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기자가 본 카메라기자 ② 베테랑 촬영기자와 일하는 즐거움_KBS 김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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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노땅’을…
방송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8주. 북한부에 있다는 이유로 맡게 된 50분짜리 프로그램. 시사제작물을 처음 제작해보는 초짜에게 8주는 그야말로 ‘찰나’의 시간처럼 여겨졌다. 시사제작국에서 주로 전담하는 KBS의 대표 시사 프로그램인 <시사기획 창>으로 방송되고, 더군다나 신년기획이다. 북한과 관련된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에 기획과 동시에 북·중 접경지역으로 해외 취재를 나가야 했다.

우선 팀을 짜는 게 급선무. 제일 먼저 촬영기자. 장성택 숙청 이후 북·중 접경지역의 경계가 삼엄해지면서 위험한 취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이 잘 맞는 후배와 함께 일했으면 했다. 실제로 베이징 특파원 후배가 접경지역 취재 중 중국 공안에 잡혀 잠시 억류됐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부장을 통해 내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했다.
그러나… 정작 배정된 촬영기자는 정년을 5년 앞둔 박인규 선배. 솔직히 한숨부터 나왔다. 겨울의 접경지대는 춥고, 때에 따라서는 험한 지형을 갈 수도 있고, 또 앞서 말했듯이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박 선배라니.

마음속 걱정을 하나 가득 안은 채 11월 말 첫 중국 옌볜 출장길에 올랐다. 북한 함경북도 남양과 접한 지린성 투먼(도문·圖們)시의 경제개발구가 주 취재처. 투먼은 중국에서 유일하게 공식적으로 북한 노동자의 취업이 허가된 곳. 하지만 서울에서 섭외한 것들은 현장에서 무용지물이었다. 경제개발구 경비가 삼엄해져 공장 내부를 들여다볼 방법이 없었고, 가이드 얘기로는 장성택 사건 이후 공안이 수시로 드나든다는 것이었다.
일단 공단 부감 샷을 찍고 어떻게든 공장 내부를 들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웬 걸. 공단 주변에 부감을 찍을 높은 곳이 없었다. 잠시 탐색해보니 그나마 공단에서 3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야산이 있어 거길 오르기로 했다. 길이 없었다. 게다가 절벽이었다.

‘노땅’의 맹활약
잠시 망연해 있을 때 우리 ‘노땅’ 박인규 선배는 앞장서 절벽을 오르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나를 향해 “여긴 위험하니 위쪽을 잡아라.”라고 인도까지 해주신다. 겨우겨우 정상에 올랐지만, 삼각대 놓을 자리도 마땅치 않을 정도다. 그때 마침… 눈보라까지 몰아친다. 무슨 영화의 한 장면 같다.

내려오는 일은 더 문제였지만 생략. 이후 우리 ‘노땅’의 활약이 더욱 눈부셨기 때문이다. 공장 취재에서 우리 ‘노땅’ 박 선배는 “너는 차에 있어. 나는 중국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에 쓱 들어가서 몰카로 찍고 나오면 돼. 넌 아무리 봐도 한국사람 같아.”라는 것이다.

그렇다. 이번 취재에 박 선배가 낙점(?)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야말로 ‘중국 사람의 외모’를 갖추고 계신 것이다. 실제 공항에서도 중국 사람들이 박 선배에게 중국어로 말을 거는 것을 여러 번 목격하기도 했다. 한 30여 분, 차에서 초조히 기다렸을까. 후다닥 나오시는 박 선배. 대성공이다. 박 선배,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잠시 기다렸다가 북한 노동자들이 점심을 먹는 구내식당에 잠입하신다. 태연히 식사까지 하고 나오신다.

위기의 순간에서도
어렵게 중국 취재를 마치고 왔지만, 여전히 영상은 태부족이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12월 말부터 1월 초까지 다시 한 번 1주일의 접경지역 취재를 다녀왔다. 일단 나진·선봉 해돋이 관광을 가는 중국인 한 명을 섭외해 현지 그림을 부탁했고, 우리는 관광단 출발부터 중국을 벗어날 때까지 팔로우 샷을 찍기로 했다. 이번엔 모든 게 순조로워 보였다.
하지만 관광단이 북한과의 통로인 권하세관으로 들어가자 욕심이 생겼다. 별것도 아니지만, 이들이 두만강 다리를 건너 북한 땅 깊숙이 들어가는 그림을 찍고 싶어졌다. 가이드에게 다리를 찍을 수 있는 포인트로 이동을 부탁했다.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딱 그곳에 총을 든 군인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지키고 있었다. 차를 돌리면 더 의심받을 수 있는 상황. 박 선배는 재빨리 들고 있던 6mm 카메라를 뒷좌석의 나에게 넘기며 좌석 밑으로 쑤셔 넣으라고 한다. 나는 카메라와 가방 속에 있던 와이어리스 마이크 등 각종 장비를 후다닥 꺼내 바닥에 던진 뒤 발로 운전석 밑 공간으로 밀어 넣었다. 여권도 뺏기고 공포스러운 상황이 지나간 뒤 겨우 풀려났다. 그러자 박 선배의 한 마디, “잡혔을 때 핸드폰 동영상 켜둘 걸. 그림 좋았는데.”

우여곡절 끝에 1월 14일 방송은 나갔고, 다음 날 성적표엔 시청률 7%가 찍혀 있었다. 그리고 그 성적표보다 더 크게 얻은 게 있다면 ‘노땅’, ‘중국 사람’ 박인규 선배라는 베테랑과 일하는 즐거움을 알았다는 것이다.

※두 기자가 중국 접경지역에서 취재한 <시사기획 창-신년기획 ‘2014년 북한의 선택은’>은 지난 2월 이달의 방송기자상을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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