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기자가 본 카메라기자 ① 그 길에, 그들이 함께 있었다_MBC 임경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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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이란 추억

# 종로구 창신동에 있는 ‘한울삶’은 민주화 운동 유가족들이 모여 사는 곳입니다. 영정 사진이 빼곡하게 걸려 있는 그곳에서 故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를 만났습니다. 아들 영정 사진 앞에 어머니를 세워 놓고 ‘(아들이) 보고 싶지는 않으신지?’ 같은 덧없는 질문을 하고 있자니, 속이 답답하더군요. 그러면서도 더 짠한 ‘싱크’를 얻으려고 머릿속은 복잡해졌습니다. 그때, 카메라에서 눈을 뗀 선배가 여사님께 물었습니다.
“가끔 아들 사진도 닦아주고 그러세요?”
어머니는 영정 사진을 손으로 쓸어내며 답했습니다.
“그럼. 보고 싶을 때마다, 이렇게 손으로 만져보고, 그러지.”
묻는 사람도, 답하는 사람도 목소리가 하도 따뜻해서 목구멍이 묵직해졌습니다. ‘지금 선배도 나랑 같은 마음이구나.’ 싶더군요. 이래저래 남에게 상처 줄 일 많은 직업이지만, 그 외로운 길에 진심을 나눌 동료가 있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04 사진2# 재개발 예정지 골목길을 주제로 아이템을 하고 싶다며 뜬구름 잡는 소리만 늘어놨습니다. 따뜻함을 표현해 달라느니, 옛 추억이 담겼으면 좋겠다느니, 그런 식이었지요. 묵묵히 듣고 따뜻함과 옛 추억을 살려 뉴스 영상을 만들어주는 선배가 있습니다. 사실, 한두 번이 아니었지요. 축산 농가 취재를 가서 ‘소의 불안함’을 담고 싶다고 했고, 에이즈 환자를 취재하면서 ‘어려운 현실이지만 희망을 놓지 않는’ 영상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너 미쳤냐?”라고 되물어도 할 말 없는데, 선배의 영상은 ‘20년 함께 산 마누라(?)’ 마냥 가려운 데만 골라 팍팍 긁어주더군요. 나보다 더 내 뜻을 잘 읽어주는 동료가 있어 늘 복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 수습 딱지를 붙이고 있던 2009년 겨울. 경기도 분당 故 장자연 씨의 집 앞. 경찰이 압수수색을 들어갔는데 당최 나오지 않더군요. 이미 며칠째 노숙을 하던 저에게 한 선배가 얼굴만큼(!) 훈훈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피자 먹자.” 그렇게 땅바닥에 둘러앉아 간만에 맛보는 피자를 손에 들었을 때, 선배가 말했습니다.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 경찰이 나올 거야. 그게 우리 회사 징크스거든.” 그리고는 정확히 피자를 한입 물었을 때, 누군가 “나온다!”하고 외쳤습니다. 수십 명의 기자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일제히 뛰어가는 그 순간. 제 눈에 들어온 건, 발로 수차례 밟힌 피자 상자뿐이었습니다. 선배의 예언대로 징크스는 그 뒤 몇 차례 반복됐지요. 그래도 억울하지는 않습니다. 기나긴 뻗치기도, 한술 뜨던 음식 뒤엎고 뛰쳐나가야 하는 순간에도 늘 그대들과 함께였으니까요. 훗.


우리, 끝까지 함께!

06 사진4# 동기가 하는 아이템이라고 장비 하나라도, 스탠드업 하나라도 더 챙겨주는 든든한 동료가 있습니다. 초등학생들 학원 앞에서 해 질 때까지 뻗친다는 명분으로 그 동네에서 제일 맛있는 ‘치맥’을 공유한 선배가 있지요. 말없이 스테디캠 영상을 찍은 뒤 “필요할 것 같아 다녀왔다.”며 슬며시 알려주는 감동적인 선배가 있습니다. 취재 시간 딱 십여 분, 이어도 과학기지에서 여기저기 욕먹어가며 어떻게든 영상을 확보해준 후배가 있습니다. 바다 속까지 함께 들어간 선배가 있고, 취재원이 거칠게 행동하자 더 거친(!) 행동으로 본때를 보여준 여기자 선배가 있습니다. 최고의 카메라기자와 일하고 있다는 자부심에 늘 뿌듯했고, 쌓인 추억에 더 애틋해졌습니다.


사실 그래서 (MBC에서는 이미 사라진) ‘영상취재부’란 단어를 들으면 마음이 아픕니다. 동료들 어깨가 예전만큼 단단하지 않은 것 같아 속상하고요. 그럼에도, 힘 내줬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현장을 함께 뛰고, 추위도 더위도 함께 견디고, 굶어도 같이 굶고, 출장 가서 지역 특산물을 찾아 먹어도 같이 먹고 맛있어 하는 그런 동료니까요. 언젠가는 예전처럼 ‘마냥 신나’ 일하기를, 기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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