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② 이렇게 바꿔보자-진짜 기자가 되기 전, ‘잠깐 멈춰서기’_SBS 이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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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는 10여 년 전 나의 수습기자 시절 교육의 풍경은 대략 이런 모습이다.

새벽부터 사건 현장을 정신없이 돌다가 오후 6시, 시간에 맞춰 부랴부랴 회사로 복귀한다. 동기들의 얼굴엔 고단한 하루를 버텨낸 흔적들이 역력하다. 몇몇은 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담당하는 라인(권역)에 사건·사고가 터졌거나, 긴박한 취재 거리가 있어 현장에 남았기 때문이다. 야근자도 초저녁부터 취재를 나가는 일이 많아 교육에 참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교육생이 여기저기 빠진 어수선한 상태로 교육은 시작되곤 한다. 강의는 <사건·사고 스트레이트 기사 작성법>, <리포트 기사 작성법>, <오디오 교육>, <자막 작성 요령>, <틀리기 쉬운 용어>, <CG 의뢰 요령>, <인터뷰 기법>, <탐사보도론>, <중계차/생방송 출연 요령> 같은 실무 위주로 이뤄진다. 바이스캡을 비롯한 담당 강사가 정해져 있지만 사정에 따라 바뀌기도 하고, 큰 일이 터지면 강사도, 교육생도 모두 현장으로 달려간다. 애초 짜놨던 커리큘럼이 충실히 지켜지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수요자 입장에서 볼 때 만족도가 높을 수 없는 구조이지만 선배들을 탓하지 않는다. 매일 긴박하게 뉴스를 만들어야 하는 사정을 뻔히 알기 때문이다.

10년이 지났고, 나는 수습기자들에게 교육을 제공하는 입장이 됐다. 수습 교육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기에, 조금은 다른 교육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이 결심이 교육을 변화시켰을까? 수습들은 과연 만족했을까? 당시 교육을 받았던 몇몇 후배들에게 솔직한 답변을 부탁했는데, 진짜 솔직한 답변이 돌아왔다(^^;;). 내가 수습 때 느꼈던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지났는데…. 특히 IT·미디어 분야에서의 변화는 빨랐지만, 교육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수습들은 여전히 탈진한 몸을 이끌고 교육에 참여한다. 일부는 코앞에 닥친 취재 때문에 아예 교육에서 ‘열외’된다. 빼먹었다고 보충교육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알아서 눈치껏 해결해야 한다. 교육은 시스템이 아니라 개별 기자들의 개인기에 의존하는 식이다. 어떤 강의는 탁월하지만, 어떤 강의는 부실하다. 도제식으로 교육이 이뤄지다 보니 가끔 강압적이고,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도 있다. 뉴스라는 현실 앞에 교육은 언제나 ‘하면 좋지만’, ‘형편에 맞게’, ‘눈치껏’ 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이고 어떤 대안이 있을까?

1. 보도국 합류 前 철저한 ‘분리’가 필요하다

보도국에 속한 상태로 교육이 진행되면 어쩔 수 없이 당일 사건·사고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교육을 맡은 기자나 교육을 받는 수습기자 모두 당일 뉴스를 위해 현장으로 투입될 가능성이 늘 있다. 설령 사회부장이나 데스크가 교육에 확고한 의지로 ‘어떤 일이 있어도 교육은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방침을 갖고 있을지라도, 수습기자들은 보도국 공간에 있는 한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안정적인 교육은 쉽지 않다.
‘분리’가 가장 좋은 방법이다. 보도국에 합류하기 전 일정한 기간을 철저히 분리된 상태에서 집중적으로 교육하는 게 효율적일 것 같다. 기자협회나 방송기자연합회 등 직능 단체나, 대학의 저널리즘 스쿨에 일정 기간 위탁해 체계적, 집중적 교육을 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2. ‘저널리즘’ 교육이 필요하다

미디어 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이제 누구나 기자를 자처할 수 있는 시대다. 그렇다면 언론사에 소속돼 월급 받으며 일하는 기자와 그렇지 않은 기자들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진짜 기자’와 ‘가짜 기자’로 나눌 수도 없는 상황에서 언론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높은 전문성과 책임성, 투명성, 윤리의식으로 구별될 수밖에 없고, 그렇기에 교육과 훈련이 더욱 중요하다.
특히 뉴스에 대한 기본적인 관점을 갖도록 해주는 ‘저널리즘 교육’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수습기자 상당수는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지 못했을 것이다. 언론정보학과,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일부 기자들은 조금 낫겠지만, 그 중 상당수는 저널리즘을 충분히 공부하지 않고 졸업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대학들의 커리큘럼 대부분은 저널리즘보다 커뮤니케이션 위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입사 초기에 저널리즘 교육을 통해 좋은 기사란 무엇인지, 언론의 자유는 무엇인지, 공정하고 정확한 뉴스가 사회에 꼭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저널리스트에게 필요한 윤리는 무엇이며 왜 중요한지를 제대로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3. ‘기자’보다 ‘시청자’를 먼저 만나게 하자

취업난이 극심한 요즘 수습기자들 대부분은 엄청난 경쟁을 뚫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을 것이다. 그러나 취업의 기쁨도 잠시. 처음 경찰서에 배치된 기자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지금껏 달려온 것보다 훨씬 더 숨 가쁜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주로 1진 선배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면서 뉴스를 공급하는 제작자의 입장으로 첫 6개월을 보낸다.
본격적인 뉴스의 공급자가 되기 전에, 잠깐의 시간이라도 시청자를 여유 있게 만나는 기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케팅 기법 가운데 ‘30명 관찰법’이라는 게 있다. 수학 이론에 의하면 표본의 수가 최소 30개가 되면 정규분포의 특성을 보인다고 한다. 이를 소비자 관찰에 적용하면 30명의 의견만 제대로 조사하면 소비자들의 결핍과 욕구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수습기자들에게 일정 기간 자유 시간을 주고, 다양한 특성을 가진 시청자 30명을 심층 인터뷰하도록 시키는 것이다. 시청자들은 어떤 뉴스를 기대하는지, 해당 언론사의 뉴스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 뉴스를 좋아하는 점은 무엇이고, 불만은 무엇인지, 앞으로의 뉴스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철저하게 조사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30명의 의견을 충실하게 반영한 리포트를 발표하도록 한다. 곧 현장에 투입될 수습기자 입장에서는 내가 어떤 뉴스를 만들어야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고, 보도국은 새로운 시각을 수혈할 수 있을 것이다.

4. 방송기자도 결국 ‘필자’writer가 돼야 한다

기자의 미래에 대한 비관론이 우세하다. 1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은 더더욱 ‘좋은 직장 놔두고 왜 하필 기자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큰 꿈을 품고 어렵게 기자 세계에 발을 디딘 새내기 기자들에겐 참 듣기 싫은 말일 것 같다.
이에 대해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교육도 필요할 것이다. 지식도 중요하고, 기술도 중요하고, 자본도 중요한 시기다. 하지만 앞으로 더 중요한 것은 경험의 가치, 체험의 가치, 생각의 가치가 될 것이다. 세상 어느 직업이 방송기자보다 더 많이 직접 사람을 만나고, 직접 현장에 서는 경험을 할까? 하루하루 축적되는 경험과 느낌들, 귀중한 자료들을 1분 30초 리포트로 제작한 후 그냥 쓰레기통에 버린다면 방송기자만큼 허무한 직업도 없을 것이다. 저널리즘이 정착한 유럽과 미국에서는 그 자체가 ‘경험 덩어리’인 기자들의 대중적인 글쓰기가 출판업계의 한 축이 된 지 오래다. 기자가 한 언론사에 속한 조직원인 동시에 자신이 취재 현장에서 배우고, 경험하고, 느낀 것을 책과 인터넷을 통해 시청자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독립된 필자(writer)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멋진 범선을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배 만드는 사람에게 수평선이 펼쳐진 드넓은 바다를 보여주고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좋은 뉴스’라는 멋진 범선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가르쳤을까? 높은 망루에 올라 넓고 푸른 바다를 보여주는 대신, 나무 조각을 어떻게 구하고, 어떻게 자르고, 어떻게 망치질하는지 가르치는 데만 몰두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