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노트] 혐오시대와 문화 불모지

[편집자노트]
혐오시대와 문화 불모지
송형국 본지 편집위원장 (KBS)

인류 역사에 정치와 경제가 있기에 앞서 예술이 있었습니다. 어떤 화가는 원하는 사냥감을 그림으로 남겼고, 어떤 음악가는 힘을 돋우기 위해 박수에 리듬을 실었으며, 누군가는 매력 있는 이성의 정보를 담아 이야기로 전했습니다. 예술은 늘 삶과 함께였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 이후의 것이 아니라 동시의 것이었습니다. 욕망을 드러내고자 시작됐을 예술은, 같은 이유에서 관찰을 필요로 했습니다. 관찰은 이 세계의 다채로운 측면을 알게 해줍니다. 그래서 잘 관찰하는 자는 진실에 한걸음 다가설 수 있었습니다. 그 대상이 나 자신이었을 때 관찰은 성찰이 됐습니다. 그 힘을 우리는 예술을 통해 누려왔습니다.

기자로서 우리는 얼마나 좋은 관찰자인지 생각해봅니다. 적지 않은 이들이 믿음을 진실이라 여기며 자신과 다른 것을 혐오하는 세상입니다. 혐오는 손쉬운 기삿거리입니다. 어떤 기사는 이를 객관적으로 전달한답시고 기계적 중립에 매달립니다. 그렇게 갈등을 재생산합니다. 관찰이라기보다 채집에 가까운 일부 보도는 인터넷 시대 이전에는 유효했을지 모르나 지금 이 시대에는 쓸모가 없어졌습니다. 갈등과 혐오, 이쪽 아니면 저쪽, 선악 구분이 선명한 범죄와 비리만을 쫓아다니다보니 입체적인 관찰 능력이 퇴행한 것 아닐까 의심되는 보도들이 요즘 부쩍 눈에 밟힙니다. 이런 보도가 문화의 자리를 대신할 때 혐오는 악순환합니다.

이번 호의 테마는 공공재로서 뉴스의 문화예술 보도 비중과 철학에 대한 질문입니다.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담당 인력, 내·외부의 냉정한 시선을 담아봤습니다. 예술의 가치가 충분히 보도되고 이를 통해 예술을 충분히 누리는 사회라면 지금처럼 혐오가 만연할지 생각해봅니다. 기자들이 스스로 쳐놓은 울타리에 갇혀 관찰하는 능력, 성찰하는 힘을 잃어가고 있지는 않은지도 걱정해봅니다. 방송뉴스는 갇힌 자들의 것이 아닌 국민 모두의 것입니다. 기형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문화예술의 초라한 보도 비중에 대해 공론의 장이 마련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