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시사보도 프로그램의 위축⑧_미국의 시사보도 프로그램은?_미국 콜로라도대학교 김헌식 교수

다양한 주제를 심층적으로 다루는 보도제작 프로그램은 방송의 꽃이지만 폭넓은 시청자 확보가 쉽지 않은 독특한 장르다. 보도제작 프로그램의 형식은 다양하지만 뉴스매거진newsmagazine이 대표적이다. 미국 방송에서 보도제작 프로그램은 1950년대 초부터 시작되었지만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치면서 흑인 인권문제와 베트남 전쟁 등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특히 워터게이트 사건을 계기로 언론의 탐사보도가 본격화되고 2분 내외의 TV리포트로 전달하기 힘든 심층분석 보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대중적 관심을 끌게 되었다. 여기에다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지상파 방송사들로 하여금 평일과 주말 프라임타임대에 공익성을 띤 프로그램을 방영하도록 명문화하자 방송사들이 제작비가 저렴한 보도제작 프로그램을 경쟁적으로 편성한 것이 기폭제가 되었다.

형식 다양… 상업성·공익성·조화가 관건
상업방송이 주도하는 미국 방송계에서 보도제작 프로그램은 시청률과 광고라는 변수에 크게 좌우된다. 방송사들은 다양한 형식의 뉴스매거진을 만들어 방영하지만 시청률이 낮아 광고 수주가 저조한 프로그램은 내용이나 형식을 끊임없이 바꾸는 시행착오를 겪거나 그래도 시청률이 안 오르면 조기종영된다. 물론 상업성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뉴스 프로그램으로서의 공익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현재 미국 지상파 방송의 간판급 보도제작 프로그램은 ABC 방송 <20/20>, CBS방송 <60 Minutes>, NBC방송 <Dateline NBC>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이들은 꾸준한 시청률과 상업성 그리고 공익성을 함께 인정받은 장수 프로그램들이다. 물론 여기에 24시간 뉴스채널인 CNN과 MSNBC, 폭스뉴스까지 더하면 시사보도 프로그램의 수는 더욱더 늘어난다.

 

가장 큰 위협은 명예훼손과 손해배상 소송
한국에선 정치권력의 탄압으로 방송 프로그램의 존폐가 결정된다는 얘기가 곧잘 들려오지만 미국 방송의 보도제작 환경은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베트남 전쟁이나 이라크 전쟁 관련 보도로 정권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 어려움에 처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사법부가 언론 보도의 자유를 옹호하거나 방송사 경영진이 기자해고 요구에 맞서 든든한 방패막이 되었다. 따라서 좀더 현실적인 위협은 정치적 압력보다는 시청률이 부진하거나 광고 수주가 저조해 프로그램 폐지가 거론될 때다. 가장 심각한 위협을 꼽자면 보도 내용을 둘러싼 법정 공방이 오고 갈 때다. 보도제작 프로그램에서 다뤄진 비리나 파문의 당사자나 단체가 방송사를 상대로 수백만 또는 수천만 달러를 청구하는 명예훼손이나 손해배상 소송이 잇따르기 때문이다. ABC방송과 Food Lion 식료품 체인과의 소송이나 NBC방송과 제너럴 모터스와의 소송, CBS방송과 미 국방부와의 진실공방 등은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기나긴 법정투쟁 끝에 방송사가 승소하더라도 상처가 남아 후속 탐사보도나 또 다른 비리고발 프로그램을 제작할 동력을 잃게 된다. 결국 방송사 경영진들은 개인이나 공공기관의 부조리를 파헤치는 시사보도 프로그램을 장려하거나 지원하기를 점차 꺼리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몇 년간 정통 뉴스 포맷에서 벗어나 여행, 음식, 패션 등 생활 잡기를 다루는 뉴스와 연예를 뒤섞은 프로그램이 범람하는 것도 시사보도 프로그램을 위축시키는 또 다른 요인이다.

베테랑 기자가 오랫동안 맡을 때 성공 가능성 커
미국 방송의 보도제작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사례를 꼽으라면 단연 CBS방송의 <60 Minutes>다. 1968년 9월 첫 방영된 뒤 48년째 이어져온 장수 프로그램으로 2년 뒤면 방송 50주년을 맞는다. 전술한 대로 상업방송에서 뉴스 프로그램은 공익성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다. 그런데 <60 Minutes>는 방송된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시청률이 오르고 광고가 늘면서 방송사의 효자 프로그램이 되었다. 탄탄한 자료조사를 토대로 잘 만들어진 10분 내지 15분짜리 심층물로 구성된 한 시간짜리 뉴스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을 확인한 계기였다. 이 프로그램을 이끄는 방송기자들은 최소한 10~40년 경력의 베테랑들로 뉴스 PD와 협업체제로 일한다. 미국 방송계의 간판스타 다이앤 소여, 댄 래더도 이 프로그램에서 오랫동안 일했고 CNN방송 앵커 앤더슨 쿠퍼도 때때로 출연해 심층보도를 떠맡는다. 지난 5월 타계한 몰리 세이퍼Morley Safer 기자는 이 프로그램에서만 무려 46년간 일했다. 보도제작 프로그램을 경력관리를 위해 잠시 머무는 기착지로 여기는 우리 방송기자들의 현실과는 차이가 크다. 무엇보다 오랜 세월 동안 보도제작 프로그램의 가치를 인정하고 일요일 저녁 황금시간대에 계속 방영해온 방송사의 배려와 결단이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