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탈북 방송기자’ 타이틀은 사양합니다_KBS 박진희 북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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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_ 2014년 2월 11일   장소_ 서울 여의도   인터뷰_ KBS 황현택 기자

‘탈북자 출신 첫 방송기자’…. 그녀에게 붙은 타이틀입니다. 평양 외국어고등학교와 김일성종합대학 재정금융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주체사상탑 등 북한의 대표적 기념물을 세운 분이 박 기자의 아버지라고 합니다. 2008년 탈북한 뒤 일본에서 4년을 살며 일반 회사에서 회계 업무를 봤습니다. 지금은 KBS 북한전문기자로서 남한 기자들과 함께 나란히 국민 앞에 섰습니다.

방송기자에 눈 뜨다

왜 방송기자가 됐나요?
“북한에선 경제 정책을 수립하고 총괄하는 내각 총리가 꿈이었어요. 그래서 대학에서도 재정금융학을 전공했고요. 계획경제와 시장경제의 장점을 효율적으로 접목한 새로운 경제체제를 수립해야겠다는 막연한 목표의식이 있었죠. 유복한 가정환경 속에서 가난의 고통, 탈북과 이산의 아픔, 남북 분단의 모순 따위는 남의 일 같았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온 뒤 모든 게 바뀌었죠. 생이별한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가족이 겪은 가슴 아픈 사연들이 참 많았습니다. 또 낯선 체제에 적응하는, 저와 같은 처지의 탈북자들을 만나면서 뭐랄까, 일종의 사명감을 가졌다고 할까요. 그래서 제가 25년 동안 살았던 북한을 정확하게 알리고, 탈북자 문제에 대해서도 심층 보도를 하고 싶다는 소망을 하게 됐죠.”

통일부를 출입하시죠. 당국자나 타사 기자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다행히도 부정적이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래도 제가 북한 출신이라는 이유로 거리를 두고 간혹 질문을 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솔직히 그럴 때면 억울하기도 하지만, 이 또한 저 자신이 극복해야 할 문제로 여기고 꾸준히 노력하고 있어요.”

취재할 때 장점, 단점도 있을 텐데요?
“탈북자 최초의 방송기자가 나온 데 대해 기뻐하고 협조해주시는 탈북자분들이 많아요. 고향 분들이라 말이 통해서 그런지 인터뷰 등에도 상당히 적극적입니다.
반면에 경계부터 하는 사람도 있어요. 북한 출생이라, 대화에 끼면 안 되는 것처럼 배제와 따돌림을 받은 적도 있고요. 그럴 때면 언제 ‘이 벽을 넘을 수 있을까? 이질성을 어떻게 깨고 동질성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됩니다.”

타이틀만은 싫다. ‘믿고 보는’ 북한 뉴스가 꿈!

취재뿐만 아니라 방송도 만만찮은 일이죠?
“발음이나 한국식 어투에 익숙하지 않아 문장 쓰임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지금 이 말도 좀 어색하게 느끼시는 분들 있으시겠죠. 틈날 때마다 선배들의 단신과 리포트 기사를 베껴 씁니다. 볼펜 물고 ‘어’자나 ‘오’자 연습하고…. 마치 아이가 처음 말을 배우듯 합니다. 북한식 억양은 가능하면 유지하려고 하는데 그렇다고 뉴스 자체를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면 안 되잖아요. 9시 뉴스 만드는데 데스크 사인이 늦게 나면 눈앞이 캄캄해지기도 하고요. 여러 번 읽어봐야 하는데 시간이 빠듯하면 더 잘 안 읽어지거든요. 급하면 사투리가 불쑥 튀어나오는 것처럼요. 생방송은 더더욱 그렇고요.”

장성택 처형 이후 ‘종북(종일 북한) 방송’이 됐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보도가 쏟아졌는데요. 북한은 팩트 확인도 어렵고, 반론권도 없는 최고이자 최악의 취재 대상 아닌가요?
“북한은 직접 취재가 불가능하잖아요. 장성택 같은 고위급 인물에 대한 정보는 더더욱 확인이 어렵고요. 정보를 얻었다 해도 교차 확인 또한 어렵고, 설령 단정적이고 자극적인 뉴스를 내보내도 누군가 딱 부러지게 ‘오보’라고 밝히지도 않고요. 제 나름의 원칙은 이겁니다. 자극적인 보도는 지양하자. 최대한 팩트에 접근하자.”

10년 후에는 어떤 모습을 상상하세요?
“글쎄요. 탈북자의 현실에 비춰보면 저는 운이 좋은 편이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탈북과 정착 과정에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고요. 그만큼 책임을 느껴요. 음…. 10년 후라? 국민들이 제가 방송하는 북한 뉴스를 ‘믿고 보는’ 기자로 성장해 있길 희망해요. 단지 북한에서 왔기 때문에 ‘북한전문기자’라는 타이틀을 갖고 싶지는 않습니다. 북에서 25년, 남에서 5년을 살았습니다. 전공과 경험을 잘 살려 정치뿐만 아니라 새롭게 달라지는 북한 경제를 전문적으로 분석, 보도할 수 있는 기자가 되고 싶어요.”

대통령은 ‘통일이 대박’이라고 했는데 대박은 언제 터질까요?
“남한 사람들은 ‘북한 사회가 우리와 이만큼 다르겠지.’라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남북 사이의 현실과 이질감은 우리의 인식보다 최소 2배 이상의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다른 체제를 향해 서로 60년 동안 반대 방향으로 달려왔기 때문이죠. 이런 상황에서 내일 당장 벼락처럼 다가올 통일이 행복을 가져다줄까요? 사람 사이, 특히 남녀 관계와 같을 것 같아요. 장기전입니다. 내가 변하고 북한도 변화시켜야죠. 그래야 통일이 돼도 ‘진짜 대박’이 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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