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직언론인 이야기] 기다리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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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노종면

 

‘쫄면’은 1994년 9월 입사, 나는 1995년 5월 입사. (선배라는 호칭보다 ‘쫄면’이 훨씬 편하고 맞먹기도 좋다. 쫄면 본인도 이걸 은근히 즐긴다.) 쫄면이 입사 한 기수 선배인데, 정작 얼굴 제대로 마주 보고 일한 때는 2005년. 그 전까지 쫄면은 ‘돌발영상’ 초대 PD로 특유의 감각과 에너지를 뿜어대고 있었다. 그 해에는 창사 이래 사실상 첫, 전면 CI 작업이 의욕 있게 진행됐고 쫄면은 CI 팀에서 반쯤 미쳐(?) 구상하고 실현해 나갔다. (망가져 가는 YTN 보도를 보며, 당시 작업 결과였던 콘텐츠와 틀 모두 해체돼 마음 아프다.)

그 과정을 거쳐 탄생한 새 뉴스 팀에서 쫄면은 팀장 겸 앵커로, 난 진행 PD로 호흡을 맞췄다. 당시로써는 구글 지도를 입체 무빙으로 활용한 코너를 비롯해 두 시간 가까운 마라톤 뉴스를 파노라마로 이어간 실험이, 뇌 구조가 깔끔할 정도로 단순한 내겐 ‘신세계’였다. 쫄면은 부인하겠지만, 뉴스 진행 짬짬이 신경질을 냈다. 생각한 수준만큼 뉴스 진행이 안 될 때. 당시야 내가 그걸 알 게 뭔가. PD석 인터컴 스위치 잠시 꺼놓고 “쫄면, 우~씨…! 나중에 봐.”

쫄면은 단언컨대 ‘shy boy’
2008년 ‘낙하산’ 사태로 현덕수 당시 노조위원장이 단식하고 이어진 격동. ‘shy boy’ 쫄면이 나서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쫄면은 논리 정연하지만, 알고 보면 재미있게 얘기를 못 한다는 부담(?)과 낯선 곳에서의 쑥스러움을 가끔 토로했는데, 맞다. 강하고 바르지만, 오지랖까지 넓지는 않고 자주 썰렁하다.) 속내야 하루 골백번 썰물 밀물이 오갔을 테지만, 위기에도 쫄면의 ‘실험’은 새롭게 이어졌다. 유치장에 묶이고 조합원들에게 서신을 보내오고…. 하지만 난 쫄면을 면회할 용기가 없었다. 구치소에서 나오던 날, 겨우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당시 작은 힘이라도 돼야겠다는 생각은 있었나? 있었다 해도 뭘 하려 했던가?…. 낙하산 반대와 대량 징계의 엄혹한 나날에도, 난 알아들을 수 없는 발언을 하다 집회 분위기 얼리고 김밥 두 줄 세 줄 먹어치워, 다른 조합원을 굶기는 만행도 저질렀다. 늦은 시각까지 여럿이 함께 마시고 고민하다 헤어질 때에도, 머릿속이 백지 상태인 나는 날 밝으면 쫄면이 다시 져야 할 고민은 알 턱 없이 괜스레 지랄(?)하곤 했다. 그럴 때면 쫄면은 가끔 노래를 부르자고 하거나 찜질방을 가자고 했는데 난 단호히(?) 거부했다. 온갖 상념을 드러내 말하기보다는 ‘18번’으로 풀기가, 따뜻한 물이 주는 몇 시간의 안식이 당시 쫄면에겐 소박한 숨통이었는데… 미안했다.

그가 컴백하기 전까지 우리가 해야할 일
나도 그 일을 하게 될 줄은 꿈조차 안 꿨다. 부당 해직된 쫄면에 이어 보궐 집행부를 거치고 나서 나도 집행부 일원으로 일하게 됐다. 주변에선 힘든 시기이니 버티면 된다며 과분한 격려를 했지만, 난 그 2년여 동안에도 게으름을 못 벗었다. 해직 사태의 돌파구를 찾는 모색이 없었겠는가마는, 턱없이 아둔해 자책만 남는다.

5년 4개월 부당한 세월을 견딘 해직 동료 6명 또는 그 누굴 ‘위해서’ 뭔가 하는 게 아니다. ‘왜’ 처절히 싸웠고 이후 형극의 시간을 여전히 돌파하는 이유가 뭔지를 분명히 해야 했다. 쫄면을 포함한 그들은 독립 언론에서 또는 이런저런 현장에서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고, 다른 편에서는 언론 본연이 무너져 가는 엄연한 현실이 바로 이 길의 이유를 말해주고 있으니…. 나는 여기에 앉아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지, 분노할 일에 분노하고 할 말 하며 분투하고 있는지….

그리 안 한다면 쫄면이 돌아올 리 만무하고, 돌아온다 해도? 뭔가 하다 보면 뭐가 ‘되기 때문’이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하기 때문’임을 진작 알아야 했다. 그리하여 쫄면을 기다리지 않겠다. 대신, 컴백 전까지 ‘그것’을 만들어가 보자, 부족해도. 그럼에도, ‘쫄면’이 돌아와 무슨 프로그램 맡을지 상상하다 보면 슬그머니 기대도 피어오른다. 단! 나와 한 팀에선 말고.

족보에도 없는, 노종면 동생 김종욱

※ ‘돌발영상’을 성공시켰던 YTN 노종면 기자는 2008년 10월 6일 해고됐습니다. 이명박 정권 해직 언론인 1호인 노 기자는 2012년 대안언론 뉴스타파를 출범시킨데 이어, 현재는 미디어협동조합의 국민TV 개국 TF단장을 맡아 4월 1일 개국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_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