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시사보도 프로그램의 위축④_시사보도 프로그램의 내우외환_SBS 이대욱 기자

‘시사보도 프로그램 길들이기’
정확히 5년 전인 2011년 6월, 4대강 공사가 절정에 이를 무렵이었다. 취재를 위해 차를 타고 경기도 남한강부터 충청, 전라, 경상도의 강변을 따라 주행 샷을 찍다 보면 굴착기와 트럭의 굉음에 신음하는 4대강과 지류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목격할 수 있었다.

그즈음 장마가 왔다.
준설작업으로 허약해진 강바닥에 발을 딛고 있던 교각이 무너졌다. 자연 스스로 유지하는 균형의 축이 흔들리면서 곳곳에서 강기슭이 붕괴됐다. SBS 시사보도 프로그램 <현장21>을 통해 ‘4대강에 장마 오니..’라는 제목의 방송이 나갔다.

방송 한 달 뒤 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호출 명령을 받았다. 당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이었던 박만 전 검사는 이렇게 조언했다.

“기자가 공정하게 기사를 써야죠.”

그 순간 경북 달성에서 우연히 만난 한 공사업체 사장의 말이 생각났다. 그는 낙동강 지류에서 준설공사를 담당하고 있었다.
“비 오고 시간 지나면 다시 쌓이는 모래를 쓸데없이 왜 파는지 모르겠어요. 나야 돈 받으니깐 그냥 공사하는 거지.. 허허”

그 업체 사장의 비웃음과 박만 위원장의 얼굴이 겹쳐지면서 “당신이나 공정하게 심의하시죠.”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끝내 내뱉지 못했다. 그는 지상파의 목줄을 죌 수 있는 방송통신심의위 위원장이었다. 게다가 위원회에 출석하기에 앞서 회사의 전화까지 받은 터였다.

“요즘 4대강 비판 기사는 줄줄이 경고를 받고 있습니다. 가서 괜히 싸우다 일이 커집니다.”

방송통신위원장의 지나친 관심 덕분인지 나의 방송은 ‘방송 심의에 관한 규정 제14조(객관성)’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주의’ 조치를 받았다.

제작 자율성과 심층성은 어떻게 저하됐나?
기자 생활 13년 중에 4년 6개월가량 시사보도 프로그램에서 일을 했다. 그동안 SBS 시사보도 프로그램은 두 번 가량 큰 변화를 겪었다. (개편과 별개로 시간대 변경은 지나치게 자주 있었기 때문에 시간대 변경의 추이는 생략한다.)

이름과 포맷 변경의 요구는 언제나 위에서 내려왔다.

15년 동안 SBS 대표 시사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은 <뉴스추적>이 문을 닫은 것도, ‘연예병사’, ‘출판사 사재기’ 등의 굵직한 아이템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현장21>이 3년 이란 짧은 수명을 다한 것도 윗분들의 요구였다.

그러나 개편과 변화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보도제작 프로그램의 방향과 본질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별로 없었다. 예능 피디가 ‘시청자를 휘어잡도록 재밌게 만들자’라는 명확한 인식을 기본 전제로 프로그램에 접근하듯이 시사보도 프로그램의 화두 또한 단순하다.
“성역 없이, 심층적으로”

그 단순한 원칙을 기반으로 해야 시사프로그램의 정체성에 힘이 생긴다. 고발, 문화, 휴먼 등의 성역 없는 주제들이 심층성을 통해 단단하게 굳어지면서 시청률의 의미도 각별해진다. 그러나 SBS 시사보도 프로그램 개편 과정에서 제작 자율성은 점점 퇴색했다.

<뉴스추적>에서 <현장21>로 개편된 직후 상황을 예로 들어 보자.
<뉴스추적> 시절 보도제작부는 ‘보도제작국’에 속해 있었다. ‘보도국’과는 별도로 움직이는 국이었다. 때문에 의사결정은 비교적 신속했다. (주제 선정의 자율성 문제는 별개로 생각하자) 취재기자는 국장, 부장과 간단한 토론을 통해 아이템을 확정하고 취재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조직개편 과정에서 ‘보도제작국’이 축소돼 보도국에 편입되면서 아이템을 확정하는 단계가 두 배로 늘게 됐다.


4명의 입맛에 맞춰 아이템을 오케이 받는 건 기자에겐 지독한 스트레스를 주는 과정이었다.

“요즘 시청률이 잘 안 나오는데 좀 트렌디한 아이템을 해야 하지 않나”
“이 아이템은 지나치게 사건사고 느낌이야..”
“에이.. 좀 부담스러운 아이템이네”
“이건 좀 뒤처진 뉴스 같은데.. 새로운 것을 해”

게다가 보도제작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사람이 있는 경우 설득의 과정은 더욱 험난해진다. 3주 혹은 4주 만에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는 환경에서 발제만 하다 1-2주가 훌쩍 지나가기도 한다. 살아있는 권력을 향해 칼날을 겨누는 아이템을 발제하는 경우엔 설득하는 과정에서 만신창이가 되기도 한다. 결국 방송 일주일 남겨 놓고 자포자기 상태로 “그냥 총을 쏘세요. 원하는 걸 만들어 드릴게요.”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시간에 쫓겨 원하지 않는 아이템을 만드는 일상에서 취재 기자는 몸과 마음이 지쳐 의욕을 잃고, 이는 프로그램에 알게 모르게 녹아난다. 프로그램 위기론이 대두되고, 시간대 변경과 개편의 목소리가 나온다. 점차 보도국 구성원들의 관심도 떨어진다.

“시사보도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을 가져달라.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듣는 말이 있었다.

“기자들이 그곳에 지원하지 않아. 기자들이 관심이 없어.”

‘닭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라는 힘 빠지는 토론으로 이어질까 그냥 입을 다물게 된다.

가능성을 이야기 한다면..
기자들의 희망 부서가 여전히 정치부와 경제부에 쏠리고 있지만 그 경향성이 점차 달라지고 있는 점은 분명하다. 데일리 뉴스의 한계가 명확히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그 탈출구로서 시사보도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은 조금씩 커지고 있다. 최근 더욱 강조되고 있는 데이터 저널리즘을 발현시키기 위한 공간으로 시사보도 프로그램에 틀은 더없이 유용하다.

게다가 뉴미디어와의 유기적 접목으로 프로그램의 영향력은 다양하게 확장될 수 있다. 잘 짜인 스토리텔링은 뉴미디어를 통해 여러 갈래로 재생산 되고, 편집과정에서 잘려나가면 영원히 아카이브에서 썩게 됐을 영상들도 언제든지 부활의 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 필요한 건 “성역 없이, 심층적으로”라는 자양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