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사이신 덩어리가 내 안면을 때렸다_SBS A&T 김승태 기자

SBS A&T 김승태 기자
(영상취재팀)

지난 11월 14일. 첫 번째 민중총궐기 집회가 있던 날이었다. 취재를 나서며 발목까지 올라오는 신발의 끈을 단단히 조였지만 영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반대 집회 이후 최대 규모라는 경찰의 예측 때문이었다. “절대 무리하지 마라.” 휴일이었지만 많은 선배들이 연락을 보내왔다. 그럼에도 결국 무리하게 될 거라는 생각은 지워지지 않았다. 여러 경우의 수를 두었다. 현장 발생이 멈추지 않으면 송출은 어떻게 하지? 카메라가 파손된다면? 평소 같으면 생략했을 최악의 수들만 나열하면서 현장으로 가고 있었다. 서울역에 도착해서 사전 집회 형식으로 열린 장애인들의 시위를 취재하던 중에 본대 쪽에 있던 선배로부터 갑자기 전화가 왔다. “지금 광장 쪽에서 벌써 충돌할 것 같은 분위기다. 일단 이쪽이 급해!”

“깃발은 어느새 창으로 변해”
‘물 먹으면 안 된다’ 차량통제로 차에서 내려 뛰면서도 머릿속에는 그 생각뿐이었다. 저 멀리 차벽이 보였다. 다행히 늦진 않은 것 같아 숨을 고르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시위대는 차벽과 대치했지만 이상하리만큼 평화로웠다. 버스 위 전경들은 무심한 표정으로 콩기름을 뿌리느라 분주했다. 꼭 전쟁터에서 방어진을 구축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잠깐 사이에 분위기가 바뀌면서 시위대들이 대열을 정비했다. 그리고 곧 목 토시가 코 위까지 올라오자 시위대의 눈빛이 바뀌었다. 언제 준비했는지 모를 밧줄이 등장했다.
“영차! 영차!” 경찰 버스 바퀴에 단단히 묶어 놓은 밧줄을 수백 명이 달라붙어 당겼다. 다른 수십 명은 밀착해 버스를 밀었다. 단생산사團生散死.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이 떠올랐다. 전경도 흔들거리는 버스 위에서 넘어지지 않으려 서로 붙잡았다. 방패로 막고, 최루액을 쏘고, 절단기가 달린 장대를 이용해 줄을 끊어냈다. 뚫으려고 하는 쪽이나 막으려고 하는 쪽이나 마치 훈련이라도 해본 것처럼 능숙하게 싸웠다. 갈수록 사람들은 격앙되어 갔다. 투쟁의 결의를 담은 깃발들은 어느새 창으로 변해 전경들을 향했고, 몇몇은 버스에 오르기 위해 사다리를 탔다. 갈수록 경찰 버스에 묶은 밧줄의 수가 늘어나고 시위대가 모여들자 물대포가 고개를 내밀었다.

“물줄기는 나를 정확하게 조준한 듯”
‘우우웅’ 소리가 나더니 가늠쇠로 쓰고 있을 카메라 밑 주둥이에서 물줄기가 쏟아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화생방 훈련 때 맡아본 익숙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바닥을 보니 아스팔트가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물대포에 캡사이신을 얼마나 탔는지 알 수 없지만, 멀리 떨어져 거리를 걷던 행인들까지도 얼굴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물살의 세기도 분위기를 바꿨다. 곡선을 그리던 물대포가 직선이 되어 표적을 정확하게 타격하기 시작했다. 밧줄을 움켜쥐고 있던 사람들은 순서대로 내동댕이쳐졌다. 시위대 속에 있었던 나 역시 카메라를 품에 안고 등을 돌려 물대포를 막았다. 물줄기는 나를 정확하게 조준한 듯 일정 거리를 벗어날 때까지 비켜가지 않았다. 이후로도 물대포와의 밀고 당기기는 계속되었다. 다가오면 도망가고, 멀어지면 다가갔다. 그때였다. 충분히 빠졌다 생각하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독기를 잔뜩 머금은 캡사이신 덩어리가 내 안면을 때렸다.
‘악’ 소리가 절로 났다. 잠깐 스쳐 지나갔음에도 목이 꺾일 정도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옥문이 열렸다. 캡사이신에 맞은 눈이 타들어 가듯 따갑고, 화끈거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물, 물!!” 손에 잡히는 대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 물 좀 달라며 외치고 있었다. 체면 따위를 찾을 겨를이 없었다. 캡사이신을 씻어내려 손으로 계속 문지르다 보니 얼굴은 어느새 눈물, 콧물, 침으로 범벅됐다. 아비규환이었다. 주변 모두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고통은 시간이 지날수록 공포로 변해갔다. 두 발은 스스로 뒷걸음을 치고 있었다.

“싸움 말고 남은 것이 무엇일까?”
“야! 이 ×××야” 불꽃이 튀듯 시위대가 달려 나갔다. 캡사이신을 맞고 이성을 잃은 쇠파이프는 경찰버스 유리창을 그대로 관통했다. 시위자 몇 명이 그 장면을 찍던 내 카메라 렌즈를 막았다. 그 사이 깨진 유리창으로 들어간 다른 시위자는 직접 운전대를 잡고 경찰버스를 차벽에서 빼냈다. 차벽 뒤에 있던 전경들도 하나둘 방패를 뺏기고 시위대에게 끌려 나왔다. 어린 전경들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미 양쪽 다 선을 넘은 듯했다. 상황이 점점 위험해지고 있었지만, 경찰도 시위대도 멈추지 않았다.
저녁 10시 무렵. 물대포가 갑자기 사라졌다. 백남기 농민의 부상이 경찰 수뇌부에 알려진 게 분명했다. 이후 싸움은 자정까지 지지부진하게 이어졌다. 그러다 시위대가 흩어지고 전경이 늘어나며 집회는 ‘시시하게’ 끝이 났다. 서로 이기는 싸움을 하기 위해 최선을 했지만 승리자는 없었다. 경찰은 과잉진압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되었고, 시위대도 일반 국민들에게 공감을 얻기에는 부족했다. 언론은 과연 제 역할을 했을까?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보다 충돌에만 포커스가 맞췄다. 눈길을 끄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게 다인 것 같아 아쉬웠다. 백 씨가 수술 중이던 서울대병원 상황까지 커버하고 회사로 복귀하니 새벽 2시가 넘었다. 회사 샤워장에서 캡사이신으로 절어 있는 몸을 씻으며 하루 일을 회상했다. 과연 이 집회에서 싸움 말고 남은 것이 무엇일까? 뜨거운 물을 만난 피부는 캡사이신과 반응해 다시 비명을 질렀다. 나로서도 무엇을 얻었는지 생각이 잘 나지 않아 더욱 쓰리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