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 타이타이’, 中國에 빠지다_YTN 김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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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김지선 기자

일시_ 2013년 7월 29일  장소_ 서울 광화문  인터뷰_ MBC 장준성 기자

 

YTN 동료에게 김지선 기자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다. ‘다부지게 일하는 선량한 사람’이라는 답이 왔다. 뭐 더 없냐고 채근했다. 중국어 잘한다는 말이 덧붙여졌다. 중국 문제에 관심이 많고, 중국 공부도 많이 하고, 중국 여행만 14번을 다녀왔다고 했다. 김 기자에게 중국은 과연 무엇이고, 김 기자는 어떤 사람일까?

“허술하고, 모자라고, 모르는 게 많은 사람이에요.” 본인은 자신을 그렇게 소개했다. 질문을 시작하려는데, 술잔을 돌리는 옆 테이블 손님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중국 공부, 내 즐거움과 행복을 위한 도구”

저분들 목소리 너무 크죠? 중국인 관광객 같네요(‘편견 섞인 농담’이라고 변명하려 하자).
“아니에요, 맞아요. 실제로 중국인들 목소리가 커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머리 잘 안 감고, 잘 안 씻는 사람들도 꽤 있지요. 잘 아는 외교부 취재원이 그런 얘기하더군요. 이지적이고 아름다운 중국 여성 외교관을 만난 적이 있다, 다가오는 모습에 기대감이 커졌다, 그런데 악수하는 순간 그 외교관 어깨에 널려있는 허연 비듬을 보고 환상이 깨져버렸다고요. 아시다시피 그런 이미지가 중국의 전부는 아니지만, 실재하는 모습인 건 분명하죠. 그런데 저는 그런 것까지 다 포함해서 중국에 애정과 관심이 많아요.”

뭐가 그렇게 좋죠?
“좋은 게 아니라, 애정과 관심이에요. 비극적인 근현대를 겪었던 중국에 대한 연민.”

우리나라 역사만 해도 만만치 않을 텐데.
“아, 물론 그렇죠. 하지만 중국에 대한 제 관심과 공부는 순전히 취미예요. 제가 좋아서, 마음 끌려서, 미쳐서, 취미로 삼는 거죠. 취미 삼는데 달리 이유가 있을까요?”

중국 전문가, 중국 전문기자가 되고 싶은 생각이 있나요?
“그런 거 아니에요. 중국 역사, 철학, 문학, 음악, 영화…. 어떤 취재 분야가 아니라, 제 개인의 즐거움, 행복을 위한 도구로 쓰는 거죠. 사람들은 자기 취미나 관심 대상을 통해 깨달음이나 만족을 얻잖아요.”

도 닦는 사람 같네요.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중국에 관심을 갖게 된 겁니까?
“중학교 때 어머니 친구가 비디오 대여점을 했는데, 거기서 무협, 역사물을 엄청나게 많이 빌려다 봤어요. <소오강호>, <의천도룡기>, <측천무후>, <판관 포청천> 같은 연재물이었어요. 대부분 홍콩 영화긴 했지만 죄다 섭렵하고 되게 좋아했어요. 그때부터 중국과 중국말에 대해 막연한 관심을 가졌던 것 같아요.”

중국 여행만 14번… 원서原書로 문학·역사 독학

<판관 포청천> 주제가는 지금도 부를 수 있다고 했다.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는 공자의 말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어요. 장이머우 감독의 <인생人生>이란 영화가 제 인생의 반전이 됐어요. 청나라 말기부터 문화혁명까지 굴곡의 시기를 살았던 사람의 인생을 다룬 작품이죠.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시대, 어이없고 극단적인 비극을 겪는 보통 사람들의 얘기에 펑펑 울었어요. 그때부터 중국 역사에 대해 시기별로 관심 갖고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부모님을 졸라서 고등학교 때부터 매년 빼먹지 않고 중국 여행을 가기 시작했고요.”

중국 여행만 14번을 갔다 왔다는데, 뭐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1998년, 중국 물가가 말도 안 되게 쌀 때 베이징 시내에서 유리 공예품을 파는 아저씨를 만났어요. 우리 돈으로 단돈 100원이었는데 제가 그것도 비싸다며 흥정을 했어요. 그리고 흥분했죠. 어린 저에게 매달리는 아저씨를 보니 권력자가 된 기분이었고요. 그 아저씨 뒷모습이 지금도 기억나요.”

중국 사정事情에 대해 비판적인 접근과 생각도 많이 해봤냐고 물었고, 그녀는 “당연하다”며 “중국에 분별 있는 애정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중국에 대해 어떤 식으로 공부하고 있나요?
“중국 문학과 역사에 대한 제 마음대로의 해석을 하고 있어요. 독학이죠. 관련 서적을 사서 읽고, 중국 원서도 구해 틈틈이 보고, 아는 중국인들과 대화도 해보고. 1대 1 전화 중국어도 해요(웃음). 중국인 한 명 한 명, 모든 사람이 다 사연이 있고 할 말이 있더군요. 그런 면에서 중국은 ‘보물 창고’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외국어고 중국어과를 나왔는데, 중국어 잘하겠네요?
“하고 싶은 말, 의사 전달 정도는 하죠. 너 중국어 잘해? 이런 말 솔직히 부담스럽고요. 중국도 중국어도 저 혼자만 즐기는 취미활동이에요. 숨겨놓은 애인처럼.”

‘애인’을 들킨 그녀가 손가락을 펼쳤다. 손톱이 단정하고 선명했다.

“그거 아세요? 한 때 마오쩌둥毛澤東이 중국에 있는 화장품 공장을 죄다 없앨 생각을 했어요. 그러자 ‘여성들이 화장을 하지 않는 사회는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다.’라고 2인자 류사오치劉少奇가 막아서면서 반발 여론이 일었고, 결국 무산됐지요. (훗날 류사오치는 ‘반反 마오쩌둥 그룹의 수괴’로 몰리며 숙청됨) 비현실 같은 현실이었죠.”

본인에게 있어서 ‘비현실 같은 현실’은 뭘까요?
“해직자 선배들이에요. 한동안 평온하게 생활해왔던 21세기 한국의 방송기자들한테 ‘해고 동료들’이 있다는 것, 비현실 같은 현실 아닐까요? 궁금해요. 중국인들은, 또 우리들은, 상처와 비극을 어떻게 치유하고 이겨낼지.”

‘모르는 게 많은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그녀는 ‘그래서’ 기자가 됐다고 했다. 중국어 별명은 ‘찐 타이타이’(金太太=김씨 아주머니). 찐 타이타이는 중국 얘기로 웃고 울고, 기뻐하고 아파하고 있었다. 중국을 통해 세상과 ‘연애’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