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나는 왜 MBC잔혹사를 연구했나

 

“이번 주 MBC의 현재에 대해서 썼다. (중략) 말도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은 게 MBC의 오늘이다. 학교 다닐 때부터 같이 기자가 되기 위한 스터디를 했던 ‘한 기자’는 인터뷰가 전제가 아닌 만남에서도 이야기하기를 주저했다. 예전에 고문 피해자를 인터뷰할 때 그는 계속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두리번거렸다. 눈물 날 것 같았다.”

2014년 늦가을, MBC 문제를 취재했던 한 주간지의 기자가 보도 후 자신의 SNS에 남겼던 글이다. 위 글에서 ‘한 기자’는 다름 아닌 나다. 기억이 있다. 당시 상암 MBC 1층의 카페 구석에서, 노트북을 펴놓고 기사작성을 하던 그와 잠시 차 한 잔을 마셨다. 그것이 전부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이 희미하다. 그렇게 두리번거렸는지는 더욱 몰랐고, 심지어 그가 나를 바라보며 예전에 취재했던 ‘고문 피해자’를 떠올렸다는 것은 더더욱 몰랐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2012년의 파업 이후 MBC에서 벌어진 일들이 나 자신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대해 궁금증을 갖기 시작한 것 말이다. 그리고 그 궁금증은 본래부터 갖고 있었던 또 다른 의문과 맞닿아 있었다. ‘MBC뉴스의 정권 종속화가 갈수록 심화되고, 동료들을 향한 징계·직종 전환 등 경영진의 탄압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는데, 나는 왜 저항하지 않고 두리번거리기만 하는가?’라는 의문이 그것이었다.

“나는 왜 두리번거리는가?”
현재의 MBC 상황이 문제라고 판단한다면 그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다시 거세게 저항해야 할 터이지만 난 그러지 않았다. 또 저널리즘 실천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MBC라는 소속에 얽매일 게 아니라 ‘기자’로서 일할 수 있는 다른 공간을 찾아 취재현장으로 가야 했지만 그 역시 하지 않았다. 문제적 현실을 수용하고 꾸역꾸역 살아가면서 혹시 또 다른 피해를 입을까봐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난 이런 나의 모습에 설득되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러한 나를 바꾸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결국 물음에 답해야 했다. “나는 왜 이러는가?” 그리고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그와 맞닿은 또 다른 질문의 답을 찾아야 했다. “2012년 이후 나라는 주체는 어떻게 변화되었는가?” 갖고 있기엔 무겁고 고통스러운 질문이었다. 그러나 외면하기엔 내 삶에서 너무 중요한 질문이었다. 답을 찾아봐야 했다. 마침 2015년부터 회사 업무와 함께 성공회대학교 문화대학원에서 학업을 병행하게 되었다. 성공회대에서의 생활은 2012년 이후 눌려있던 내 마음 상태를 기대 이상으로 회복시켰으며, 힘겹게만 느껴졌던 그 물음을 어느 정도 물러서서 응시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선물해 주었다. 그래서 도전해 보기로 했다. 22명의 MBC 동료 선후배들을 만났다. ‘심층 인터뷰’라는 연구 방법을 통해 한동안 소통하지 못했던 동료들의 마음속 이야기들을 듣고 관찰했다.

관찰 결과 기자들은 ‘버려졌거나’(잉여), 자체 판단을 거세당한 채 ‘이용되고’(도구) 있었다. 2012년 이후 MBC의 주류 위치를 확고히 한 경영진은 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뉴스를 생산하려 했으며, 그에 필요하지 않다고 분류한 기자들은 징계 또는 강제 직종 전환 등의 방식을 빌어 뉴스룸 외부로 제외했다. 그리고 필요하다고 분류한 기자들을 뉴스룸에 배치해 뉴스 생산의 도구로 이용했다. 이때 필요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통제가 가능한가’였다. 그리고 경영진은 잉여로 호명해 외부로 치운, 그만큼을 채우기 위해 ‘경력기자’라는 보다 통제가 수월한 도구를 투입했다.

버려지거나, 이용되거나
‘잉여’와 ‘도구’는 모멸감과 수치심 속에 저항했다. 잉여는 뉴스룸 밖에서, 도구는 뉴스룸 안에서 저항했다. 게시판에 성명서를 쓰고, 부당한 뉴스 제작 지시를 거부하고, 집회에 참석하고, 피케팅을 했다. 그러나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저항하는 주체만 응징당할 뿐이었다. 저항하는 도구는 뉴스룸 외부로 버려졌고, 이미 버려진 잉여는 중징계 또는 보다 원거리 부서 배치 같은 열악한 상태로 재차 호명되었다. 이 같은 패배와 좌절의 반복은 공포를 발생시켰고, 결국 경영진을 향한 분노는 공포라는 벽에 차단·반사되면서 경영진을 향하지 못하고 잉여와 도구들 자기 자신, 그리고 서로를 향하게 되었다. 연대에는 금이 갔고, 개인화·파편화의 흐름은 가속화되었다. 이로써 뉴스룸의 위계적 수직구조는 더욱 공고해졌으며 경영진이 원하는 ‘정권 종속화’ 뉴스는 보다 원활하게 생산되었다.

잉여와 도구는 판단해야 했다. 계속 이렇게 살 것인가?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 가지 길이 있었다. 더욱 큰 ‘저항’을 조직하거나, 다른 언론사로 ‘이직’하거나, 아니면 경영진에게 ‘투항’해 그 대가로 번영이라도 누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잉여와 도구는 어느 길도 가지 않았다. 분명히 기자 정체성을 갖고 있지만 기자로 살 수 없거나 기자답게 살 수 없는, 현재의 모순된 상황을 수용하고 ‘죽은 노동’을 수행하며 저항을 유예하는 길을 택했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분석되었다. ‘파업은 틀리지 않았다’는 자기 확신, 저성장 시대의 불안함 속에서 생존·안정의 토대가 되는 ‘MBC 정규직’을 유지해야 한다는 스노비즘(속물)적 필요, 그리고 ‘언젠가는 달라질 수 있다’는 불투명한 희망이 그것이었다.

유예된 저항, 불안정한 재생산
이러한 이유들을 끌어안고 꾸역꾸역 ‘버티는’ 기자들의 실천이, 윤리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최대치의 저항인가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실천을 재료로 재생산되고 있는 지금의 MBC 체제가 완벽하고 고정적인 것인가에 대해서도 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그 실천엔 여전한 자기 확신, 내사內射화된 분노, 불투명한 희망 등이 용해돼 있기에, 이를 바탕으로 재생산된 체제는 본질적으로 유동적이고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고 해석했다. 그것이, 내 부족한 연구의 결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