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⑤ 미국의 다양한 재교육 제도_이재경 교수(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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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교육 체제가 가장 잘 갖춰진 나라는 미국이다. ‘수정헌법 제1조’ 같이 저널리즘을 헌법으로 보호하는 나라답게 미국은 이미 100여 년 동안 다양한 기자 교육 제도를 발전시켜왔다. 1908년 무렵 미주리, 위스콘신 대학에 저널리즘 교과 과정이 정규 프로그램으로 도입되고, 1912년 컬럼비아 대학에 저널리즘 스쿨이 설립되면서 저널리즘 교육의 제도화가 시작됐다. 당시 뉴욕 월드를 발행하며 신문 재벌로 군림하던 조셉 퓰리처는 거금을 쾌척하고 컬럼비아 대학에 저널리즘 스쿨 설립을 부탁한다. 현장 기자들 사이에서 기자에게는 대학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는 의견도 많았다. 그러나 퓰리처는 저널리즘 스쿨 설립 안을 힘 있게 밀어붙였고, 100년 후 컬럼비아 저널리즘 스쿨은 수십 명의 퓰리처상 수상자를 배출하며, 미국 저널리즘과 기자들의 지적 수준을 이끌어가는 교육기관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굳혔다. 기자 재교육 프로그램들은 이러한 대학 교과과정의 설치를 토대로 확산되기 시작한다.

① 대학·장학재단 프로그램

현재 실시되는 미국의 기자 재교육 프로그램은 크게 네 가지 종류로 나뉜다. 가장 광범위하게 실시되는 프로그램은 펠로우쉽 과정들로, 전국적으로 줄잡아 100여 개가 존재한다. 한국에 가장 잘 알려진 니먼 펠로우쉽Nieman Fellowship 또는 나이트 펠로우쉽Knight Fellowship 등은 대체로 자금을 지원하는 재단과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대학의 협력구조로 진행된다. 예를 들면 니먼은 하버드 대학과, 그리고 나이트 펠로우쉽은 서부에 있는 스탠포드 대학과 함께 교육 과정을 운영한다. 이 두 펠로우쉽이나 미시건 대학에 설치된 미시건 펠로우쉽 등은 특별한 주제 영역 없이 탁월한 기자를 선발해 해당 대학에서 자유롭게 1년 정도를 자기 주도형으로 공부하도록 지원한다. 안식년적인 요소가 가미된 연수 프로그램으로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컬럼비아 대학에 설치된 나이트-베이지호트Knight-Bagehot 펠로우쉽은 분야가 비즈니스 저널리즘으로 특화돼 있다. 경제 기자들의 지식과 현장 이해력을 강화시키려는 프로그램이다. 컬럼비아에는 이밖에 미술 기자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있다. MIT에는 당연히 과학 기자를 위한 사이언스 저널리즘 펠로우쉽이 설치돼 있다. 첨단 과학을 대표하는 학자들의 수업과 세미나를 참관하며 과학 기술 분야의 취재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오하이오 주립대에는 지방 정부(local government)취재 기법을 가르쳐주는 연수 프로그램이 있고, 남 캘리포니아 대학에는 남미 지역의 취재 역량을 키워주는 펠로우쉽이 설치돼 운용되고 있다. 이러한 펠로우쉽들은 앞서 설명했듯이 모두 외부 재단에서 기금을 설치해 대학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그리고 대다수 재단은 나이트, 가넷, 니먼 등 언론 사업으로 돈을 번 기업들이 기자들의 역량 강화를 위해 설립했다.

② 연구기관 실무교육

기자 연수의 두 번째 유형은 주로 글쓰기, 취재윤리, 또는 탐사보도기법 등 현장 기자들이 실무적 차원에서 필요로 하는 기능을 강화시키기 위한 단기 교육 과정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플로리다에 있는 포인터 연구소The Poynter Institute나 아메리칸 프레스 인스티튜트American Press Institute등이 운영하며 중견기자들의 실무 역량을 강화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하버드 대학의 니먼 연구소Nieman Lab는 매년 내러티브 기사 워크숍을 열어 새로운 서사체 기사쓰기 기법을 보급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③ 기자 단체별 노하우 공유

기자 연수의 세 번째 유형은 탐사보도 기자회(IRE)나 컴퓨터 활용 보도 기자회(NICAR) 같은 전문기자 협회가 실시하는 교육 과정이다. 이들 협회는 매년 연차 총회와 홈페이지 운영 등을 통해 새롭게 개발된 취재 기법이나 보도 도구 등을 회원들과 공유한다.

④ 언론학 교수로의 전직 지원

기자 교육 제도의 마지막 유형은 기자에서 저널리즘 교수로 직업 전환을 원하는 사람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숫자가 많지는 않지만 컬럼비아 대학과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등에는 가네트 재단 등이 기금을 설치해, 해마다 2~3명 정도의 중견기자를 선발하고 박사과정 공부에 들어가는 비용을 전액 지원한다. 저널리즘 스쿨에서 학생을 잘 가르치려면, 사회 과학적 지식의 연마도 중요하지만 다년간에 걸친 현장 경험이 꼭 필요하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이라 볼 수 있다.

미국에는 이밖에도 정부가 주도해 미국 기자들이 해외 기자들과 교류하도록 지원하는 제퍼슨 펠로우쉽, 의회가 어떻게 작동하는 지를 현장에서 배울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콩그레셔널 펠로우쉽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있고, 의료재단이 지원하는 카이저 의학기자 펠로우쉽과 구글 등 인터넷 회사들이 지원하는 교육 프로그램 등도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새로운 디자인 필요한 한국의 기자 재교육

이러한 미국 현실에 비추어보면, 한국 언론의 상황은 매우 척박하다. 우선 기자들의 교육을 지원하는 재단 가운데 언론 사업을 모태로 하는 곳이 지극히 제한적이다. SBS 문화재단과 MBC를 운영하는 방송문화진흥회 정도가 있을 뿐이다. 나머지 한국언론진흥재단이나 삼성언론재단, LG 상남언론재단 등은 정부 산하 기관이거나 재벌 기업이 출연한 재단들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의 신문 재벌들은 기자들의 역량 강화를 위해 전혀 기금을 내놓지 않는다는 뜻이다. 더구나 제공되는 기금이 정부나 재벌 기업들로부터만 나오는 현실은 연수 이후 수혜를 받은 기자들이 독립성에 제약을 받을 가능성을 걱정하게 하는 요소도 있다.

한국의 기자 재교육 제도는 늦었지만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을 필요로 한다. 노령화에 따른 정년 연장은 더 시급하게 기자제도의 개혁을 요구한다. 이미 우리 사회 각 분야는 경제의 선진화 과정을 거치며 대부분 전문가 중심의 조직으로 탈바꿈했다. 정부 각 분야가 그렇고, 대기업 인력 운용도 전문성과 유연성을 키워드로 변신 중이다.

기자들이 활동하는 언론계가 정치 영역과 함께 가장 낙후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현업 기자 조직들과 학계가 머리를 맞대고, 임기응변식 대안이 아니라 미래 한국 기자들의 역량을 획기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실천 가능한 중장기 대책을 연구해야 한다. 이 대책에는 신입 기자를 양성하는 저널리즘 스쿨의 설립에서부터 중견기자들의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는 다양한 펠로우쉽, 그리고 퇴직 기자들의 사회 활동에 도움이 되는 제도적 기반에 대한 고민까지가 포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