과 순수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사실 정 선배는 굉장히 썰렁하다. 오뉴월 된서리 같은 유머 감각을 지닌 선배가 돌발영상팀으로 가게 됐을 때, 많이 걱정했다. 하지만 선배의 순수한 비판 정신과 우직함은 톡톡 튀는 아이디어만큼이나 돌발에 필요한 무기였다. 그런데 선배는 그 무기 때문에 돌발에서, YTN에서 잘렸다.

서른여섯. 선배와 처음 한 팀이 됐을 때 선배는 서른여섯이었다. 20대 후반이던 내게 서른여섯은 정말 먼 미래 같았지만, 지금 내가 서른여섯이 됐다. 그 사이 선배와 나는 똑같이 딸 둘을 둔 아빠와 엄마가 됐다. 그 몇 해 동안, 정유신 선배는, YTN이라는 조직을 그토록 사랑하고 방송하기를 좋아하던 선배는 YTN 마이크를 잡지 못했다. YTN은 분명 큰 손해를 봤을 것이라 믿기에 이 오랜 싸움이 너무 안타깝다. 게다가 그 참담한 상황이 보석 같은 두 딸을 키우는 선배의 행복을 어느 정도는 분명히 앗아갔을 거라 생각하기에 개인적으로 더욱 속상하다. 정말 속이 상하다. 서른여섯의 정유신은 썰렁했고, 쓸데없이 부지런했고, 어떨 땐 답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른여섯의 나보다 훨씬 용감했다. 그런데 지금 YTN에는 나만 있다. 선배는 돌아와도 여전히 같이 일하기 피곤할 거다. 하지만 나는 그 피곤함을 얼마든지 감수할 준비가 돼 있다. 단언컨대, ‘정피협’ 회원 명부는 계속 늘어나야 한다.

 

※ YTN 정유신 기자는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캠프 특보 출신인 구본홍 씨의 사장 부임에 반대하다 지난 2008년 10월 6일 해고됐습니다. 지난 2000년 입사한 정 기자는 해직 당시 <돌발영상>의 PD를 맡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뉴스타파에서 취재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국정원, 한국국적 대가로 위조 사주’, ‘국정원, 문서 위조 알고 있었다’ 등 국정원 간첩조작 사건과 관련해 굵직한 단독 취재물을 잇따라 보도했습니다. _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