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직언론인 이야기] 그를 생각하며 나태함을 다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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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행 PD가 돌아왔다. 2009년 2월 MBC 노조위원장으로 교양국을 떠난 이후 5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우리는 머쓱해 하며 걸어 들어오는 그가 반가웠다. 여전히 ‘겨울왕국’같은 MBC에, 적어도 교양제작국 사무실엔 잠깐이나마 온기가 찼다. 그는 노조위원장 임기 후 뉴스타파로 자리를 옮겨 위원장 때보다 훨씬 더 바쁘게 시간을 보냈다. 그가 뉴스타파 PD로 활약하는 모습을 TV 뉴스와 신문 등을 통해 가끔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옆에는 해고자 최승호 PD도 같이 보였다.

우리는 5년 동안 다섯 번의 파업을 겪으면서 MBC를 지키려 노력했지만, 날이 갈수록 ‘비정상화’는 고착화됐다. 일하지 않은 사람이 상을 받았고 잘못하지 않은 사람이 징계를 받았다. 그래서 상을 받아도 자랑하지 않았고 징계를 받아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정상화’도 있긴 했는데 지난 1월, 두 건의 반가운 법원 판결이 있었다. 하나는 김재철 사장이 자행한 해고와 징계는 무효라는 판결이었고, 또 하나는 공정방송을 위한 MBC 파업이 정당했다며 노조의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는 판결이었다. 왜 우리가 생존권적인 조건을 포기하면서까지 파업을 했는지에 대한 정당성을 확인할 수 있어 반가웠다.

비록 1심 판결이었지만 조합원뿐 아니라 170일간의 파업 기간 동안 무임금의 상황을 지탱해 준 가족들이 특히 이 판결을 반겼다. MBC 가족들은 생활비를 위해 대출을 받고 적금을 깨가며 파업을 떠받쳐줬고, 어려움을 견뎌냈다. 그 해 12월 대통령 선거가 있던 날을 잊지 못한다. 내 아내는 통곡했다. 아마도 MBC에 오랜 겨울이 더 지속될지 모른다는 절망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세월을 견디면서 1심 판결을 보게 됐다. MBC 구성원들의 가족들이야말로 몸으로 세상을 떠받쳐 온 진정한 승리자일 것이다.

내가 아는 최승호 PD는 ‘시청률주의자’다. 해고자 최승호 PD가 MBC 노보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뉴스타파를 하면서 더 새롭게 느낀다. MBC의 시청률 1%, 그 의미를 버리고 포기하면 안 된다.” 더 많은 시청자와 교감하기 위해서 책임 있게 방송을 해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그는 시청률만을 위해 그저 편한 방송을 하지는 않는다. 주제가 정해지면 시청률이 잘 나오게 할 방법을 찾아 헤맨다. 그래서 그는 후배들도 꺼리는 ‘앰부시’(ambush interview: ‘매복’하듯 숨어 있다가 나타나서 질문하는 방식)를 하고 밤새워 자료를 찾고 취재원을 관리한다.

그는 평생 제작 현장에서 일하기를 원했다. 20년 차가 되고도 달리 잘할 수 있는 게 없는 나에게, 현장 PD로 정년을 맞는 것도 괜찮은 삶의 방식일 거라는 확신을 준 사람이 바로 최승호 PD였다. 2011년 김재철 사장이 윤길용을 교양국장으로 앉히고 <PD수첩> PD들을 내몬 적이 있었다. 이유는 1년 이상 <PD수첩>에 있었던 사람은 인사 대상이라는 것이었다. 전무후무한 이유였다. 특히 윤길용 국장은 최승호 PD에게 “수년간 <PD수첩>을 제작했기 때문에 쉬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최승호 PD는 정치적 목적으로 자신을 현장에서 배제하려는 처사에 눈물로 울분을 토했지만, 그가 좋아하던 <PD수첩>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몇 년째 멈춰 서 있다.

나는 언젠가 최승호 PD에 대한 한 줄 평을 써달라는 후배의 부탁을 받고 이런 표현을 한 적이 있다. “MBC 시사교양국의 정체성을 지금도 만들어 가고 있는 사람”… 그는 MBC에 있었을 때 더 높은 시청률을 원했고, 그만큼 더 많이 일했다. 해고된 뒤에도 현장을 누비고 있다. 그는 지금 뉴스타파에서 ‘일할 수 있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말한다. 최승호 PD를 회사 밖에서 가끔 만나지만 마치 MBC를 떠난 선배를 만나는 것 같아 마음이 쓰리다.

나는 몇 달 전부터 <불만제로>라는 프로그램을 맡고 있다. 파업 이후 몇 년의 시간을 보내고 난 뒤 현장에 복귀했다. 지금의 MBC는 낯설다. 하지만 최승호 PD처럼 평생을 현장에서 프로그램 만들면서 사는 게, ‘완장 차고 자리를 탐하는’ 것보다 가치 있는 삶이라는 내 생각을 관철하는 중이다. 나는 그를 생각하면서 가끔씩 스멀거리는 늙은 나태함을 다잡는다. 촬영하러 다니며 가끔 차창 밖을 본다. 차창을 열고 손을 내밀어 바람을 쐬어 본다. 지금 이 추위는 좀 누그러지는가. 그가 돌아오려면 또 얼마만큼의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가. 우리가 예전처럼 다시 모여 제대로 방송을 할 수 있는 날은 언제 올까. 돌아온 이근행 PD와 함께 최승호를 기다린다.

※‘황우석 신화의 의혹’, ‘검사와 스폰서’, ‘4대강 수심 6미터의 비밀’ 등으로 MBC <PD수첩>의 동의어처럼 여겨졌던 최승호 PD는 2012년 6월 20일 해고됐습니다. 지난해부터는 독립언론 뉴스타파의 앵커겸 PD를 맡아 ‘조세피난처의 한국인들’,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등을 통해 한국 탐사 저널리즘의 중심 역할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_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