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우리는 왜 ‘기레기’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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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이래 최악’이라는 참사 현장을 지켰던 기자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비판을 받고 기자로서의 자신을 돌아봤다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일시_ 2014년 6월 11일
장소_ 서울 여의도
참석자_ MBC 엄지인 기자(사회부),
 MBN 김한준 기자(경제부),
 YTN 김현미 기자(영상취재1부),   KBS 강나루 기자(사회부)
진행_ MBC 조현용 기자(본지 편집위원)

 

엄지인(MBC) ∷ 300명 가까이 숨진 참사를 생중계로 본 것 같은 느낌이었죠. 같은 느낌을 국민들에게 준 것 같아요. 구조가 가능할 것 같다는 예측을 하고 움직였기 때문에 실망도, 아쉬움도 컸죠.

강나루(KBS) ∷ 어떻게 하면 선내에 있는 아이들에게 빨리 접근할 수 있을지를 더 고민해야 했어요. 만약 언론에서 그것을 지속적으로 보도했다면 유가족이 지금처럼 실망하지도 않았을 것 같아요. 당시에는 이런 생각을 못 했지만 이제 와서 돌아본다면 핵심은 결국 배 안에 있던 이들이었어요.

 

‘현장’보다 ‘통신’을 믿는다

김한준(MBN) ∷ 대부분 비슷하겠지만, 편집부에서는 큰 판을 먼저 그리잖아요. 그러면 현장에 있는 기자들은 그 지시에 맞춰서 취재를 하게 되잖아요. 그러다 보니 무리한 인터뷰 같은 것도 나오는 것 같은데, 방향이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데스크의 지시보다는 현장에서 취재한 내용이 우선이어야 할 텐데 방향이 바뀐 것 같아요. 항상 회의를 먼저 하고 옛날에는 어떻게 했는지를 생각하니까요.

김현미(YTN) ∷ 그 상황이 제일 답답한 게 어떻게 보면 카메라기자거든요. 처음부터 유가족들은 구조를 안 하고 있다고 주장했어요. 근데 사실 저도 찍고는 있었지만, 그들 말에 믿음이 안 간 거죠. 정부에서 잠수사들이 내려갔다고 하는데 무슨 근거로 그러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어쨌든 유가족들 주장을 담고 취재기자 선배에게 보고했더니, 민간 잠수사도 투입됐다는 브리핑이 있다면서 유가족 멘트는 빠지게 된 거예요.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 그 보도가 나갔었어야 했던 것 같아요.

32-3강나루 ∷ 먼저 현장에서 보고가 올라가는 게 아니라, 회사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데스크가 내린 지시가 줄줄이 아이템으로 이어지는 폐단이 우리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었군요. 가장 빠른 정보는 팽목항 상황판에 기록됐는데, 데스크에게는 아무래도 통신기사가 가까웠을 테죠.

엄지인 ∷ 저희 역시 사고 초기 정부 발표로 ‘학생들 전원 구조’ 자막이 나갔을 때, 현장에 있는 지역사 기자는 여전히 많은 학생들이 갇혀있다고 보고를 했다는데, 현장의 의견은 보도되지 못했죠. 현장의 판단을 얼마나 존중하느냐의 문제도 고민인 것 같아요.

 

‘받아쓰기’에 대한 반성

김한준 ∷ 이런 사고가 터졌을 때 정부가 틀릴 것이라는 생각을 보통 안 하잖아요. 팩트라고 알려주는 것이니까요. 정부 발표 자체를 보도 안 할 수도 없고… 쉽지 않은 문제 같아요.

32-4엄지인 ∷ 대형 참사가 터졌을 때, 정보의 창구가 결국 정부일 수밖에 없는데요. 정부가 틀린 정보를 줬을 때 어떻게 걸러낼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죠. 더 비판적으로 움직였어야 하는 게 아니었나 생각해요. 발표 자료에 길들여지는, ‘기자실 취재’의 폐해를 몸소 알게 된 거죠.

강나루 ∷ 유가족들이 구조에 불만이 많다는 보고를 했더니, 데스크는 ‘유가족들은 기본적으로 너무 격앙돼 있지 않으냐?’고 했어요. 정부 발표는 받아줘도 손해 볼 일 없다는 생각으로, 정부와 유가족의 입장이 대등하게 다뤄지지 않는 거죠. 정부는 ‘발표’, 유가족은 ‘주장’이니까. 기본적으로 정부 발표를 받을 수 있다고 봐요. 하지만 받는 속도 못지않게 비판하는 것도 빨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현미 ∷ 이번 같은 경우에는 현장이 바다였다는 한계도 컸던 것 같아요. 정부 발표를 믿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가, 정부가 발표하는 곳과 현장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거고요.

 

‘기레기’의 고민

엄지인(9년 차) ∷ 첫날, 살아남은 학생이 인터뷰를 해줬어요. 친구들과 같이 있었는데, 자신만 살고 아무도 못 나왔다는 얘기였어요. 그때는 마음이 급하니까 양해만 구하고 넘어갔는데 사실은 서로에게 트라우마가 되는 거죠.

32-5김현미(7년 차) ∷ 시신이 수습되고 유가족들이 슬퍼하면서 타사 기자들과 합의를 했어요. 멀리서도 찍을 수 있는 부분만 찍자고. 그럴 때는 언론인으로서 도를 지킬 수도 있는 건데 계속 타사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인 게 답답하죠.

강나루(4년 차) ∷ 현장에 있는 기자가 상황을 커버하지 못해서 나중에 큰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잖아요. 다음에 사고가 났을 때는 벌떼 보도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회의적이에요.

김한준(9년 차) ∷ 불가능한 상황에서 멘트, 그림 따오는 기자가 능력 있고, ‘도둑질’해서라도 단독 하는 기자가 뛰어난 것이지, 예의 지키면서 하는 사람은 무능하다고 평가받는 게 이 바닥의 문화죠.

 

무엇을 위한 보도였나

엄지인 ∷ 어느 시점 이후에는 슬픈 표정을 방송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온 적이 있었죠. 너무 얼굴을 대놓고 방송하는 게 또 옳지 않은 것 같기도 했고요.

32-6김한준 ∷ 어느 순간 세월호 참사의 초점이, 실종자가 아니라 유병언 찾기와 금수원으로 옮겨져 버렸어요. 왜 초동 대처가 미흡했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고, 책임을 어떻게 물을 것인지를 따지는 일이 아니라 대부분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강나루 ∷ 저희는 유가족들이 진도체육관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방송하지 말라는 지시도 있었어요. 피난민처럼 보인다고. 그런데 피난민처럼 보이는 모습에 누가 불편할까, 그런 얘기를 했어요. 유가족들이 저희를 워낙 싫어하시니까, 우리가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김현미 ∷ 유가족이 가장 화가 났던 건, 자신들이 눈으로 본 거랑 보도랑 너무 달랐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결국 언론이 정부 발표대로 보도했기 때문이죠. 유가족들은 늘 카메라를 보면, 어차피 나가지 않을 건데 왜 찍느냐, 찍는 대로 내보내 달라는 애기를 했어요. 이런 것들이 불신을 쌓아온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세월호’ 이후는?

김한준 ∷ 적극적으로 현장의 목소리를 냈어야 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유가족들이 외신기자들 응대하는 것을 보면 기자 자체를 싫어하는 게 아니었거든요. 편을 들어달라는 게 아니라 자기 목소리를 내줬으면 좋겠다는 건데, 그걸 못했으니까 ‘기레기’라는 말도, 여학생의 편지도 나온 거겠죠.

김현미 ∷ 저는 과거 대형사건이 터졌을 때, 처음에 투입된 적이 없어요. 여자라서 안 시키는 건가 싶어서 이번에는 처음부터 어필했고 바로 투입됐죠. 그런데 이 사건을 겪고 제가 왜 가려고 했는지 자문했어요. 현장에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훈장 한 개 추가한 것처럼 생각했던 건 아닌가 싶었어요. 중요하지 않은 보도는 없는데 말이죠. 너무 현장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어요.

강나루 ∷ 이번 일 겪으면서 방송기자는 느리지만, 정확한 뉴스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속보 경쟁에서 매체 특성상 뒤처질 수밖에 없다면, 정부가 몇 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을 때, 방송뉴스는 그 발표가 정말 맞는지를 확인해줬으면 좋겠어요.

엄지인 ∷ 속보경쟁이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면 강력한 회사 내 강령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글로는 표현하더라도 방송이니까 자극적 화면은 피한다거나, 유가족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 정부 발표도 비판적으로 검증한다는 식으로요. 또 보도를 검증할 수 있는 권한을 기자들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봐요. 결국은 기자 스스로 권력은 감시하고, 약자는 얼마나 배려했는지를 생각해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