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_문제제기②_편집회의, 누구를 바라보는가?_KBS 유원중 기자

보도국 편집회의란?
오전 9시. KBS 메인뉴스인 9시 뉴스가 시작하기 꼭 12시간 전. 보도국장을 중심으로 취재와 편집, 스포츠, 영상 등 보도국의 모든 부장이 한자리에 모여 ‘편집회의’를 한다. 현장을 뛰고 있는 200명 남짓 취재기자들이 올린 뉴스 아이템을 9시 뉴스에 편집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결정하는 회의. 여기에서 낙방한 아이템들은 연기처럼 사라지기도 하고, 9시 뉴스가 아닌 나머지(?) 뉴스로 빠지게 된다.
기자 생활 10년 차 정도인 시경 캡이 하늘같아 보이는 초년병일 때부터 15년차 안팎의 고참 일선기자에 이르기까지 편집회의는 성역 같은 곳으로 여겨진다. 보도국의 국장과 부장들이 한자리에 모여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KBS 뉴스의 ‘하루’를 정하는 곳이 바로 편집회의기 때문이다. KBS 편집회의는 보도국장과 주간이란 이름의 취재·편집·국제담당 부국장, 그리고 나머지 모든 취재·편집·영상 등 부장, 그리고 기자협회장이 평기자 대표로 참여한다.

사회부의 경우 말단 기자가 현장에서 주워들은 몇 가지 정보를 1진 기자에게 보고하고 거기에 살을 부쳐 취재 계획서를 만든다. 이 가운데 어렵게 캡의 관문을 통과한 4-5개의 아이템이 차장과 부장 앞으로 간다. 그중에서 또 몇 개는 반려되기도 하고 한두 개는 추가되기도 해서 ‘사회부 취재 계획’이 완성된다. 이제야 보도국 편집회의 테이블에 올라갈 기회가 생긴 것이다.

하루 20여 개의 아이템으로 구성되는 9시 뉴스. 여러 취재 부서에서 올라온 취재 계획은 늘 뉴스 시간에 비해 많다. 따라서 취재부장은 자기 부서에서 올린 아이템을 최대한 ‘팔려고’ 노력하고 뉴스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편집부장은 좋은 아이템만 ‘사려는’ 장터가 선다. 장터의 총감독이자 심판관인 국장급들은 아이템은 많은데 쓸만한 게 없다고 타박을 하기도 하고, 전날 타사 뉴스에는 나갔는데 9시 뉴스에는 빠졌던 내용에 대한 추궁을 하기도 하면서 더 이야기되는 아이템을 만들어 오라고 채근을 한다. 기자 생활 20년을 넘긴 소위 언론계 ‘프로’들이 모인 가운데 어떤 아이템은 호평 속에 9시 뉴스의 주요 아이템으로 채택되기도 하고, 어떤 아이템은 아예 폐기되거나 또는 수정·보강 주문을 받는다. 부장이 대표 선수로 편집회의에 참석하지만 결국 아이템의 최초 발제자이자 제작 담당자가 돼야 하는 일선 기자들은 편집회의 속에서 능력을 인정받기도 하고, 또는 곰바우(무능력자)가 되기도 한다. 기사를 써서 먹고사는 기자들에겐 바로 이 편집회의가 천당과 지옥의 갈림길인 것이다.

9시 뉴스의 아이템이 결정되는 구조는 여기에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아침에 발제되지는 않았지만 낮 시간에 들어오는 출입처 기자들의 보고와 연합뉴스나 신문에서 보도된 새로운 아이템들은 오후 2시 30분에 열리는 오후 편집회의에서 추가되기도 하고, 더 급한 아이템들은 보도국장이나 편집주간에게 수시로 보고가 되면서 곧바로 9시 뉴스에 편집되기도 한다.

침묵하는 편집회의와 옥상옥
보도국 편집회의는 한마디로 보도국 전체가 뉴스거리가 될 만한 것들을 테이블에 올려놓은 뒤 고르고 합치고 나누고 또 어떤 것은 버리는, 즉 옥석을 가르는 작업을 거쳐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모든 언론사는 저마다 이런 시스템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 편집회의의 건강성은 뉴스의 경쟁력을 가르는 매우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다. 펄펄 뛰는 생선과 죽은 고기의 가격이 천양지차로 다른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이 편집회의가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일단은 매우 조용해졌다. 활발한 의견개진, 토론, 비판은 줄어들고 소위 ‘알 만한 사람들이 딱 분위기 보면 알아서 새겨들어’ 하는 식의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편집회의는 회의실 안에서 이뤄지지만 꽤 많은 인원이 참여하기 때문에 이 안에서 일어난 일은 곧 보도국 전체로 퍼져 나가기 마련이다. 주목할 만한 사건은 보도국을 넘어 회사 전체로 또 회사 밖으로도 얼마든지 알려질 수 있다. 회사 내 이념적 다양성이 존재하고 뉴스를 보는 가치와 철학이 서로 부딪히면서 편집회의의 발언은 점차 조심스러워지고 있다. 동병상련의 동지애처럼 다른 부서의 일을 힐난하려고 하지 않으려는 정서가 생겨나고 아이템의 내용에 대해 타 부서가 지나친 훈수(?)를 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는 분위기도 나타나고 있다. 꼭 할 얘기가 있으며 나중에 따로 하거나 계통을 밟아 보도국장 등 윗선으로 별도 보고하는 풍토도 만연해 있다. 편집회의에서는 이미 취재 계획서에 나와 있는 내용을 간략하게 읽어주는 취재부장의 발제와 편집부장들의 날 서지 않은 질문들이 일상화되어 가고 있다. 회의의 상당한 시간은 보도국장의 주문사항으로 채워지고 이런 보도국장의 훈수는 곧바로 아이템 내용에 추가되거나 삭제되는 명령처럼 인식돼 보도국 편집회의는 ‘상명하달’식으로 변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일수록 공개적인 회의에서는 발언을 삼가는 것이 좋다는 공감대가 생겨난 것이다. 정치부장은 민감한 주제일수록 매우 간단하게 얘기하거나 따로 보고하겠다는 식으로 말을 아낀다. 타사에서 보도됐지만 우리 뉴스에서는 빠진 ‘물먹은’ 기사라 하더라도 청와대나 정·재계 인물을 비판하는 뉴스에 대해서는 보도국장의 질책이 줄어들고 있다. 청와대에 대한 비판 기사가 언론이나 사회에 퍼져 있어도, 세월호 관련 뉴스가 발제가 되지 않거나, 노동자의 죽음이 SNS를 달구거나, 북한 뉴스가 너무 자극적이라는 외부의 비판이 일어도 편집회의 안에서는 침묵이 흐른다. 그저 시청률이 잘 나오면 회의 분위기가 다소 화기애애해지고 안 나오면 약간 무거울 때가 있을 뿐이다.

보도국 편집회의가 모처럼 활기에 넘칠 때도 있기는 하다. 태풍이나 폭우가 오거나, 좋은 영상이 잡힌 대형 화재, 세간의 주목을 끌고 있는 가십성 뉴스들, 해외에서 들어온 재난 등의 뉴스가 발제되면 너도나도 한마디씩 거들며 자신들의 과거 경험이나 아이디어를 쏟아 내기도 한다. 결국 사회적으로 민감한 얘기는 조용히, 민감하지 않은 사건사고 얘기는 활발하게, 뉴스에 대한 외부의 비판은 모른 척 넘어가려는 분위기가 역력해지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이른바 ‘축조회의’라고 불리는 편집회의 위의 또 다른 편집회의다. 이명박 정부 이후 새로 생긴 이 회의는 통상 오후 4-5시쯤 보도본부장 방에서 본부장과 국장, 부국장급들만 참여해 열리는 최종 편집회의인 것이다. 문제는 이 회의에서 발제된 아이템이 갑자기 빠지거나 별도의 다른 아이템이 갑자기 잡혀 일선 기자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집단지성’이 편집회의의 본질
수신료를 내는 국민들은 더 새로운 뉴스, 더 공정한 뉴스, 더 수준 높은 뉴스를 보고, 요구한 권리를 가진다. 물론 언론의 독립을 위해 편집권은 보도국의 책임자가 스스로 가지며 누구로부터도 부당한 간섭을 받지 않은 법적 권리를 가진다.
점차 화석화 되어가고 있는 편집회의의 문제는 뉴스 편집의 결정권이 공개적이고 다수의 사람이 모인 자리가 아닌 비공개되고 소수의 간부들이 모인 자리로 옮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공영방송 뉴스의 주인이 시청자, 국민이라는 말은 구호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요즘처럼 통신과 인터넷이 발달한 세상에 보도국의 모든 부장이 매일 두 차례씩 한 방에 모여 회의를 한다는 것은 매우 후진적인 시스템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 이유를 거슬러 올라가면 뉴스의 편집권을 일방적으로 행사하지 말고 집단지성을 통해 보다 투명하게 다양한 의견을 들어 행사하라는 것이 바로 ‘편집회의’의 본질인 것이다. 토론이 사라지고 상명하달식으로 흘러가는 공영방송의 뉴스 편집회의의 피해자는 결국 수신료를 낸 시청자인 것이다.

 


* 필자는 2010~2011년 1년간 KBS 기자협회장에 역임하며 보도국 편집회의에 참석했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KBS 보도국 편집회의에는 일선 기자들을 대표해 기자협회장이 참석한다. 방송법에 의해 만들어진 방송 편성규약에 근거한 것이다. 기자협회장은 평기자 신분이지만 부장급 이상이 참석하는 이 회의에서 뉴스 모니터 결과를 전하기도 하고, 일선 기자들의 애로나 건의사항을 전달하기도 한다. 기자협회장의 편집회의 참석이 가능해진 것은 2004년 개정된 방송법에 따라 KBS 방송편성규약이 제정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이후 보도국장이 바뀔 때마다 기자협회장의 편집회의 참석과 발언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보도국장은 방송 편성규약이 제때 개정이 안 됐기 때문에 그 효력을 상실했다거나 기자협회장이 회의에 참석할 수는 있지만 발언은 할 수 없는 참관인임을 주장하며 기자협회장이 편집회의에서 발언하는 것을 삼가길 권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