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공백과 탁한 눈동자

찰나의 순간, 사람이 보이다
욕망의 방향이 위를 향한 일부 보직 선배들이 있습니다.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으니 평소에는 지낼 만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종종 예민한 기사를 써야 할 때가 있습니다. 참 난감합니다. 그분들이 어떻게든 기사의 각을 죽이고 갈래를 비뚤게 타려 하는 찰나의 순간, 문득 사람의 모습이 보입니다. ‘기사를 쓴 후배들한테 어떻게 말하지? 내 위에선 이 기사 보고 뭐라고 할까?’ 머릿속에 오만 생각이 오가는 그때, 저는 그들에게서 짧은 공백과 탁한 눈동자를 봅니다. 후배를 설득하는 논리를 찾기 위한 생각의 시간, 그리고 후배의 눈을 똑바로 보기 힘들어 일말의 죄책감을 덜기 위한 시선 처리일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저 과정을 거치지 않는 선배도 있을 겁니다. 이미 머리가 굳어진 거죠. 관성화, 내면화를 거쳐 이미 속은 회사원, 기업인인 기자, 운 좋게도 저는 아직 그렇게 괴물 같은 선배는 보지 못했습니다. 사람의 본성은 평소에 잘 안 보이니까 그런 선배가 곁에 있는데 제가 못 본 걸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제 주위엔 그나마 사람 모습이 남아 있는 선배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초년 시절에는 저와 같은 고민을 했고, 이제는 보직을 단 것일 뿐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가장 나쁜 기사는 ‘물 타기’
그런 선배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물대포에 농민이 쓰러졌습니다. 살수 당시의 영상도 있습니다. 공권력이 집회에 참가한 시민을 크게 다치게 한, 있어서는 안 되고 묵과해서도 안 되는 명명백백한 경찰 잘못입니다. 사퇴해야 마땅한 경찰청장은 내부 조사 중이라며 묵묵히 자리를 지킵니다. 외려 불법 시위를 박멸하겠다고 큰소리칩니다. 이때 기자는 어떤 기사를 써야 될까요. 며칠에 걸쳐 관련 기사가 나갔습니다. 경찰과 검찰 발표는 기사라는 도구를 등에 업고 진실이 됐고, 폭력 경찰을 규탄하던 포털 댓글은 어느새 불법 시위 비판으로 가득 찼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이 먼저 바뀐 건지, 언론이 사람들의 생각을 바뀌게 만든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가장 나쁜 기사는 왜곡이 아닌 물 타기가 아닐까요?

뉴스 과잉 시대… ‘짬짜면’ 기사는 이제 그만
시청자는 똑똑하고 현명합니다. 하지만 바쁩니다. 모든 뉴스를 주의 깊게 볼 수 없습니다.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다양한 팩트를 다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적어도 해당 출입처, 해당 분야의 전문가인 기자가 흐름을 짚어줘야 합니다. 어떤 게 맞고 틀린 건지, 어떤 게 출입처의 꼼수인지, 어떤 게 금수저가 아닌 흙수저, 대다수 시청자의 시각인지, 낱낱이 파헤치고 날카롭게 비판해야 합니다. 이쪽 입장 절반, 저쪽 입장 절반 이렇게 기계적으로 쓴 ‘짬짜면’ 같은 게 대체 기사인가요? 시청자는 결코 멍청하지 않지만, 무관심합니다. 기계가 된 기자의 기사는 사람이 볼 뉴스가 아닙니다.
시청자에게 사람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선배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위에 눈치 보느라 후배 기사 밋밋하게 만드는 그런 선배가 아닌, 욕망의 방향이 후배들과 시청자를 향한 보직 선배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선배들이 많아지면 거창하게만 들리는 언론 자유도 어느 순간 우리 곁에 와 있을 것만 같습니다.