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_어디까지가 ‘공인’인가?

연예인 성폭력 사건 보도의 폭력성
박력과 유연함으로 천의 얼굴을 연기한 연예인이 성폭력 행사 의혹을 받았다. 신문과 방송, 온·오프라인에 해괴한 의혹이 봇물처럼 넘쳤고 상당수 언론은 의혹을 진실처럼 보도하였다. 하지만 연예인을 고소했던 사람이 되레 무고와 공갈미수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 후에도 유명 연예인들이 잇따라 성폭력 의혹을 받았지만 대부분은 혐의에서 벗어나고 있다. 의혹을 확대 재생산한 무책임한 언론은 오히려 보도 사건의 책임을 당사자들의 부도덕한 행위 탓으로 돌린다. 전형적인 물어뜯기 선정보도다.
연예인 성폭력 의혹 사건에 매진했던 언론들은 비슷한 시기에 터진 재벌의 성매매 의혹 사건을 아예 모르쇠로 일관했다. 양식 있는 언론인이라면 이 사건 보도에 참여하였든 그렇지 않든 저널리즘의 가치에 대해 번민이 깊었을 것이다. 어떤 언론인들은 연예인을 ‘공인’이라 전제하고 그들의 비행에 관한 보도는 당연히 국민의 알 권리라고 자위할지 모른다. 과연 연예인은 공인인가? 연예인이 공인이라면 그에 관한 의혹보도는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가? 연예인 보도와 관련된 언론법적 쟁점 몇 가지를 함께 고민해 보았으면 한다.

한국 법원의 독자적인 ‘정당한 언론활동’ 법리
연예인은 공인인가? 질문에 답하기 전에 우선 공인인지 여부는 왜 중요한지, 그리고 누가 공인인가를 따져보는 것이 좋겠다. 언론보도로 인한 인격권 침해, 특히 명예훼손을 이유로 한 언론소송에서 피해자의 신분은 매우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한국의 언론소송 재판은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주요 법리를 받아들였다. 30여 년 전까지 한국 법원은 언론보도가 진실하지 않을 경우 책임을 지게 하였다. 그러다가 서울 올림픽이 끝난 1988년 10월 초 대법원은 일본 최고 재판소의 ‘진실오신의 상당성’ 법리를 채택했다. 결과적으로 진실하지 않더라도 취재보도 시점에서 진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면 명예훼손 보도를 면책하겠다는 취지다. 언론의 자유를 크게 넓힌 법리이긴 했지만, 보도 피해자가 공인인지 여부는 따지지 않았다. 한·일 월드컵이 열리기 직전인 2002년 1월, 대법원은 ‘공적인물·공적사안’ 법리를 수용했다. 세 해 전에 헌법재판소가 이러한 법리를 명예훼손 소송에 적용하도록 제안했고 대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는 원고가 공적인물, 즉 공인인지 여부를 고려하겠다는 것이다.
2003년부터 우리 법원은 ‘정당한 언론활동’ 법리를 다듬어서 공직자가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에 적용하고 있다. 공직자나 국가기관, 정부활동에 대한 언론의 보도가 ‘악의적이거나 현저하게 상당성을 잃은 공격’이 아니면 언론의 명예훼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진실성, 진실오신 상당성, 공적인물·공적사안과 더불어 ‘정당한 언론활동’ 법리는 공인에 대한 명예훼손 책임으로부터 한국 언론을 지켜주는 굳건한 방벽이 되고 있다. 사적인 이해관계를 추구하느라 언론윤리를 저버린 보도가 아니라면, 공인에 대한 언론보도는 면책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모호한 공인의 범주
그렇다면, 공인의 범주는 명료한가? 그렇지 않다. 공인을 규정한 법령도 없다. 공직자윤리법, 공직자 병역사항 신고법, 인사청문회법, 김영란법 등 몇 가지 법률과 시행령 등이 있으나 공인 여부를 판단해 줄 근거로 활용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들 법령은 공인의 법주를 너무 좁게 혹은 너무 넓게 규정하기 때문이다. 법무부가 작성한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이 그나마 공식 문건 중에는 ‘공적 인물’을 규정한 경우다. 국회의원과 차관급이상 공무원, 지자체장과 지방의회 의장, 교육감, 치안감급 이상 경찰공무원, 지방국세청장 이상의 국세청 공무원, 정당대표와 최고위원에 준하는 정치인, 대규모 공공기관의 장, 자산총액 1조원 이상의 기업 대표, 금융기관의 장 등이 이른바 공인으로 지정되었다. 이처럼 공인의 범위 규정은 매우 좁다. 민간 영역의 경우도 매한가지다. 포털사업자들의 모임인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 정책규정은 공인을 ‘정무직 공무원 등’으로 보고 있다. 판례와 학설은 공인을 이보다는 더 넓게 보고 있다.
이렇듯 법령이나 민간 심의규정에 연예인을 공인으로 본다는 내용은 없다. 은퇴한지 오래된 옛 연예인도 공인으로 보기 어렵다는 판례가 있다. 또 연예인을 공인, 공적인물이라는 용어 대신 ‘유명한 사람’, ‘유명 연예인’ 식으로 명명하는 경향이 강하다.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력의 면에서 공인과 유사하지만, 공인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학설은 입장이 갈리지만, 유명한 연예인을 언론 소송의 공적 인물로 보자는 견해가 많다. 유명한 기업인들이나 스포츠스타와 마찬가지로 유명한 연예인들의 경우 공적 인물로 보아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명칭과 관계없이 실제 판례의 경향도 그러하다.

연예인에 대한 언론보도, 보호벽은 낮다
그러나 공인으로 간주하더라도 성격상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자원 배분 역량을 가진 이른바 ‘정치적 공인’과는 결이 분명히 다르다. 따라서 언론의 면책 범위도 다를 수밖에 없다. 일반적인 공인과 같이 보도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적 공인의 경우에는 공적 영역은 물론이고 사생활 영역도 공적 관심사가 되는 경우가 많다. 정책 결정에 관여하는 지위의 특성상 그러하다. 그러나 연예인들의 경우, 그들의 아주 내밀한 남녀 관계, 성적 프라이버시는 관음의 대상일지 몰라도 공적 영역은 아니다. 우리 판례는 특히 여성 연예인의 성적 내밀성에 대해 매우 강한 보호 경향을 갖고 있다.
언론을 시장 기반으로 하는 연예인의 직업적 특성상 언론소송을 제기하진 않지만, 연예인들이 사생활 침해 보도를 이유로 소송을 할 경우 언론의 패소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본다. 연예인의 사생활에 대한 보도가 국민 일반의 알 권리 대상이라는 항변도 설득력이 약하다. 연예인은 공인으로서의 성격을 일부 갖고 있지만 일반 정치적 공인과 언론소송법적 성격이 크게 다르다. 면책의 범위도 차이가 매우 크다. 이러쿵저러쿵 한 연예인 보도, 신중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