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노트] 반성문

반성문

나도 그 사람을 취재했더랬다. 꽤 가까이서 취재한 편이었다. 2009년과 2010년에만 스무 번 가까이 식사도 했으니 다른 기자에 비하면 접촉 기회도 퍽 많았다. 그 때는 만나면 세종시 이전 문제를 어떻게 할 건지, 종편을 허가하는 미디어법에 어떤 입장인지, 대선 후보로서 갖고 있는 경제·복지·대북 정책의 골간은 무엇인지를 주로 물었다. 그의 ‘짧은 몇 마디’ 화법에 늘 허기를 느끼던 터였고, 그의 알쏭달쏭한 메시지를 또렷하게 파악해 알리는 게 임무라고 생각했었다. 이를 위해 문고리 3인방에 속하는, 지금은 구속된 사람과 나름의 핫라인을 구축해 배경 설명을 들었고, 이른바 친박이라고 불리는 주변 인사들을 상대로 보충 취재해 전체 윤곽과 디테일을 그렸다. 부족하긴 했지만 게을리 하진 않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난 가을 이후 TV조선과 한겨레, JTBC의 보도를 보면서 ‘그러려고 정치부 기자를 했나’라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래선지 남들 앞에서 그 사람과 그쪽 사람들에 대해 험구하는 게 내키지 않았다. 내가 그럴 자격이 있냐는 생각이 짓눌렀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 사람과 그들 무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 모든 신경을 집중시켰다. 물론 근접 취재의 특권을 갖는 정치부 기자로서 그 일 자체를 전적으로 쓸모없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나는 두 가지를 생각조차 않았다는 점을 자백한다.
첫째는 그들에게 금배지를 달아준 시민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 대해서는 어떤 경로로든 보충해 파악하려하지 않았다. 얼마 전 학회에서 만난 안수찬 한겨레21 편집장이 ‘선거를 취재하는 한국 언론은 후보자만 볼 뿐, 시민을 보지 않는다’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아마도 나는 정치부와 사회부를 구획하는 기준에 따라 ‘시민’에 관련된 모든 것은 사회부 기자의 소관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기자의 생각은 정치 뉴스 아이템을 잡을 때 그대로 반영된다.
둘째는 앞의 것과 연결되는데, 시민의 입장에서 질문을 던지려 하지 않았다. 기자의 입장에 충실한 질문은 진전된 기사를 쓰는데 골몰했다. 그래서 그 질문이 유도하는 목적지는 ‘어제와 다른 새로운’, ‘제목이 뽑힐만한’ 답변이었고, 질문 받는 그들도 의도를 익히 알기에 약속대련의 연속이었다. ‘한 말씀’ 더 듣고, 그에 대한 보충 설명을 구하고, 해석하려는 데는 열심이었지만, ‘시민이 왜 당신 말을 믿어야 하는가’라며 따져 묻고, 반문하고, 의심하는 질문에 열심이었던 기억은 없다. 나는 시민을 대신하지도 않고 취재원으로부터 독립적이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런 기자의 태도는 정치 뉴스의 방향과 톤에 그대로 반영된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 함몰되면서, 기자로서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잘못을 범한 셈이다. 다시 기자가 된다고 달라질 것이라는 자신은 없다. 이런 기자의 성찰이 의미를 가지려면 뉴스의 틀과 내용물, 뉴스 가치부터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 또 다시 ‘촛불 앞에 부끄러운 언론’이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박성호 본지 편집위원장 (MBC 해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