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①] 대통령 탄핵:언론은 어떻게 ‘공범’이 됐나?_국정농단 사태_SBS 심석태 국장 (뉴미디어부)

상상을 초월하는 국정농단이 세상에 드러난 결정적인 계기가 강아지 때문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얘기도 있지만, 그래도 큰 물줄기를 만드는 데서 언론이 한 역할을 과소평가할 필요는 없다. 이번처럼 모든 언론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온 힘을 다해 달려간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한겨레와 TV조선 등이 물꼬를 텄고, JTBC가 태블릿PC 문건을 보도하면서 둑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모든 언론이 경쟁적으로 보도에 나서면서 민심의 폭포수가 쏟아졌다.
진보, 보수의 성향을 넘어 모든 언론이 일치된 논조로 권력의 치부를 파헤치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그 주변을 떠받치던 ‘콘크리트 지지층’에도 균열이 갔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기는 하지만, 온 세대와 계층을 넘어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나서고, 검찰이 수사에 나서고 탄핵 소추에 이르게 된 데는 언론의 역할이 컸다. 이번 사태의 전개 과정에서 사람들이 언론에 비교적 후한 점수를 주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취재진이 촛불집회 현장에서 내쫓기는 처지에 몰리지는 않았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선거보도 바뀌지 않으면, ‘잘못’ 반복될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이 권력 감시와 검증에 처절하게 실패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누가 좀 더 낫고 모자란 수준을 넘어, 우리 언론 전체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자유를 보장해야 하는 기본적인 이유라고 떠들어온 본질적인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 1998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섰을 때부터, 정치인 박근혜에 대한 ‘철저한 검증’은 존재하지 않았다. 유권자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한다는 인식 자체가 없었다. ‘박정희에 대한 향수’와 함께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조작된 이미지만 강요됐다. 일상적인 접촉과 소통이 단절된 것은 오히려 신비주의로 미화됐다. 언론의 적극적인 협조와 배려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근혜와 그 주변 세력이 현 사태의 주연이라면 조연은 언론이다.

돌이켜보면 지금과 같은 사태를 막을 기회는 여러 차례 있었다. 선거를 앞두고 각종 토론을 이리저리 회피하며 검증을 피할 때, 언론이라도 직접 검증에 나섰어야 했다. 스스로 진영 논리에 빠져 대리전을 벌일 것이 아니라, 토론 회피를 선거 전략으로 활용하지 못하도록 원칙을 지켰어야 했다. 다시 말하지만, 언론의 제대로 된 검증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선거라는 제도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언론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선거를 앞두고, 유권자에게 후보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선거는 그저 화려한 이벤트로 그려졌다. 우리가 선거 보도를 이전 같은 방법으로 계속한다면 이런 잘못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역설적으로, 이번 사태에서 우리는 이런 진리를 다시 확인했다.

감시·검증의 기회는 많았다
박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기회는 있었다. 세월호 참사 7시간 만에 공개 석상에 나타난 박 대통령이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발견하기가 그렇게 힘든가요?” 같은 엉뚱한 말을 했을 때, 국정 최고 책임자의 평일 일과시간 행적에 대한 질문에 ‘여성 대통령의 사생활’ 운운했을 때, 청와대 문고리 3인방에 대한 폭로가 터져 나왔을 때, 언론이 정파적 입장을 넘어 이번처럼 취재 역량을 투입했다면 국정 농단의 진상은 훨씬 일찍 세상에 드러났을 것이다.
태블릿PC가 공개된 뒤, 이렇게 총력을 다해 대통령과 그 주변을 취재해서 보도한 언론은, 왜 앞선 여러 기회들을 놓칠 수밖에 없었을까? 우리는 그동안 왜 언론이 대통령에 대한 감시와 검증에 실패했는지, 그 단순한 이유를 또한 잘 알고 있다. 언론이 권력을, 일반 취재원을 대할 때처럼, 제대로 취재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권력이 강할수록 더 역량을 집중해서 취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혹시라도 밉보일까 봐 몸을 사렸다. 사실 우리는 박 대통령에 대한 검증과 감시에만 실패한 것이 아니라 그 이전의 대통령과 주요 정치 권력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길을 걸었다.
모든 사람의 책임은 아무의 책임도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현 사태의 조연이 되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그래야 잘못된 과거로부터 단절할 수 있고, 조금 더 좋은 언론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권력과 그 주변에 대해 원칙적인 자세를 포기하는 것이 어떤 명분과 과정을 거쳐 용납되었는지, 분명히 되짚어보아야 한다. 언론으로서의 기본적 책임을 저버리는 행위가 더러는 정치 분야 취재의 어쩔 수 없는 속성으로 치부되기도 했고 더러는 언론사 차원의 이익을 위한 불가피한 충정이라는 조직 논리로 포장되기도 했다. 취재는 사실상의 거래 행위가 됐고, 개인적 영달을 위한 수단이 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의 유난스러운 일탈이 아니었으면, 이런 일은 관행 운운하며 계속 유지되었을 것이다.

언론 공통의 원칙과 실천 기준 마련해야
나는 이번에 많은 언론인들이 느낀 좌절감, 낭패감, 죄책감이 지금 권력 핵심에 대한 검증과 비판 보도의 홍수로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나기든 장맛비든, 비는 그치게 되어 있다. 지금은 목소리를 내지 못하지만, 지금의 언론 보도에 불편한 마음을 감추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그래서 우리 언론인들이 꼭 서둘러야 할 일이 있다. 서로의 정치적 지향점이나 주된 관심 분야가 다르더라도, 적어도 ‘언론’, ‘언론인’이라고 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원칙을 분명히 하는 일이다. 그런 원칙이 일상적인 보도 활동 과정에서 지켜질 수 있도록, 분명한 절차적, 방법론적 실천 기준을 세워야 한다. 기본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우리는 계속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