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 보도국’을 위해 오늘도 달린다 KBS대구방송총국 주경애 보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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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MBC 김지경 기자

일 시 | 2013년 3월 6일

장 소 | 대구

 

한국방송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보도국장이 탄생했다. 그 주인공은 올해 1월 1일부터 KBS대구방송총국 보도국을 책임지고 있는 주경애 기자. 주 신임국장은 전체 KBS 지역국에서 처음으로 뽑힌 여기자였고, 21살 최연소 합격자로서도 화제가 됐다. ‘최강 보도국’을 목표로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주경애 보도국장을 봄기운이 완연한 대구에서 만났다.

 

방송사 최초의 여성 보도국장이 되시기 전에도 이미 수많은 ‘최초’를 기록하며 살아오신 것 같습니다. KBS 대구 최초의 여기자였던 거죠?

 

대구 뿐 아니라 KBS 전체 지역국에서 처음 뽑은 여기자였죠. 서울에도 공채로 뽑힌 여기자가 5명이 안 됐었어요. 그 때 군 가산점이 있었는데 점수가 상당해서 공공기관에 여자가 잘 못 들어갔어요. 제가 입사한 다음에도 5년이 지나고서야 다시 여기자가 후배로 들어왔죠. 그 때 후배들에게 말했어요, 내 덕분에 들어온 줄 알라고. 내가 누를 안 끼쳤기 때문에 네가 있다고(웃음). 그리고 당시에 호적 나이로 21살에 들어와서 최연소이기도 했죠. 그런데 호적이 잘못된 것이라 실제로는 22살이었어요.

 

보도국에서 혼자 있는 ‘여성’ 기자로서 생활하기가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그렇죠. 이 시대에도 그런데 우리 시대에는 더 심했죠. 일주일에 한 번은 화장실에서 울었다고 보면 돼요. 보통 여자들이 남자가 받는 평가를 받으려면 세 배를 노력해야 되요. 남자는 결점이 조금 있어도 표가 안 나는데 여자는 금방 회자되고. 회식 때 술을 안 먹어도, 많이 먹어도 얘기가 나오고…

 

게다가 대구는 보수적인 지역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취재원을 만날 때 어려운 점은 없으셨어요?

처음 경찰서 출입할 때 제가 경찰들에게 취재대상이었어요. 후배들 사이에 제가 의경 뺨을 때렸다는 소문이 있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에요(웃음). 여기자가 처음 온데다 나이도 비슷하니 의경도 인사하기가 얼마나 싫었겠어요. 제가 혼자 경찰서에는 들어갈 때에는 못 본 척 딴청을 피우더니 남자 기자와 함께 가니 인사를 잘 하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은 가다가 차에서 내려서 뭐라고 했는데 소문이 뺨을 때렸다고 났어요(웃음).

또 제가 체질상 술을 못 마시는데, 그런 티를 내기 싫어서 보통 처음에 시끄럽게 폭탄주를 제조하고 두잔 정도 먹고 사라지거든요. 그런데 소문이 나는 건 ‘주경애 폭탄주 서른 잔 먹었다’ 하면서… 지금도 제 주량이 한정 없는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요.

 

여기자로서 주목받는 것을 오히려 장점으로 슬기롭게 활용하신 것 같습니다. 여기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아무래도 육아 문제인 것 같은데요, 두 딸을 어떻게 키우셨어요?

여자의 성공에는 또 다른 여자의 희생이 있죠. 큰 애는 시어머니, 작은 애는 친정에 맡겼어요. 남들은 평일에는 계속 맡겨두고 주말에 데려온다던데 그걸 못하겠어서, 애들을 재워서 아침에 부모님 댁으로 데려가고 저녁에 데려오고, 매일매일 그 일을 반복했지요. 아이들한테 미안한 얘기인데 한 손으로 애 우유 먹이면서 운전하고 그랬었어요. 직장에서 육아에 대한 선배가 없었죠, 조언을 구할 곳도.

 

기자 업무만으로도 생활이 벅찬데, 그렇게 육아를 병행하는 게 너무 고통스러우셨을 것 같아요.

많이 울었어요. 여름에는 퇴근해도 해가 남아 있잖아요. 햇볕을 받으며 운전하는데 눈물이 막 나는 거예요. 내가 지금 기자를 하는 건지, 엄마를 하는 건지, 도대체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 것 같고… 그래도 회사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어떤 사람은 부모나 남편을 잘 만나서 취미형 기자였는데, 전 생계형이었거든요(웃음). 그리고 무엇보다, 지역국에서 처음으로 뽑힌 여기자다 보니 내가 잘해야 여자 후배들을 뽑겠다는 생각 때문에 더 열심히 하려는 사명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못하면 여자라서 그렇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더 열심히 한 것 같고요. 그래서 초기부터 발군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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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이 혹시 기자가 되고 싶다고 말하지는 않나요?

내가 헛살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든 것이, 딸 편지를 읽고 울 뻔 한 적이 있었어요. 바쁘다는 이유로 잘해주지 못해서 항상 미안했는데, ‘엄마가 자랑스럽다, 엄마가 필요했지만 지금은 KBS 기자 주경애 엄마가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 이런 편지를 주더라고요.

두 딸 모두 기자가 되고 싶다고 하는데, 그건 제가 되도록 말리려고 합니다. 명절과 휴일에 쉬지도 못하고, 삶은 긴장의 연속이고… 저는 다시 태어나도 기자를 하고 싶고 이게 천직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상처를 잘 받는 성격이라 돈은 못 벌어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 사회적 지위가 높지 않더라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보도국장으로서는 어떤 목표를 갖고 계시나요?

KBS 대구를 최고로 만들어놨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여자라는 것은 부차적인 나의 성별이고, 누구보다 일을 잘할 자신이 있거든요. 그래서 모토를 ‘최강 보도국’으로 만들었어요. 회식을 할 때에도 함께 ‘최강 보도국!’을 외칩니다. 그리고 <신뢰받는 뉴스, 공정한 KBS>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속보만큼 신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이에 맞춰 뉴스 포맷도 변경했습니다. KBS 뉴스가 지역에서 의제 설정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우리 지역의 톱뉴스를 보도하고, 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꼭지를 붙이고 있습니다. 사실을 열거하는 뉴스가 아니라 시청자가 생각하는 뉴스를 만들고 싶어요.

또 지역에서 관심을 갖는 현안을 심층적으로 취재, 보도하고 이해를 돕는 컴퓨터 그래픽 활용을 늘리는 등 수요자 중심의 뉴스를 만들기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른 목표나 계획이 있으세요?

우리 말 단어 중에 ‘치열’이라는 말을 가장 좋아합니다. 저는 분, 초 단위로 사는 사람이에요. 너무 열심히 일하고 그런 건 아닌데, 시간의 속박 속에 저 자신을 두고 스스로를 채찍질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크면서 생긴 여유를 어찌 보낼까 고민하다가 철인삼종 경기에 참가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게 됐어요. 체력을 키우기 위해 산을 종주하고, 수영도 배우고, 지난 해에는 마라톤에 출전했는데 올해에도 참가할 예정입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지 않으면 또 다른 자신은 없는 것 같아요. 보도국장 이후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좀 더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여기자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신가요?

한때 KBS 대구가 여기자 8명으로 전국 최다를 기록했어요. 지금은 절반으로 줄었는데, 우리가 여기자 메카였고 그게 자랑스러웠어요.

여기자들이 들어오면 일 잘해요, 궂은 일 마다하지 않고. 여자들이 옳은 소리를 잘 하거든요. 그럼 조직의 건강도가 높아지고, 수평적인 사회를 만드는 측면이 있죠.

다만 위계질서에 익숙하지 않다보니, 사람을 대하는 기술적인 부분에서 유연성이 떨어져서 아쉬운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성별을 떠나서 어느 한 곳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어떤 절박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 밥벌이를 위해 절박했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자기 발전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제 ‘여성 최초의’ 라는 문구가 붙는 기사는 그만 나오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