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_부정청탁 금지법 이후 ④_현장보고 문화부_회원사 A기자

 

공연계, 부익부 빈익빈 우려 현실화
“공연 취재를 원하시는 기자님께 5만 원 이하의 입장권을 제공해 드리고 있습니다.” 요즘 공연 담당 기자들이 받는 보도 자료에 빠지지 않는 문구다. 5만 원이란 기준의 모호함 때문에 공연마다 희비가 엇갈린다. 유명 클래식이나 대중음악 콘서트, 뮤지컬 공연은 좋은 자리의 경우 표 가격이 10만 원, 20만 원을 넘는 게 예삿일이다. 연극, 발레, 오페라, 클래식 정기 공연 등은 5만 원 기준을 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비싼 공연을 기자들이 표를 제공받아 취재할 일은 적어도 없어졌다. 제 돈 주고 봐야 한다는 뜻이다. 마음이 급해진 공연계가 이런저런 꾀를 내보아도 뾰족한 답은 없는 상황. 실탄이 있는 공연기획사들은 아예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프레스콜 행사 때 하이라이트 장면만 시연하는 게 아니라 전 막을 공연하는 걸로 변화에 부응하고 있다. 하지만 그럴 능력이 없는 공연들은 그것마저 ‘넘사벽’. 김영란법 시행이 공연계 내부에서 부익부 빈익빈을 가중시킬 거란 우려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미술·출판·음악 담당기자들의 고민
공연뿐 아니라 미술 전시회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전시회는 문화예술 상품 가운데 상대적으로 부담이 없는 편에 속한다. 제아무리 비싼 전시회도 입장권 가격이 2만 원을 넘는 경우는 없다. 그런데 전시회 개막 전에 전시 작품을 미리 언론에 공개하는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문제가 생겼다. 취재기자, 촬영기자, 촬영보조 등 세 명의 입장권 가격을 합산하고, 전시회 도록을 한 권 제공받으면 5만 원을 넘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얼마 전 어느 방송기자가 이런 식으로 계산을 해서 5만 원을 넘는다는 이유로 취재 목적으로 제공받은 전시 도록을 해당 기관에 되돌려 보냈다고 했다. 주는 쪽에서도 부담이 됐는지 아예 도록 뒷면에 ‘증정 취재용’이란 딱지까지 붙여놓았다.
출판이나 음악을 담당하는 기자들의 고민도 적지 않다. 매주 출판사에서 홍보용으로 보내오는 신간 도서가 적게는 수십 권에서 많은 경우 100권을 넘는 경우도 있다. 그 많은 도서 역시 김영란법 적용 대상인가, 기자들이 한동안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요즘 책 가격은 보통 2만 원 선을 기준으로 보면 된다. 하지만 일반적인 단행본이 그렇다는 뜻이고, 전집류나 두꺼운 연구서, 전문서적 등은 5만 원을 넘는 경우도 있다. 한 출판사에서 신간도서 여러 권을 보내오는 경우는 또 어떤가. 이 경우 액수를 다 합산해야 하는 걸까. 음반 제작사 쪽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홍보용으로 언론에 제공하는 새 음반은 대개 ‘비매품’이란 딱지가 붙어 있다. 통상 CD 한 장 가격은 2만 원을 왔다 갔다 하는데, 취재용으로 제공되는 음반을 받아도 되는지, 그것도 여러 장일 경우에는 5만 원 기준으로 합산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촬영 후 다시 돌려줘야 하는 건지, 홍보 담당자와 머리를 맞대고 한참을 고민해야 했다.

밥값, 커피값, 주차비까지 예외 없어
어느 기관이든 취재를 가면 주차비도 내야 한다. 지금까지는 취재라는 공적 업무를 위한 방문 때는 해당 기관에서 주차비를 일부 또는 전부 제공했다. 그런데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에는 주차비 제공이 안 되는 상황이 됐다. 역시 기자가 직접 내야 하게 된 것이다. 한동안 이 주차비를 가지고도 현장에서 논란이 많았다. 그래서 아예 처음부터 두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취재진과 장비를 내려주고 아예 딴 데 가 있다가 오라’ 혹은 ‘그냥 속 편하게 우리 회사 돈으로 계산하자’
그래서 요즘은 기자가 홍보 담당자에게 대접을 하는 게 흔해졌다. 예전엔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풍경이다. 기관장끼리 만나는 점심 자리에서도 어김없이 밥값은 각자 계산. 영 어색하다. 최근에 어느 후배 기자에게 이런 얘기를 들었다. 대형 공연장 취재를 갔다가 시간이 없어서 가까운 데서 점심을 먹었더니 식당 밥값이 워낙 비싸서 각자 계산을 했는데도 영수증 받아들고 식은땀을 흘렸다고 했다. 멀리 나갈 수 없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했다. 취재 과정에서 이런 경우가 간혹 있다. 결국 취재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런저런 비용은 회사가 감당하게 됐다. 뒤가 켕긴다면 회사 돈으로 떳떳하게 공연 보고 전시회 보고 밥 먹으면 그만이다. 일부 언론사는 이미 기자들에게 그럴 목적으로 취재비를 상당 부분 늘려줬다고 한다. 하지만 그 역시 부익부 빈익빈. 형편이 안 좋은 언론사는 그 많은 비용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언론 취재는 좋든 싫든 돈이 드는 일이니까. 그걸 안 하려면 많은 취재를 포기해야 한다. 더 좋은 기사가 나올 여지는 줄었다.

언론-취재원 관계 다시 정립해야
어떻게든 자기 상품(뮤지컬, 클래식, 연극 등)을 미디어를 통해 널리 알리고 싶어 하는 홍보 담당자들은 아는 기자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만난다. 기사 부탁을 하는 것이다. 요즘 회사로 찾아오는 분들을 만날 때마다 가장 먼저 꺼내는 말이 돈 계산 문제다. “제가 사겠습니다.” 아니면 “깔끔하게 각자 계산하시죠.” 그들도 부담, 나도 부담이다. 아직 익숙해지지 않아서 그런 것이리라.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까.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일이 돼버린 건 여러모로 어색하고 불편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다시 설정해야하기 때문에 취재할 때마다 매번 취재 이외의 것들로 정력을 소모해야 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법의 취지에 맞춰 그간의 모든 관행을 바꿔나가는 수밖에. 다만 이 법의 시행이 문화예술계의 부익부 빈익빈을 가중시켜 애꿎은 피해자를 양산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