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직언론인 이야기] 내일도 역시 오늘처럼 돌아와야 할 이유

32-1 해직언론인

32-2 제목

32-3 박성호

‘박성호’는 천생 기자다. 사회부 사건팀 캡-정치부 국회 취재반장-기획취재부 데스크-뉴스 앵커까지 거쳤지만, 이런 경력은 그의 전부가 아니었다. 뻔한 취재, 뻔한 기사, 뻔한 인터뷰를 체질적으로 싫어했던 그는, 자기 자신과 후배 기자들을 엄하고 보수적으로 훈련시켰다. 누구에게나 공평했지만 누구에게나 지독했다. 2006년 캡 시절 “부실 취재나 낙종의 책임을 전가하지 않겠다.”면서 자기 자신부터 막내 후배 기자까지, 집단으로 철야 잠복 취재(속칭 ‘하리꼬미’)를 하게 했다. 원성이 터져 나올 법했다. 하지만 대들 수 없었다. 그가 내세우는 원칙과 명분, 논리와 절차가 늘 분명했기 때문이다. 신중하고 냉철한 고민, 빠르고 정확한 판단을 중시하는 사람이어서, 휴일에도 자신을 혹사하곤 했다.

그만큼 일벌레였다. 2010년에는 연말 뉴스를 결산한다고 열흘이나 집에 안 들어가고 숙직실 생활을 했다. 2011년 1월 1일에는 특집 기사를 쓴다며 역시 회사에서 새해를 맞았다. 사건팀 캡과 국회 취재반장 시절에는 뒤도 안 돌아보고 후배들을 조련했지만(이라고 쓰고 ‘굴렸다’고 읽는다.) 그 경험을 다른 후배들과 공유하기 위해 매뉴얼도 여러 개 만들었다. 그나마 그런 작업은 휴가 때 주로 했다. 후배 기자들은 어느덧 형수님(박 선배의 부인)을 존경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는 회의주의자였다. MBC 이진숙 보도본부장은 2011년 홍보국장 시절 사보를 통해 “진보와 보수, 여당과 야당, 성장과 분배가 끊임없이 대결을 벌이는 시대에 앵커석에 앉은 박성호의 관점은 양쪽 진영 사이 어느 지점에 존재한다. ‘통념으로 하는 이야기에 맞장구를 잘 치지 않는’ 그의 시각 덕분이었는지 그는 결국 앵커석에 앉게 됐다. (중략) 필자는 그를 ‘인간에 대한 예의가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한다.”고 썼다. 그랬었다.

결정을 내릴 때는 원칙주의자였다. 그가 2011년 MBC 기자회장을 맡은 건 ‘운명’이었다. 이슈를 외면하고 중요 현안을 부실·왜곡 보도하는 MBC의 ‘뉴스 사고’事故가 발생할 때마다, 그는 서슴없이 보도 책임자들을 찾아갔다. 문제를 제기하고 항의했다. 그는 보도책임자들의 편도, 동료·후배 기자들의 편도 아니었다. 단지 팩트fact의 편이었다. ‘그러다 다친다.’는 협박도 받았지만, 욱하는 후배 기자도 있었지만, 박 선배는 보도 책임자들의 상식과 절차에 끝까지 호소했다. 그리고 그들의 책임까지 대신 지겠다며 결국 맨 앞에 섰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있는 사람’은 그렇게 해직기자가 되고 말았다. 만 3년이 지났다.

내가 만약 3년 전 박성호였다면? 우리는 술자리에서 이런 가정假定을 종종 한다. 오늘의 MBC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이렇게 답한다. 똑같이 기자회장을 맡았을 것이고, 같은 결정을 내렸을 것이고, 결국 같은 길을 걸었을 것이다.
박성호 선배 본인은? 특유의 ‘오밀조밀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답할 것이다.
“그럴까? 그럴 거야. 나도 가끔 생각해본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어땠을지. 음… 달라지는 건 없네. 하하. 바보인지도.”
선배가 왜 바보입니까. 따지면 또 이렇게 답할 것이다.
“그래. 도망가지 않은 사람 정도로 하자.”
도망가지 않은 사람. 박성호 선배는 이 순간에도 『방송기자』 다음 호 기사를 구상하며 머리를 쥐어짜고 있을 것이다. 그의 원래 자리는 아니지만, 방송기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매뉴얼, 공유할 만한 고민거리를 만들어 보겠다는 일념으로.

그는 망명 정부의 라디오 방송 같은 존재다. 숱한 MBC 사람들이 그의 귀환을 통해 인생이 정의正義나 합리合理와 무관하지 않다는 걸 확인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 자신’을 치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샤를르 드 골Charles de Gaulle은 영국 런던으로 넘어가 프랑스 망명 정부를 세웠다. BBC 라디오를 통해 대對 나치스 항쟁을 호소하는 방송을 했다. 프랑스인들을 향한 그의 클로징 멘트는 이런 식이었다.
“프랑스는, 혼자가 아닙니다! 내일도 역시 오늘처럼, 런던 라디오 방송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MBC 기자는, 혼자가 아니다. 내일도 역시 오늘처럼, 우리는 박성호를 기다릴 것이다.

 

1995년 MBC에 입사한 박성호 기자는 MBC 기자회장 겸 <뉴스투데이> 앵커로 일하다, 2012년 2월 제작거부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직됐습니다. MBC 경영진은 정직 6개월로 징계 수위를 변경했다가, 같은 해 5월 이른바 권재홍 보도본부장의 ‘허리우드 액션’ 사건을 계기로 박 기자를 다시 해직시켰습니다. 박 기자는 현재 방송기자연합회 편집위원장과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