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란 이름] ‘트라우마’에 자유로운 기자는 없다



다트센터 아시아태평양지역 기자 펠로우십 후기


트라우마에 자유로운 기자는 없다


SBS 이정애 기자


 


이 분은 납치돼 살던 곳에서 3시간 떨어진 곳으로 끌려가 1시간 넘게 심문을 당했다고 합니다.”


이 분은 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고 합니다.”


이 분은 동료가 총 맞고 죽는 것을 눈앞에서 봤다고 합니다.”


현재 제 동료 한 명이 리비아에서 행방불명입니다.”


저는 본국에서 추방을 당해 망명중입니다.”


SBS 이정애 기자
지난 4, 태국 방콕의 한 호텔. 이 호텔 9층 컨퍼런스 룸에서는 무거운 증언들이 오가고 있었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저널리즘 스쿨 부설 다트센터(DART CENTER)’에서 주최한 제2회 아시아, 태평양 지역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단기 펠로우십 과정의 현장이다. 방글라데시, 사모아, 스리랑카, 인도, 인도네시아, 태국, 파키스탄, 필리핀, 한국 등 최소12년차 이상의 기자 17명이 모여 저널리즘과 트라우마에 대한 열띤 논의가 이뤄졌다. 위의 증언들은 옆자리에 앉은 기자를 20분간 인터뷰한 뒤 소개해주라고 과제를 받았을 때 나온 얘기들 가운데 일부분이다. 이 펠로우십 과정에는 기자 외에도 트라우마에 대한 연구를 주로 해온 호주 심리학자 2명과 필리핀에서 온 심리학자 겸 정신과 의사도 자리를 같이했다. 나는 다트센터에서 주최한 펠로우십의 첫 한국 펠로우로 그곳에 참석했다.


내가 개인적으로 심리적 외상으로 불리는 트라우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몇 년하고 난 뒤부터였다. 4년차밖에 되지 않던 지난 99, 당시 뉴스추적에서 처음으로 여기자를 한 명 두려고 하는데 해보지 않겠냐는 권유를 받고 나는 시사고발프로그램인 뉴스추적에 첫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그리고 5. 내가 좋아서 더 있겠다고 하기도 하고 선배들이 더 있으라고 잡아주기도 해서 다른 기자들보다 오래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개인적으로는 데일리 뉴스보다 내가 기획하고 긴 호흡으로 세상의 중요한 이슈들을 고민하고 제기할 수 있는 탐사보도 프로그램이 참 좋았다. 보람도 많이 느꼈고 거기서 만난 사람들은 그 사람이 비록 한 사건의 피해자라고 하더라도 내 사람처럼 느껴졌으며 프로그램 하나하나가 정말 내 프로그램으로 느껴졌을 정도로 탐사보도 프로그램에 많은 애정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주에서 4주에 걸쳐 만4년 간 고발 프로그램을 지속하다보니 힘든 때도 있었다. 취재 중에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을 받기도 하고 비리현장을 몰래 찍다가 걸려서 정말 여기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까 마음을 졸여야 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내가 취재하고 인터뷰했던 사건이나 사고로 상처를 받은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나의 노력이 큰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은 죄책감이 들 때였다. 지난 2000, 군산에서 불이 나 쇠창살에 갇힌 성매매 피해여성 5명이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보통 여기자가 소외 윤락녀라 불리는 성매매 피해 여성들을 접하기는 참 쉽지 않다. 그런데 막상 이러한 사건이 발생하고 나니 그들은 남자 기자보다는 여기자에게 얘기하고 싶어 했고 그동안 자기들이 겪은 참혹한 실상, 만신창이가 돼버린 몸에 대해, 그리고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에 대해 유독 나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아 주었다. 그리고 당시 우리는 뉴스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던 이 사건을 뉴스추적을 통해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어렵게 나한테 자기의 이야기를 공유해준 이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하려고 신종 인신매매와 성매매피해 여성들의 인권문제를 강도 높게 제기했었다. 그런데 2002, 군산에서 또 불이 났다. 2000년 내가 취재했던 곳에서 500미터도 안 떨어진 곳이었는데 이번에는 무려 15명의 성매매피해 여성이 또 감금돼 죽은 사건이 발생했다. 2000년 화재 이후, 감금이 사회문제가 되자 쇠창살을 모두 없앴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쇠창살은 없어졌지만 아예 창문을 합판으로 막아버리고 문을 특수 잠금장치로 바꾸어 안에서는 열수 없게 하고 밖에서만 열수 있는 시스템으로 교묘하게 바꿔버린 것이었다.


2002년 군산화재사건을 다시 취재하러 갔을 때 나는 호되게 앓았다. 5년간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취재하면서 아파서 취재를 못한 적은 그날 외에는 한 번도 없었는데 그 날은 더 이상 취재를 나갈 수 없을 정도로 몸살에 시달렸다. 2월이고 유난히 그 겨울이 춥기도 했지만 내가 아팠던 것은 추위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문제 제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더 많은 사람이 희생됐다는데 너무 화가 나서 화병이 났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뉴스추적을 하면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하고 지금도 그 사건으로 인해 나를 트라우마라는 화두에 관심을 갖게 만든 사건은 바로 형사미성년 문제를 다루면서 만난 8살 여자아이의 성폭력 사건이었다. 당시 그 아이는 같은 학교 고학년 남자아이들에게 성폭력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었다. 아이는 방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스케치북에 검은 크레파스를 칠해대면서 다 죽여버리고 싶다고 했다. 언뜻 봐도 후유증이 심해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우리는 형사미성년이라는 이유로 갈수록 범죄의 수위가 높아짐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들에게는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는 실상을 고발하면서 한편으로는 이 아이를 도와줄 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마침 한 대학병원 소아정신과병동에서 아이를 치료해주겠다고 해서 가족을 설득해 병원에 입원을 시켰다. 그런데 입원한 바로 다음 날 그 아이의 가족은 아이를 다시 병원에서 데려갔다. ‘정신과에 대한 편견 때문이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후유증 치료가 얼마나 필요한지 알고 있었기에 치료조차 해줄 수 없게 된 상황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프로그램을 통해 형사미성년에 대한 문제는 잘 제기했지만 결국 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게 사례를 제시해준 그 아이는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탐사보도를 하다보면 우리에게 제보를 해주거나 우리에게 인터뷰를 해준 사람들이 직접적인 도움을 받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대개 우리가 그들의 이야기로 사회문제를 제기하고 나서 시스템이나 법이 바뀌면 그 후에 같은 경우를 당하는 그 다음 사람이 도움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보니 그럼 우리에게 인터뷰해주고 제보해준 사람들은 과연 우리 프로그램으로 인해 얻는 것이 있기는 한 것인가? 혹시 그렇지 않아도 상처받고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우리가 더 아프게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에까지 빠지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내가 관심을 갖게 된 대상이 탐사보도를 하면서 내가 주로 취재하고 인터뷰하는 사건사고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뉴스추적을 떠나 시간이 좀 생겨 야간 대학원을 다니게 됐을 때 이 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기울였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저널리즘이나 커뮤니케이션 관련 연구에서 이러한 트라우마와 관련된 연구는 거의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심리적 외상을 앓는 사람들을 상담해주는 심리학과나 이 사람들을 도와주는 시스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회복지학과의 연구에서 차용할 수 있는 부분은 없는지 찾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이 경찰관이나 소방관, 의사나 간호사 등 우리와 비슷하게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을 주로 대하는 많은 다른 직종의 사람들은 상담을 받는다거나 트라우마와 관련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그나마 있다는 것이었다. 사건, 사고 현장을 직접 찾아가고 사건, 사고로 트라우마에 빠진 피해자들을 항상 만나는 직종의 사람들 가운데 그러한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는 직종은 언론인들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가 다트센터에 대해 알게 된 것도 바로 이러한 문제로 석사논문을 쓰는 과정에 있을 때였다.


저널리즘과 트라우마관련 언론인들을 교육하는 다트센터가 있는 미국에서도 저널리즘과 관련해 가장 새롭게 등장하는 분야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저널리즘과 트라우마라고 한다. 다트센터는 90년대말 기자출신 미국 교수들 중 몇 명이 취재 중 겪게 되는 트라우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또 한축에서는 트라우마 연구의 선두주자였던 정신과 의사 프랑크 옥버그(Frank Ochberg)박사가 언론인들도 트라우마 관련 상담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싹트기 시작했다. 거기에 다트라는 한 재력가의 도움으로 다트 센터를 운영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면서 본격적으로 언론인들에게 트라우마와 관련한 조언과 교육을 시키게 되었다.(http://dartcenter.org/) 특히 미국에서는 9.11테러 이후 그것을 보도한 기자들, 영상을 촬영했던 카메라 기자들, 그리고 그 현장을 본 시청자들까지 한동안 심리적 외상이나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센터의 가장 큰 관심은 기본적으로는 기자들이 겪는 심리적 외상과 관련된 것이고 그 다음이 내가 가졌던 트라우마에 대한 관심처럼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을 취재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 지와 관련된 것이다.


 



 


지금까지 언론인들은 트라우마라는 말을 애써 외면해왔다. 취재하면서 본 교통사고 현장이나 교통사고에서 숨진 사람의 영상이 문뜩 잔상으로 머리에 떠오를 때, 사건사고를 당해 충격에 빠진 사람에게 마이크를 들이밀며 이야기를 이끌어내야 할 때 그들이 보인 오열의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을 때 혹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도 근본적인 도움을 주지 못해 죄책감에 시달리는 때 우리는 대개 그 기자가 강하지 못해서라고 치부해왔다. 그래서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혹은 술로 그날그날 스트레스를 풀어버리면 되는 것처럼 여겨왔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몇 년씩 쌓이면서 아예 우리는 우리가 보도하는 사람들에게서 더 이상 감정적으로 동요되지 않도록 선을 긋는데 익숙해져갔다. 취재하면서 처음 본 시신은 굉장히 또렷하게 기억하지만 그 후에는 감각이 둔해져 웬만한 사건 사고에는 놀라지도 않게 되는 현상, 이것도 트라우마의 한 현상이라고 한다.


태국에서 내가 경험한 다트센터의 펠로우십은 비록 기간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기자들이 처음으로 자신이 겪은 트라우마에 대해 감정을 공유하고 어떤 식으로 이겨나갔는지, 혹은 어떠한 교육이 사전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의견과 경험을 나누는 자리였다. ‘트라우마는 뇌의 신경물질 변화로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정상적인 몸의 변화라고 한다. 즉 자기가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사건, 사고를 직접 당하거나 목격하거나 간접 경험을 하는 모두에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직접 취재를 나간 취재기자나 카메라 기자, 오디오 맨 뿐 아니라 찍어온 영상을 접하는 다른 모든 사람들도 다 겪을 수 있는 현상이라고 한다. 지속적으로 심리적 외상을 겪을 수 있는 사건사고에 노출될수록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를 앓을 가능성도 높아지는데 심리적 외상은 사건, 사고는 많이 겪었다고 더 잘 이겨내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또 지속적인 사건사고의 노출로 지속적인 심리적 외상을 입게 되면 판단력이 둔해지거나 사람들과의 관계가 나빠지거나 감정이 격해질 수도 있고 아니면 반대로 일에 흥미나 감정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기자들의 경우 대개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직접적인 상담이나 치료를 받는 것보다는 기자들도 심리적 외상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을 사전에 인지하고 서로가 취재하면서 느낀 경험이나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 심리적 외상을 이겨내는데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사회부 경찰팀의 저녁회의 시간에 아이템에 대한 논의나 잘하고 잘못한 것에 대한 지적뿐 아니라 그날그날 기자들이 겪었던 일에 대해 서로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면 사건사고를 통해 입은 심리적 외상을 이겨내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전쟁에서 군인들이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재배치되는 것처럼 기자들도 사건사고의 취재 기간을 조정해 줘야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팔로우십 과정이 끝난 지 한 달 반이 지난 지난달 31, 외신을 통해 파키스탄의 한 탐사보도 기자 살림 샤흐자드가 살해된 채 발견됐다는 기사가 전해졌다. 같은 날 태국에서같이 펠로우십을 했던 파키스탄 기자 아프난에게도 메일이 한 통 왔다. 살해된 기자는 자기의 친구였으며 살해되기 전주 일요일, 정보부에 의해 납치돼 행방을 찾던 중이었다는 것이다. 샤흐자드 기자는 파키스탄 군부와 알카에다와의 연루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를 쓴 뒤 정보부에 잡혀가 고문당해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었다. 아프난은 샤흐자드 기자 살해에 대한 공정한 수사를 촉구하며 연일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그에게 힘내라고 조심하라고 또 펠로우십에서 배운 것처럼 동료들과 감정을 공유하면서 서로에게 힘이 돼주라고 전해주었다. 펠로우십을 같이 했던 또 다른 필리핀 여기자 로웨나 파란는 지난 2009년 필리핀 마간다나오주에서 발생한 기자 27명을 포함한 57명이 살해된 지방선거를 둘러싼 대학살 사건의 용의자를 최근 법원이 풀어주려 한다는 의혹을 기사로 제기했다가 법정모욕죄로 기소됐다.


취재환경이 우리보다 열악해 목숨을 걸고 기사를 써야하는 상황에 있는 그들을 보면서 기자에 대해, 기자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또 우리에게도 진실을 보도하는 것이 목숨을 걸어야했던 역사가 그리 오래지 않았었는데 하는 생각도 새삼 하게 되었다. 그래서 정의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기사를 쓴 필리핀 동료여기자를 돕기 위해 다트 센터 펠로우들이 성명서를 쓴다고 했을 때 나도 기꺼이 내 이름을 올려달라고 했다.


우리의 취재환경은 많은 내 펠로우 동료들에 비하면 물리적으로는 훨씬 나은 상황이다. 하지만 우리도 취재를 하면서 알게 모르게 심리적 외상을 입고 있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들을 접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 건강한 취재환경을 위해, 또 우리가 접하는 마음 아픈 사람들이 자기의 이야기를 제대로 전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언론인들도 트라우마에 관심을 가져야할 때라 생각한다. 그리고 트라우마와 관련한 교육, 즉 취재진이 자기를 보호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피해자들을 취재하는 윤리적인 보도 방침이 있는지의 여부는 위기순간에 더욱 빛을 발하게 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취재환경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요즘 새삼 더 마음에 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