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③ 매뉴얼 대신 구전동화로 배운다_MBC 남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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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후회하는 일 중 하나는 초등학교(사실은 국민학교) 시절 피아노 학원을 땡땡이친 일이다. 그때 어머니 말씀을 듣고 꾹 참고 다녔다면, 지금 적어도 클래식 곡 하나는 연주할 수 있었을 테고, 아마 대중가요 연주도 손쉽게 가능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음에 드는 여성이 나타났을 때 ‘어떤 고백을 할까?’ 고민을 좀 덜 해도 됐을 것이고, 그러면 지금 총각이 아닐 수도 있었던 것이다.

통계학 수업과 형사소송법

그보다는 덜 후회스럽지만, 최근의 그 순간은 선거방송으로 잠시 파견됐을 때 찾아왔다. ‘95% 신뢰도에 표본오차는 얼마’하는 식의 여론조사를 살펴보다 지난 2012년 미국 대선 때 50개 주의 선거 결과를 정확히 예측한 ‘네이트 실버’Nate Silver라는 사람의 기사를 읽게 됐다. 표본은 추출이 잘 됐을 때, 현실을 좀 더 정확히 설명한다. 실버는 여론조사에 따라 특정 정치 성향이 과소 혹은 과대평가되는 경향을 제거하기 위해 여러 여론조사 결과를 통합해 수정하는 고유의 모델을 만들었다. 그리고 뉴욕타임스는 그를 고정 섹션으로 모셔갔다. 그런데 나는 분명 10여 년 전 대학 시절 통계학 수업에서 들었을, 즉 그 이후에는 들어본 적이 없었을, 가설 검정의 의미를 떠올리기 위해 끙끙대고 있었다. 빅 데이터 시대에 말이다.

문득 책장을 바라보다 아래 칸 한구석에 아무렇게나 꽂혀있는 『형사소송법』 수험서가 눈에 띄었다. 용의자와 피의자를 구분 못 하고 입건이 무슨 말인지 헤매던 수습기자를 가엾게 여긴 선배가 강권한 책이다. 물론 사주지는 않고 사라고 지시를 했다. 말 잘 듣는 것이 중요한 덕목이던 그때의 막내는 선배가 내용을 확인해 볼까 두려워 밑줄까지 쳐가며 읽었었다. 첫 가르침이라 기억이 상대적으로 또렷한 걸까. 아니면 그 이후에는 인상 깊은 교육이 없었던 것일까. 기자 사회의 가르침에 이렇게 활자가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구전동화

‘쓰레기통을 뒤져라, 길목을 지켜야 한다, 중요한 부서는 어느 곳이다.’ 선배들의 거대한 노하우는 구전동화나 설화처럼 느껴졌다. 등기부 등본을 뒤져보라는 말에 등기소까지 간 적도 있었는데, 인터넷으로도 발급이 된다는 걸 알고 허탈해진 후에는 ‘도대체 이 등본이 하는 말이 무엇인가?’라는 수수께끼가 펼쳐졌다. 한 번은 통계자료를 찾기 위해 통계청과 한국은행에 전화를 걸었다. 이 번호에서 저 번호로 넘어가길 여러 차례, 돌아온 답변은 허탈했다. “ECOS1) 모르세요?” 전화를 걸고 기다리는 시간의 10분의 1이면 일목요연하게, 원하는 그 이상의 숫자가 모니터에 펼쳐지는 곳이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 통계청의 자료를 한 페이지씩 넘길 때마다 미간을 찌푸리지 않거나 ‘한숨 쉬지 않는’ 여유가 생기지는 않았다. ECOS와 KOSIS2)라는 숫자의 바다는 원양어선을 타고 나가는 것만큼 어렵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지 20년이 다 되어 가는데, 나는 보도국 안에 정보공개청구 매뉴얼이 있는지 궁금해할 겨를이 없다. 동계 올림픽 때는 쇼트트랙과 피겨에서, 올림픽 때는 수영에서, 월드컵과 WBC에서는 축구와 야구에서 전문가인 척을 해야 하는데, 트리플 러츠와 트리플 루프의 차이를 급하게 배워야 할 땐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몬티홀 딜레마

통계학에 나오는 몬티홀Monty Hall 딜레마를 떠올려 본다. 세 개의 문이 있는데, 어떤 문인지는 모르지만 그 중 두 개의 문 뒤에는 염소가 한 마리씩, 나머지 한 곳에는 최고급 스포츠카가 있다. 목표는 스포츠카. 세 문 중 하나를 고른다. 이제 사회자는 선택받지 않은 두 개의 문 중 염소가 있는 곳의 문을 열어준다. 이제 문은 두 개 남았다. 내가 고른 문과 사회자가 남겨놓은 문. 한 쪽은 염소, 한 쪽은 스포츠카. 여기서 원래 선택했던 문을 바꾸는 것이 유리한가. 아니면 그대로 있는 것이 유리한가. 답은 문을 바꾸는 것이다. 스포츠카를 탈 확률이 2배 높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처음 찍은 답을 바꾸면 틀리더라.’는 설화가 내려오고 있는 것 아닐까. 역시 문이 세 개 있고 그 뒤에는 잡고 싶은 팩트가 숨어있다. 일단 해오던 대로 문 하나를 골라봤다. 여기서 다른 문 중 한 곳이 비어있다는 것을 열어서 보여주고, 문을 바꿀 기회를 주는 사회자를 나는 만날 수 있을까? 아니면 몰라보고 지나쳤을까? 재교육은 이 사회자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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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ecos.bok.or.kr
2) 국가통계포털 www.kosi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