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직언론인 이야기] 그가 돌아와야 할 99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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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형은 마니아죠. 형이 취미를 바꿔오는 걸 여러 차례 봤습니다. 음반, 오디오, 카메라, 자전거…. 그냥 좋아하지 않았죠. 더 좋은 것, 더 좋은 것을 찾아다니며 앰프를 바꾸고, 렌즈를 바꾸더군요. 적당히 대화에서 고개 끄덕일 정도로만 즐기는 저 같은 사람이 있다면 형은 다양한 주제의 대화에서 가장 하이엔드의 소재로 자리를 이끌어가는 사람입니다.

2. 좋은 건 자랑하고 나누고 싶어 합니다. 레이저디스크가 아직 시들지 않았던 시절, ‘사운드 죽이지 않냐.’며 이글스의 공연실황을 보여주거나, DSLR로 딸, 아들의 생동감 있는 표정을 심도 있게 찍은 사진을 보여줄 때는 목소리 톤도 조금 올라가고, 얼굴도 살짝 상기됩니다. 가장 박성제스러운 표정은 그때 나오는 것이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는 감탄사를 연발하고, 남들에게도 꼭 먹어보라고 추천하는 사람입니다. 형이 대단하다고 여기는 무언가가 있으면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고 권하는 편입니다. 달리 말하면 형은 좋은 게 있으면 함께 즐기기를 바라는 스타일입니다.

3. 추진력, 대단합니다. 마음먹은 일은 곧바로 해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죠. 눈치 보고 옆도 뒤도 잘 돌아보지 않습니다. 일단 저질러 놓고 봅니다. 해직기자가 된 뒤 형이 바로 시작한 것이 목공 일이었습니다. ‘세월 그냥 보내기 싫어서’ 작은 공방에서 사포질, 대패질, 기름칠을 배우기 시작해서 드릴로 구멍을 뚫고, 기계를 사용해서 나무의 곡면을 만들더니 형수 생일 선물로 아담하고 단아한 화장대를 완성했습니다. 앞서 말했듯 평소 오디오를 즐기던 형은 ‘나만의 스피커’를 갖고 싶어 했고, 한 주말이 지나자 연필로 쓱쓱 그린 디자인을 보여줬습니다. 예의 그 상기된 표정으로 말이죠.
추진력을 말하고 있었나요. 한 달도 안 돼 디자인 특허를 내고 ‘쿠르베’라는 그럴듯한 브랜드명을 짓고 뚝딱 법인까지 설립해 버렸습니다. 이곳저곳 광고도 하고, 인터뷰도 하고, 전시회도 열더군요. 한창 화제인 드라마에 협찬품으로 들어가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중이고요. 후배들은 우스개로 ‘사업이 너무 잘되면 복직 안 하는 거 아니냐.’며 우려 아닌 우려를 하기도 했습니다.

4. 아이디어가 참 많은 사람입니다. 뉴스투데이 팀장이 되자마자 이것저것 참 많이도 바꿨습니다. ‘와글와글 인터넷’, ‘이 시각 세계’, ‘조간신문 브리핑’, ‘연예뉴스’는 이때 기획하고 추진해서 당시 뉴스투데이의 시청률을 비약적으로 높여놨던 기억이 납니다. 이 포맷들은 다른 방송사에서도 벤치마킹을 했고, 5년 지난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형은 시청률 지상주의자입니다. ‘아무리 좋은 콘텐츠도 시청자들이 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편입니다. 뉴스의 공정성도, 단독취재도, 그 결과는 시청률로 이어지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는 거지요. 부원, 팀장, 부장으로 세 차례나 참여한 선거방송기획단에서도 이런 형의 장점은 곳곳에서 드러났습니다.

무엇보다 형은 뉴스를 잘 만들어서 전하고, 다양한 세상사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좋은 기자였습니다. 이른바 동종업계 선수들이 인정하는 실력 있는 기자였습니다. 기자의 덕목이 세상과 함께 바뀌었는지는 몰라도 이 기자다운 사람이 해직기자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듭니다.

시청률이 많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런저런 처방이 나옵니다. 사람이 없다며 한숨을 쉬기도 합니다. 꼭 돌아와야 합니다. 그가 돌아와야 할 이유는 99가지를 댈 수도 있습니다. 또 스피커 한 대 주문 들어왔다며 넌지시 자랑하는 형의 얼굴보다 ‘너 기사 이렇게밖에 못 쓰냐.’며 야단치는 형의 목소리가 더 듣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세월호 침몰사고 다음 날 아침, 기자 박성제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공유합니다.

 

선실 내부 영상 같은 거 얻으려고 생존자 괴롭히지 마라.
너희들은 기자이지 하이에나가 아니지 않더냐.

단독취재 했다고 자랑도 하지 마라.
이런 참담한 비극 앞에서 단독이 무슨 의미가 있더냐.

보험금 같은 얘기는 제발 좀 나중에 해라.
생사도 모르는 사람이 아직도 많지 않더냐.

속보경쟁 하지 말고 정확한 보도 경쟁을 해라.
잘 모르면 추정된다고 하지 말고 확인 안 됐다고 말해라.

마지막으로 뉴스 중간 타이틀에 음악 좀 넣지 마라.
이건 올림픽이 아니라 재난 방송이잖아.

                         – 이제는 시청자가 된 전직 방송기자가 후배들에게…

 

※ MBC 박성제 기자는 지난 2012년 6월 20일 해고됐습니다. 해직 당시 아침 종합뉴스인 <뉴스투데이>팀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해직기자 생활 2년을 앞둔 지금은 평소 음악에 관한 식견에 해직기간 습득한 목공 기술을 결합, 스피커 제작업체인 쿠르베를 설립해 운영 중입니다. _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