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시사보도 프로그램의 위축⑦_‘위험사회’의 ‘안전망’이 _서울여자대학교 김미라 교수

“삶과 죽음의 경계까지 허무는 것이 ‘알 권리’이고, 그것이 곧 ‘살 권리’다. 알 권리는 언론의 자유 수준이 아니라, ‘살 길’이라는 것”
지난 5월 언론인권센터 주최로 열린 강연에서 김중배 전 MBC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PD저널, 2016. 5.18. 참조). 암울했던 군부 통치 시대에 현역 기자로서 부도덕한 권력에 맞섰고, 민주화 이후 언론사 대표를 지냈던 그의 촌철살인은 새삼 고사 직전에 놓인 방송 저널리즘의 위기를 돌아보게 한다. 5년 전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불거졌을 때 부도덕한 기업과 정부의 책임을 따지는 방송보도가 있었다면 266명의 사망자를 낸 참혹한 피해가, 유가족의 고통이 조금은 덜어지지 않았을까. 3년 전 성수역 스크린도어 정비사고 이후 이른바 ‘메피아’들의 갑질과 하청문제를 집요하게 파헤치는 방송보도가 있었다면 구의역 19세 청년 노동자의 죽음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언론은 사회 시스템 작동 감시하는 안전망
복잡다단한 ‘위험사회(risk society)’에서 언론은 국민의 생명과 삶을 위협하는 부조리한 권력과 환경을 감시하고 경고함으로써 사회 시스템을 건전하게 유지하게 하는 중요한 ‘안전망’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에 이어 보수정권이 재집권을 하면서 이 역할을 해내야 할 탐사보도가 직격탄을 맞으며 안전망이 무너지고 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선봉에 서야 할 공영방송의 탐사보도조차 특정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눈치를 보는 방송사 임원진들에 의해 속속 폐지되고, 편성 역시 시청자가 접하기 어려운 시간대로 밀려나는 형국이다. 게다가 이에 맞서 언론의 책무를 다하고자 하는 기자들이 부당한 인사 조치에 해고까지 당하면서 ‘자기검열(self censorship)’이 강화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정권과 권력 감시하는 탐사보도 위축
탐사보도의 위축과 위기는 근본적으로 공영방송조차 정권 유지와 홍보의 도구로 생각하는 집권세력과 이에 야합해 자리보전에만 급급한 방송사 경영진들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 명의 경영진이 유수의 공영방송사를 얼마나 빨리 회생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 수 있는지 MBC를 보면 그 폐해를 알 수 있다. 이른바 ‘백종문 녹취록’을 통해 드러난 것처럼 정당한 이유 없이 정권과 자신들에게 불편한 기자와 PD들을 해고하고, 무더기 소송으로 재갈을 물리는 전횡을 일삼아 왔다. 국민의 수신료를 받아 운영되는 KBS 역시 다르지 않다. 전임 보도국장의 폭로로 길환영 전 사장과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보도 개입과 방송법 위반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고대영 현 사장은 최근 효율성과 수익성을 앞세운 조직 개편을 단행, 보도본부 산하의 시사제작국을 팀 수준으로 격하시킴으로써 탐사보도가 설 자리를 근원적으로 축소했다.

탐사보도, 공공성 잣대로 평가해야
경영 효율성을 내세우는 이런 조치는 미디어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일견 불가피하고 타당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공공성과 공정성을 담보해야 하는 뉴스나 탐사보도에까지 이런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한마디로 방송사의 경영 성과를 시청률과 광고수익으로만 가늠하는 무지의 소치다. 제대로 된 탐사보도는 사회적 의제를 제시하며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고, 그 사회적 영향력이 채널 경쟁력을 견인한다. 따라서 특정 권력의 낙하산 인사들이 내세우는 경제적 효율성은 정권과 자신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껄끄러운 프로그램들을 정리하는 수순에서 들고 나오는 전형적인 레퍼토리에 불과하다.

방송 통제 막을 지배 구조 개혁 시급
이처럼 부조리한 구조 속에서 실종된 국민의 알 권리와 탐사보도의 복원을 기자 개개인의 양심과 소명감에 기대는 것은 순진무구한 발상이다. 결국 이러한 난맥상을 풀 수 있는 열쇠는 특정 정치세력의 방송 통제와 방송사 사장 선임을 좌지우지하는 전횡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도록 공영방송의 지배 구조부터 개선하는 것이다. 여야의 나눠 먹기식 이사 추천과 여당 편중의 인적 구성, 현재의 사장 선출 구조로는 방송의 공정성도 고사 직전의 탐사보도도 살려낼 수 없다. 여소 야대가 된 20대 국회에서는 야당이 공조하여 공영방송의 지배 구조 개선과 해직언론인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 사안을 다룰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여전히 여당 몫이고, 미방위원장을 지킨 것이 원 구성 협상의 성과라고 자평한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의원총회 발언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언론사에 등급을 매겨 광고와 소송으로 회유와 겁박을 해왔던 정부가 대선을 불과 1년여 앞둔 시점에서 정치권력이 과연 언론 장악의 달콤함을 포기할 수 있을지 ‘합리적 의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임을 내세우기에 앞서 언론자유지수가 조사대상 180개국 중 70위(국경 없는 기자회 조사 발표)라는 우리의 민낯을 부끄러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