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된’ 지역: ‘사건사고’와 ‘날씨’의 세계_광주MBC 김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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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는 이슈를 선택한다. 사람들이 마땅히 알아야 할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골라낸다. 미디어에 의해 선택된 이슈들은 그 순간부터 더욱 중요한 일로 인식된다. 사람들은 뉴스에서 본 일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한다. 중요해서 선택되었는지, 선택되었기 때문에 중요한지는 무의미하다. 대중 사이에 의견이 오가기 시작하면 이슈는 어느새 중요하게 다뤄져야 마땅한 일로 변한다. 미디어의 의제 설정은 그래서 중요하다. ‘무엇에 대해 생각하게 할 것인가’를 정하는 이 기능이 ‘무엇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게 할 것인가’로 확장될 수밖에 없다는 점까지 고려해 본다면 더욱 그렇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디어가 지역에서 어떤 이슈들을 채택해 왔는지를 살펴본다면, 미디어 안에서 지역이 어떻게 재현(represent)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방송뉴스는 지역의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보여주지 않고 있는가를 실증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지난 2013년 1년 동안 KBS와 MBC, 두 공영방송사의 저녁 메인뉴스에 보도된 지역 기사 1,700건을 분석했다.

공영방송 저녁뉴스에 나타난 지역의 모습
p13 그림12013년 MBC <뉴스데스크>에 방송된 지역 뉴스 890건을 내용별로 나눠 보면, 지역 뉴스의 절반은 사건사고였다. 457건(51.3%)으로 전체의 절반을 약간 넘었고, 기획 뉴스가 145건(16.3%)으로 뒤를 이었다. 이어서 3~5위로 기록된 뉴스는 스케치 리포트 91건(10.2%), 날씨 관련 90건(10.1%), 레저 관련 47건(5.3%)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2013년 KBS <뉴스9>에 방송된 지역 뉴스 810건을 내용별로 나눠 보면, MBC보다는 비중이 낮긴 하지만 여전히 사건사고가 289건(35.7%)으로 가장 많았다. 기획 뉴스는 246건(30.4%)으로 그 비중이 적지 않았다. 뒤를 잇는 뉴스 유형은 MBC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후가 88건(10.9%), 스케치 47건(5.8%), 레저 31건(3.8%)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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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결과들을 다시 들여다보면, MBC의 경우 사건사고를 다룬 ‘사회부성’ 기사가 전체 지역 기사의 절반을 넘었다. 두 번째로 많은 유형인 기획 기사도 실은 ‘사회부성’ 아이템이 주를 이룬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체의 3분의 2가량이 사회 분야에 쏠렸다. KBS는 발생사건을 다룬 경우가 좀 더 적어 35%였지만 여전히 전체의 3분의 1가량이었다. 여기에 기획 뉴스 아이템을 더할 경우 마찬가지로 전체의 3분의 2가 사회 분야 기사로 채워지고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양사 모두 지역 기사의 10%가량을 날씨 관련 뉴스에 할애했다. 또 현상과 풍경을 보여주는 단순한 스케치 기사나, 지역 축제나 놀 거리에 관한 레저 관련 기사도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했다.

사건사고·날씨 뉴스 쏠림 뚜렷
그런데 문제는 평소 지역 기자들의 관심과 취재 활동이 특별히 날씨나 레저 분야 등에 국한되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방송뉴스를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문화, 과학 등으로 대분류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사건사고와 날씨로의 쏠림 현상은 지역 뉴스의 고정된 틀처럼 보인다.
이것이 던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한 마디로, 지역 뉴스는 사건사고 아니면 날씨라는 것이다. 방송뉴스는 그런 방식으로 지역을 소비한다. 흉악범이 사건을 저지르고, 난데없는 폭설이 쏟아져 사람들이 거동조차 못 해야 전국으로 방영될만한 지역 뉴스가 된다.
그렇다면 지역의 사건과 날씨가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뉴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전국으로 방송되는 지역 뉴스는 일반적으로 서울 보도국의 ‘데스킹’(기사의 수정 및 보완)을 다시 거쳐 큐시트에 배정된다. 그 과정을 통해 지역 기사는 ‘서울’의 시각으로 재편되고, 수정되며, 다듬어지고, 선별된다. 어떤 기사들은 지역성(locality) 때문에 보편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채택되지 않는다. 오히려 ‘서울 지역’에만 국한되는 제한된 지역성을 갖는 기사가 전국으로 곧잘 방송된다는 점과는 대조적이다.
오늘의 방송뉴스는 사람들에게 지역을 어떤 방식으로 인식시키고 있는가? 어쩌면 미디어 스스로 지역을 사건사고가 유난히 많이 일어나는, 서울과는 날씨가 다른, 종종 축제가 벌어지는, 저 먼 지역으로 타자화시키고 있는 건 아닐까? 뉴스가 지역의 사건사고에 집중하는 사이, 지역의 무엇이 보이지 않게 됐나? 지역의 정치와 경제, 생활과 문화는 어디로 사라졌나? 오늘날 시청자들이 지역에 대해 어떤 스테레오타입stereotype을 갖고 있다면, 방송뉴스는 그 스테레오타입을 주조해낸 주범이다. 이 혐의에서 우리 모두 자유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