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의 바다에서 기사를 낚아 올리다_뉴스타파 김경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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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취재의 종착역은 판결인 경우가 많다. 사건에 대한 해석과 판단을 하는 헌법기관인 법원의 판결은 객관적인 권위를 갖는다. 그래서 판결은 어떤 취재 소스보다도 믿을만하다(최근 예외적인 상황도 꽤 있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믿을 만하다). 게다가 판결문에는 검찰의 기소 내용 중 인정되는 부분과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이 각각 무엇인지 그리고 그 이유까지도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판결문처럼 한 편의 글로 사건 전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자료는 흔치 않다.
사건기자들은 관심 없는 판결문, 사건 정보의 보물창고
하지만 속보 경쟁과 휘발성 보도에 익숙한 기자들은 판결문에까지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다. 경찰이나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면 기사를 쓰고, 당사자가 소환되면 기사를 쓰고, 수사결과를 발표하면 기사를 쓴다. 유명인이 관계돼 있거나 여간 큰 사건이 아니면 수사발표 단계가 거의 기사의 마지막이다. ‘검찰, 원전 비리 00명 구속 기소’. 기사는 대개 이렇게 끝이 나고, 여론 재판도 종결된다. 이후 판결까지 신경 써 취재하는 기자는 드물다.
원전비리 수사의 경우 큰 사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수많은 파편적 사건들을 엮은 일종의 기획수사이기 때문에 더하다. 검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할 때는 수십 명이 구속되고 기소된 것처럼 보이지만 각각의 사건들은 서로 연관이 없는 개별 사건들이다. 판결 하나하나를 후속 취재하고 기사화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난해 원전묵시록을 기획하면서 마무리는 원전 비리 사건으로 맺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떠들썩하게 수사하고 기소는 했는데 어떻게 마무리됐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였다. 일단 관련 사건의 판결문을 모두 입수해 분석해보기로 했다.
판결문 확보 “어렵다, 어려워!”
앉아서 편하게 해보겠다고 일종의 법률 포털인 로앤비(www.lawnb.com)에서 검색을 해봤다. 먼저 ‘한국수력원자력’으로 검색했더니 겨우 57건이 나왔다. 이 중에 실제로 원전비리와 관련이 있는 판결은 일부에 불과했다. 가끔씩 구글링을 통해 판결문이 검색되기도 하지만 그건 순전히 ‘운빨’이다. 대법원 홈페이지에 가면 인터넷 열람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사건번호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더구나 2013년 이후 확정된 판결만 열람이 가능하다. 마지막 방법이 남았다. 서초동 대법원 도서관에 직접 가서 보는 방법이다. 대법원 특별열람실에 예약하고 가면 컴퓨터로 판결문을 검색해서 열람할 수 있다. 검색 기능도 잘 돼 있어서 찾기도 쉽다. 19-1
문제는 메모가 안 된다는 점이다. 판결문에는 개인정보가 많다는 이유로 메모를 금지하고 있다. 법원 직원들이 매의 눈으로 감시한다. 유일하게 메모가 가능한 정보는 사건번호다. 최근 3년(2012~2014) 동안 판결이 난 원전 관련 비리 사건을 검색해 사건번호를 적었다. 187개였다. 이 번호로 대법원 홈페이지에서 사본을 신청했다. 이렇게 판결문 187개를 손에 넣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사람 이름과 회사 이름이 판결문에서 모두 지워지고 알파벳으로 대체돼서 나왔다. 심지어 한국수력원자력도 A 회사라고 적혀 있었다. 판결문에 등장하는 인물이 너무 많아서 A, B, C, D… Z를 넘어서 AB, AC, AD… 까지 적혀있는 황당한 판결문도 많았다. 기사화된 사건들을 검색해서 A, B, C, D… 를 실명으로 바꾸는 작업을 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작업이라는 사실을 곧 깨달았다. 그래서 몇 가지 꼼수를 사용했다. 여기서는 밝히기 어려운 방법이니 양해를 바란다.
검색부터 A, B, C, D 빈 칸을 채우는 작업까지 두어 달 넘게 걸렸다. 이제 진짜 작업을 할 시간. 피고인들과 소속 기업을 엑셀로 리스트업 하고 직위, 혐의, 뇌물 액수와 대가 등 하나하나 컬럼을 채워나갔다. (이 대부분의 작업은 데이터팀에서 했다. 그들의 인내력에 경의를!)
판결문으로 ‘리베이트 비율’을 계산하다
그리고 엑셀로 작업한 데이터에서 의미 있는 숫자들을 추출해냈다. 원전비리로 유죄 판결을 받은 한수원 임직원은 57명, 말단 사원부터 사장까지 총망라돼 있었다. 19-2이들이 받은 뇌물은 판결문에 적시된 것만 45억 원이다. 비리에 연루된 기업은 89곳으로 이들이 2008년부터 2014년 초까지 한수원에서 수주한 계약은 4,679건이고, 계약 총액은 1조 9,485억 원이었다.
뇌물과 수주액의 인과관계가 뚜렷하게 적시된 12개의 판결문을 분석해보니 뇌물은 7억 원이었고 계약 금액은 200억 원이었다. 부품 200억 원어치를 납품하기 위해 현금 7억 원을 한수원 직원들에게 ‘먹였다’는 말이 된다. 이른바 리베이트 비율은 3.5%로 계산된다. 원전 업계에서 리베이트는 ‘기본 5%’라는 풍문이 그리 과장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데이터를 바탕으로 해서 다시 현장 취재를 했고, 그렇게 한 편의 판결문 리포트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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