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직언론인 이야기] 다시, 서로를 쓰다듬었던 1박 2일

<YTN ‘해직 5년 넘어서기 희망 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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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홍주예 기자

해직 5년. ‘5’라는 숫자가 떡하니 박힐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2008년 10월 6일, 선배 6명의 해고 소식이 전해진 날, 나는 선배들이 몇 달 정도 쉬다 오면 될 거라는 순진한 생각을 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아직도 회사 밖을 떠돌고 있다.

해직 사태 이듬해인 2009년부터 YTN에서 10월은 ‘해직 ◯년’ 행사의 달이다. 일일 호프부터 바자회, 체육대회까지 안 해본 게 없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무엇을 어떻게 꾸밀지 아이디어도 고갈된 상태다. 다시 어김없이 돌아온 10월, YTN 노동조합은 올해는 서울을 벗어나 ‘1박 2일 캠프’를 가 보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해직 1,826일째가 되는 2013년 10월 5일, 이런 행사는 제발 이번이 마지막이길 바라며 전북 완주 대둔산 자락으로 향했다.

“YTN ◯◯◯입니다”
해직기자들이 만든, 5년 만의 리포트

서울에서 2시간 반을 달려온 기세를 몰아 대둔산 등반까지 가뿐히 마치고, 펜션에 짐을 풀었다. 저녁부터 먹자는 아우성은 간단히 제압됐다. 배고픔에 굴복하기엔, 준비해 놓은 프로그램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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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순서는 해직자들이 마련했다. 각자 자신의 근황을 리포트에 담아 조합원들 앞에 풀어놓았다. 실로 5년 만에 듣는 오디오, 5년 만에 보는 스탠드업이었다. 반가웠다. 리포트 하나에 스탠드업을 무려 세 개나 넣은 선배도 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마이크를 잡고 싶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아렸다. 기사를 쓰는 대신 텃밭 농사를 짓고, 우리 회사 ENG 카메라 대신 대안언론 뉴스타파의 카메라를 든 선배들을 보며 저 사람들이 왜 저기서 저러고 있어야 하나 울컥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해직자들은 하나같이 담담하고 당당해 보였다. 비록 몸은 회사를 떠나 있어도 현재의 위치에서 나름의 행복을 찾으며 복직 이후를 차분히 준비하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오히려 하루하루 스스로 갉아먹으며 내일을 기약하지 못하는 건 나처럼 징계의 칼날을 이리저리 피해 회사 안에 남은 사람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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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직자 리포트에서 잠시 숙연해졌던 분위기는, 이어진 조별 ‘스피드 퀴즈’ 대결에서 완전히 반전됐다. 조별로 한 명이 낱말을 설명하면 나머지 조원들이 답을 맞히는 게임인데, 2008년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을 시작한 뒤 YTN 안팎에서 벌어진 사건과 주요 등장인물들이 제시어로 주어졌다. 예를 들면 “국무총리실의 방송사 사찰 보고서에서 배석규 사장에 대해 뭐라고 했지? 정부에 대한 무엇이 돋보인다고?” 이렇게 문제를 내면, “충성심!”하고 답하는 식이다. 우리의 5년이 고스란히 담긴 문제들인 만큼 대부분 술술 풀어나갔다. 워낙 수준이 높고 점잖은 YTN 기자들이라 이런 퀴즈 따위는 유치하다며 화를 낼까 봐 걱정도 했지만, 한 문제라도 더 맞히겠다며 달려드는 열기에 행사 준비 요원들은 뿌듯해졌다.
저녁상에 앉으려면 여전히 고개 하나가 남아 있었다. 소원을 적은 풍등을 하늘에 띄우는 시간. 산불을 낼 위험이 있어 풍등을 날려 보내지는 않고 끈에 묶어 잡아두기로 했는데 그마저도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풍등을 모두 모닥불 속에 넣어버리고 마침내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모두 고생했습니다. 장하고, 대견합니다”

밤은 깊어갔고, 까만 밤하늘엔 별이 반짝였다. 따뜻하게 타오르는 모닥불 앞에서 이야기와 노래는 끝이 없었다. 해직 선배들보다 먼저 언론계에 들어온 선배들부터, 해직 사태가 일어나고 한참 뒤에 입사한 후배들까지 한자리에 모였다. 나이로만 따지면 아버지와 딸에 가까울 사람들도 있었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함께 헤쳐 온 5년의 경험이 우리를 더 가까워지게 했고, 더 단련시켰으리라.

강산이 반쯤 변했을 세월을 거치며 우리는 나이를 먹었고, 삶은 조금씩 달라졌다. 그 와중에도 동료의 해직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바윗돌마냥 항시 우리의 가슴팍을 짓눌렀다. 그 바윗돌은 기쁠 때는 ‘내가 이렇게 웃어도 될까.’ 하며 표정을 관리하게 만들었고, 슬플 때는 상처를 잔뜩 헤집어 놓았다. 그러나 이제는 해직자와 ‘살아남은 자’ 모두에게 5년 동안 고생했다고 말하고 싶다. 버텨내 줘서 장하고 대견하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다.

YTN은 내년에 상암동으로 사옥을 옮긴다. 상암동 시대는 반드시 ‘복직자’ 6명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진짜 YTN’도 그때 가능할 것이다. ‘복직 기념’ 네 글자가 선명한 플래카드를 들고 다시 대둔산에 오를 날을 간절히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