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란 이름] ‘특종’하는 관우가 못될 바에야


특종하는 관우가 못될 바에야 ‘1mm씩 전진하는 애벌레처럼


착하고 좋은 기자라는 평가 보다는 투박하더라도 필요한 사람이었다는 뒷담화를 기대하며


 


SBS CNBC 위정호 기자


 


 




기자 일을 하면서 뭐가 가장 좋았는지를 물으신다면 저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을 꼽겠습니다. 특히 분야를 막론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만날 때면 생각의 깊이에 무릎을 치곤 합니다. 성공의 정의는 성공한 사람 숫자만큼 많겠지만 성공을 하기 위한 요건들은 어느 정도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들은 대체적으로 자신이 하는 일에 열정을 갖고, 항상 노력하며,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반성했습니다. 물론 건강관리는 기본입니다. 너무 도덕 교과서 같은 발언인가요?


 


성공한 사람들의 가슴은 뜨거웠습니다. 월급쟁이로 일을 하든 자기 간판을 걸고 사업을 하든 주인의식을 갖고 임합니다. 사실 위인전기에나 나올법한 내일 무슨 일을 할까 기대가 돼 출근이 기다려 진다는 말들은 일반 직장인들에게 너무나 먼 말이죠. 게다가 날마다 마감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스트레스에 파묻혀 사는 기자들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성공하는 사람들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노라면, 싫은 일을 즐겁게 하기 위한 자기 합리화에 매우 능통하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가령 지금 하는 고강도의 일은 나를 더욱 강하게 훈련시킨다고 믿는다든지, 과거에 더 힘든일도 이겨냈는데 이쯤이야 등등일반인들이 자신의 일을 내일로 미룰 때 쓰는 핑계와 정확히 반대됩니다. 특히 이들은 소싯적부터 조직 내부에서의 본인 역량과 위치 보다는 자신이 속해있는 시장과 업계에서 어떤 포지션을 갖고 있는지 고민했습니다. 경쟁의 범위를 보다 넓게 생각하고 일찌감치 자신의 이름 석자 브랜드에 대해 생각하는 거죠.


 


제가 만나본 슈퍼 리치들은 하루에 25시간을 살았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일을 미룬다고 해서 남이 대신 해주지 않는 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산다고 다 성공하진 않는 세상입니다. 요새 회자되는 노력이란 옆으로 기울거나 다른 방향으로 가지 않게 하기 위함도 포함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아는 한 선배는 본인이 지키고 싶은 덕목들(도전, 노력, 성실, 용기 등)12개 항목으로 정리하고, 여기에 맞는 현실 가능한 세부 실행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세워 놓은 10년 후 목표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1년 단위 목표를 위해 오늘은 무엇을 했는지 확인합니다. 10년 뒤 꿈을 위해 오늘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기자들은 100미터 달리기는 잘하지만 마라톤에 약한 경향이 있습니다. 이 선배는 이런 언론업계의 특징을 간파하고 스마트폰으로 일일 목표를 아침마다 보고받을 수 있게 어플리케이션을 깔아 놓았습니다.


 


CEO들에게 직원들의 연봉을 결정하는 기준이 뭐냐고 물으면 의외로 고민의 깊이와 비례한다는 대답이 돌아오곤 합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회사에 대한 고민 뿐만 아니라 본인의 진로, 가족들의 안위 등 생각들이 꼬리를 무는 게 현실입니다. 이렇게 실타래같이 엮이는 고민들을 생산적이고 현명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평소에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이 선행돼 있어야 합니다. 제가 아는 한 기업 CEO는 새로운 직원을 뽑을 때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할 수 없는 것, 하고 싶은 것, 하기 싫은 것에 대해 100개씩 리스트를 뽑아오라고 지시한다고 합니다. 저도 해봤습니다만 생각보다 쓸 수 있는 말들이 많지 않고 내가 나에 대해 정말 잘 모르고 있구나를 느끼게 됩니다. 신속한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일단 나부터 꼬여있지 않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 놀 때도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법입니다. 본인이 뭘 좋아하는지 모르면, 뭐하고 놀 지 고민하다가 금쪽 같은 휴가를 날리게 됩니다.


 


사람의 명예를 죽이고 살리는 기자들에게 자기반성은 매우 중요한 덕목입니다. 누구나 실수는 하고 살지만 같은 실수를 두 번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은 잘못된 습관 때문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곤 합니다. 때문에 성공한 사람들은 본인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같은 네트워크를 옆에 둡니다. 비슷한 위치의 사람들과 모임은 정보 교환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강력한 자기반성을 하게 만들어 줍니다. 예를 들자면 경제부 기자 모임에 나가면 얼마나 본인이 출입처에 대해 모르는 게 많은지 반성하게 되고, 다음날 취재원에게 전화 한 통이라도 더 돌리게 되죠. 등산 모임에 나가면 이제 술 담배를 끊을 때가 됐구나 하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모임에 나가지 못하면 왕따가 될 테니 그만큼 문제 해결능력도 극대화 되는 거죠.


 


기자 경험이 짧고 배움이 미천해 선배의 어떤 모습이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공채 1기로 입사한 제 입장에서는 앞으로 후배가 선배들보다 훨씬 많아질 것 같아 이런 글이 저를 발목잡진 않을지 부담입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착하고 좋은 기자라는 평가 보다는 투박하더라도 조직과 사회에서 필요한 사람이었다는 뒷담화를 듣는게 낫겠습니다. 필요할 때마다 마치 술이 식기 전에 적장의 목을 베어오는 관우처럼 특종을 못할 바에는 하루에 1mm씩이라도 앞으로 반드시 전진하는 애벌레처럼 살려고 합니다. 못생긴 애벌레도 언젠가 창공을 나는 나비가 될 수 있음을 알기에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는 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