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 취재 후기] ‘좀비’가 쓰는 1박 3일 한미정상회담

[한미정상회담 취재 후기]
‘좀비’가 쓰는 1박 3일 한미정상회담

KBS 김지선 기자 (정치부)

문재인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열린 한·미 정상 단독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환담하고 있다.

한미정상회담이 끝나면 말 그대로 ‘좀비’ 상태가 된다. 잘 수 있을 때 잠깐이라도 잘 자둬야 가장 중요한 순간에 멀쩡한 정신으로 기사를 쓸 수 있다는 뼈아픈 교훈을 지난해 1박 4일 한미정상회담 때 얻었지만, 두 번째인 올해도 쉽지 않았다. 워싱턴 시차에 적응하기도 전에 내리자마자 다음날 아침 뉴스를 제작하고, 숙소에 누워서 말똥말똥한 눈을 억지로 감고 잠을 청해보면, 서울에서 카톡이 오거나 심지어 전화가 와서 잠이 깬다. (친절한 택배 아저씨인 경우도 있다.) 그렇게 뒤척이다보면 어느새 날이 밝아온다. 서울에선 밤이 깊어지지만, 워싱턴은 아침이라 한미 정상회담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이 되는 거다. 그러나 내 몸의 생체 리듬은 여전히 서울 시간에 맞춰져 있고, 잠은 야속하게도 가장 중요한 시간에, 본격적으로 쏟아진다.

“한 시간 뒤엔 무조건 출발해야 합니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의 브리핑이 끝난 시간은 한국 시간으로 새벽 4시 30분. 6시 아침 뉴스까지는 1시간 30분이 남았지만 기자단에게 주어진 시간은 딱 1시간이었다. 1박 3일 짧은 일정으로 왔기 때문에 1시간 안에 원고를 쓰고 프레스센터에서 철수해 곧바로 공항으로 이동해야 하는 상황.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재빨리 기사를 써야할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난 다시 몽롱해졌다. 3차 북미정상회담, 남북정상회담, 트럼프 대통령 한국 방문. 브리핑에서 나온 키워드들이 흐느적거리며 내 머릿속을 떠다녔고, 마음은 너무 급한데 원고는 빨리 써지지 않았다. 급하게 호텔 앞에서 온마이크를 잡고 뛰어 올라와 오디오를 읽는데 숨은 차고, 발음도 잘 안 돼 몇 번이나 다시 읽어야 했다. ‘가장 중요한 시간에, 가장 멀쩡한 정신을 유지하기’는 올해도 역시 실패로 돌아갔다.

내가 쓴 기사, 마음에 안 드는 건 다 마찬가지
이미 ‘좀비’ 상태가 된 나를 서울에서, 워싱턴에서, 최선을 다해 도와주신 선배들 덕분에 그래도 아침 뉴스 전엔 리포트 제작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잠이 쏟아질 땐 ”비행기만 타봐라.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그대로 쭉 자버릴거다” 하고 버텼는데, 막상 비행기에 타니 또 잠이 안 왔다. 왜 그랬을까. 기사를 그야말로 ‘던져놓고’ 왔다는 찝찝함 때문이었다. “이렇게 중요한 기사를 내가 제대로 쓰고 온 건가. 리포트에서 이런 맥락을 더 짚어주고, 이런 해설성 문장도 더 들어갔어야 했지않나, 시간 안배를 더 잘 했어야 하지 않나”. 스스로에 대한 자책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머리를 쥐어뜯기 직전까지 간 상황에서 내 푸념을 들어주던 타사 동료들의 말은 큰 위안이 됐다. “지금 나도 그래. 나도 기사 급하게 막 써놔서 너무 마음에 안 들고, 지금 우리 모두 다 찝찝해”.

1박 3일, 왕복 28시간 비행을 하며 워싱턴까지 간 건 현지에서 회담을 제대로 취재하고 더 생생하고 깊이 있는 기사를 쓰기 위해서인데, 취재진에겐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청와대는 국내 현안도 산적한 상황인 만큼 회담이 끝난 뒤 바로 귀국하기로 결정했다지만, 취재진 입장에선 “딱 한시간만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일정이었다.

“내년에 출입하는 기자들도 지금 우리랑 똑같이 ‘톱다운’, ‘비핵화 돌파구’ 이런 기사를 쓰고 있을지도 몰라”. 이제 좀 좁혀졌나 싶으면, 다시 제 갈 길 가겠다며 기 싸움을 하는 북미를 중재하는 청와대, 문 대통령에 대한 기사를 쓰다보면 가끔 기자들끼리 가끔 이런 악담(?) 섞인 농담도 하게 된다. 지금까지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엔 과연 잘될까, 하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의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또 우리가 쓰는 기사가 그 길에 보탬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만은 같다.

외할머니도 알 수 있는 ‘한반도 비핵화’
이런 말도 남기고 싶다. 70년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을 가는 만큼, 국민들도 힘을 보태달라고 하는 우리 정부가 쏟아내는 말들이 너무 어렵다. ‘빅딜’, ‘스몰딜’에 이어 ‘굿이너프딜’, ‘조기 수확’, ‘엔드 스테이트’ 까지. 저 용어를 듣고 한 번에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시청자, 독자들은 몇 명이나 될까. 아무리 외교가에선 보편적으로 쓰는 말이라도, 브리핑할 땐 좀 더 쉽게 설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 정부가 아무리 어렵게 설명해도 최대한 쉽게 풀어, 정확히 전달해야 하는 건 전적으로 기자들의 몫이다. 하루 종일 뉴스를 보며 손녀딸이 나오면 너무나 좋아하시는 우리 외할머니도, 한반도 비핵화가 뭔지, 그래서 우리 정부가 어떻게 북미를 중재해 한반도 평화를 만들겠다는 건지 알 수 있게 말이다. 그걸 위해서라도 가장 중요한 순간에, 다시는 ‘좀비’가 되지 않도록, 최대한 맑은 머리로 기사를 써야겠다고 다짐해본다. 결국, 체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