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여서 미안합니다_KBS 고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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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2 세월호

기자여서 미안합니다

KBS 고아름 기자(사회2부)

“보고 들은대로 보도해 주세요.”
‘유민이 아빠’ 김영오 씨가 기자들 앞에서 상의를 들어 올렸다. 앙상하게 뼈만 남은 모습에 기자들은 말이 없었고, 카메라 셔터 소리만 광화문 광장을 채웠다. 정말 단식을 하고 있느냐는 의혹에 대한 김 씨의 항변이었다. 너무 괴롭고 힘들다고, 밥 한 끼 먹는 것이 소원이라고 토로했다. 오늘 보고 들은 것을 꼭 보도해달라는 호소가 이어졌다.

농성장 근처에서는 또 다른 가족이 ‘특혜입학과 보상금’은 바라지 않는다고 쓴 피켓을 들고 있다. 뙤약볕에도, 비가 오는 날에도 밤낮으로 광장을 지킨다. 희생자 가족들은 특별법 제정을 통해 어떤 특혜도 바란 적이 없으며, 오직 철저한 진상 규명을 통해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외친다.

논쟁, 갈등만 조명하는 세월호 특별법 보도
4월 16일 사고 이후 넉 달. 세월호 참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진도 앞바다 사고 해역에서, 안산 병원의 장례식장, 이제는 광화문 광장이 세월호 사고의 현장이 됐다. 그 현장에서 ‘제대로 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유가족들은 한 달 넘게 단식농성을 벌였다. 시민단체와 종교계 인사, 시민, 영화인 등도 동조 단식에 참여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나.’라는 볼 멘 소리가 들린다. 매일 반복되는 기자회견과 집회를 취재하는 기자들 사이에서도 은근한 권태가 느껴진다. 인터넷 기사에 달린 댓글에서는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일부 보수단체 회원들은 단식 중인 가족들 눈앞에서 집회를 열며 폭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가족들도 불편한 시선을 알고 있다. 한 유가족은 답답한 듯 이런 말을 했다. “어쩔 때는 가슴이 꽉 막힌 것 같아서 소리도 지르고 험한 말도 하고 싶어요. 시작도 안 했는데 뭘 그만하라는 거냐고. 그런데 혹시라도 그 모습 보고 국민 한 명이라도 더 돌아설까 봐 참고 또 참아요.”

떠난 아이를 그리며 한 달 넘도록 거리를 지키는 아버지. ‘세월호 특별법의 실체’를 알리는 광장의 외침. 이 서글픈 장면의 배경에는 세월호 특별법 관련 보도를 제대로 하지 못한 기자들의 책임도 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특별법을 둘러싼 논쟁만 알고 있을 뿐 특별법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유가족들의 요구는 무엇인지 모른다. 기계적 중립이라는 환상 속에 논쟁, 갈등만 조명하는 방송 보도의 전형이 또 한 번 반복된 걸까. 진도에서, 또 안산에서 유가족들에게 실망과 분노만 안겨줬던 기자의 한 사람으로서 다시 좌절감을 준 것 같았다.

시작도 못 한 진상규명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세월호가 왜 가라앉았는지, 그 많은 희생자들은 왜 침몰하는 배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는지. 진실을 밝히는 작업은 여전히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숨진 유병언 말고도 이 엄청난 참사에 책임져야 할 사람은 여전히 많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이 작업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진상조사위원회에 관련자를 조사하고 자료를 확보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을 부여하고, 특별검사 추천에 유가족의 의견을 반영해달라는 것이 유가족들의 요구다. 이 요구가, 자녀 잃은 부모들이 길에서 한 달 넘게 목숨을 걸고 단식을 해야 할 만큼 무리한 것일까. 광장에서 하루하루 야위어가는 유민이 아빠를 보며 들었던 생각이다.

사고 이후 많은 사람들이 진도 팽목항과 안산 합동 분향소를 찾아 숨진 아이들을 위해 눈물을 흘렸다. ‘잊지 않을게.’, ‘어른이어서 미안해.’라고 쓴 노란 편지가 곳곳에서 나부꼈다. 기자들도 앳된 영정 앞에 꽃 한 송이 바치고 숨죽여 울었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함께 울어줄 사람이 가장 필요할 때일지도 모른다. “부디 우리 아이가 마지막 희생자가 되기를” 바란다던 유가족의 바람은 지켜져야 한다.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세월호 사고 수습의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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